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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가져다 준 자유와 꿈
고정혁 기자 입력 2012년 01월 30일 10:36분845,055 읽음

이지현 | 43. 유방암

저는 2006년 2월 오른쪽 유방에 암을 확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2기 정도로 얘기했는데 유방절제술을 하면서 림프절에서 11개가 전이된 것을 확인했고, 수술 후에 간과 폐로 전이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미 4기인 상태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항암을 먼저 해서 암 크기를 줄인 후에 부분 절제술을 받기보다는 전체절제술을 받았고 저도 그 당시에는 무조건 깨끗이만 해달라고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렸었습니다. 수술 후에는 항암을 9차까지 받았습니다. 항암이 잘 들어서 간과 폐에 전이된 암은 검사 상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암환자 생존의 갈림길인 5년을 바로 앞둔 2010년 간 부위에 암이 재발하였습니다.

바로 항암을 받았고 이전 경험에 비추어 잘 될것이다라고 내심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항암이 전혀 듣지 않아 7차까지 진행하도록 암은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아는 언니가 그러지 말고 항암 대신 수술을 해보라고 권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간 수술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맘대로 진행되지 않더군요. 수술 전 간 부위만 MRI를 찍었는데 암이 한 덩어리가 아니라 다른 쪽으로 6, 7덩어리가 퍼져 있었습니다. 수술을 불가했고 간에서 암을 떼어 조직검사를 했더니 암세포가 호르몬 쪽으로 강하다고, 그래서 다른 약은 듣지 않을 거라면서 호르몬 치료를 해보자고 하였습니다. 대신 난소를 절제하면 호르몬 치료에 유익하다고 하여 양쪽 난소를 모두 절제하는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오고 있는데 현재 암은 더 진행되지 않고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줄어들지도 않는 상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재발되던 당시, 돈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스트레스가 재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유방암 이전, 2004년도에 동네 병원을 갔었습니다. 가슴에 멍울이 잡히고 유두가 전과 달리 함몰하는 것이 보여서 혹시나 싶어서 찾았는데 유방근종 같은 것이라면서 문제될 것이 없다, 흔히 있는 것이다라고 해서 신경 안 쓰고 지냈었습니다. 사실은 그게 암이었던 것이고 그 후로 2년 사이에 암은 더 자라고 전이했던 것이었습니다.

유방암은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암이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울지도 않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도 없었습니다.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순간 우리 애들 어떻게 하지, 시부모님이 걱정하시면 어떻게 하지…, 나 때문에 걱정할 식구들 생각이 먼저 들어서 어떻게든 빨리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선생님. 최대한 빨리 수술해주세요. 그럼 내일이라도 할 수 있어요? 내일 수술하기로 한 환자 한 명이 설사가 나서 자리가 비었답니다. 네. 그러겠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집으로 가서 시부모님께는 혹이 좀 있는데 의사가 떼어내자고 한다. 빨리 떼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마침 자리가 있으니 병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큰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면서 엄마 병원 잠깐 다녀온다고만 하고 작은 아이도 얼굴을 보고 입원했습니다. 시누이한테만 입원해서 전화로 알렸습니다. 그렇게 가족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 암이 낯설지 않은 것은 남편을 간암으로 먼저 떠나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2002년이었습니다. 결혼해서부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남편 생전에도 대하기 힘들었던 시아버님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매일 밤마다 울고 잔 날이 더 많았고, 위로받기보다는 시댁 식구들 눈치를 보기 바빴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내 스스로 무엇 하나 할 수 없었고 바깥나들이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시부모님은 제가 애를 데리고 밖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도 꺼려하셨으며 하다못해 슈퍼에 가서 동네 아줌마들과 좀 수다를 떨면 빨리 들어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암 이전에도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었고 지병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시부모님 모시고 살림살이 열심히 하려고 정말 노력했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는 내가 잘하면 시부모님께 사랑 받고 재미있게 살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더 잘하면, 내가 더 참으면… 하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살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내 집이 내 집 같지 않고 얹혀사는 것 같고 나라는 존재는 없고 집안일만 하는 사람인가 싶어 슬펐었는데 남편이 떠나고는 그 슬픔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수술하고 그렇게 지내는데 언니, 제 사정을 잘 아는 언니가 너 그러고 있으면 죽는다며 요양병원을 가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알아보니 비용이 너무 비싸서 꿈도 못 꿀 일인데 마침 보험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험에서 입원비가 나오고 해서 집을 떠나 요양병원을 가게 되었고 2년 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제게 보험이 없었더라면 전 지금처럼 살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살면서 감기 한 번 걸릴 수도 없었고, 아프다고 낮에 한 번도 누워있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암을 끝내고 요양병원을 왔던 터라 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물도 못 삼킬 정도였고 피부는 온통 까맣고 기운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먹으려고 애썼고 움직이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대부분 항암을 하고 오면 힘들어서 누워있는데 저는 누우면 더 아파서 일어나기가 힘들고 움직여야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언제나 청소 먼저 하고 어질러진 물건 정돈을 하고 다음날 바로 산을 올라갔습니다. 오죽하면 너는 항암을 하고 오는 게 아니라 어디서 보약을 맞고 오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독하다고 별나다고 했습니다. 그 힘든 몸을 끌고 누가 산에 간다고 하면 기를 쓰고 쫓아가고 어디 간다면 따라다녔습니다. 산에 올라 더덕도 캐서 같이 나눠먹었습니다. 그러면 너무 좋았습니다. 몸이 힘든 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제겐 너무도 목말랐던 자유였나 봅니다. 그걸 다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그게 제게 도움이 되었던 겁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동안 네가 애쓰고 살았으니 휴가를 주마. 하지만 공짜로는 줄 수 없으니 네가 네 자신을 돌이켜 생각할 수 있도록 병도 따라간다. 대신 보너스로 보험금도 주지 않느냐. 감사합니다. 저한테 이런 자유를 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같이 보내주신 이 아픔 때문에 지난 세월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으로 하는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너무도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 안 가보던 곳도 가보고, 못 먹어본 것도 먹어 보고, 옷도 내가 원하는 것을 사 입을 수 있고, 내 몸을 위해서 내가 좋은 것을 사서 내게 선물을 해줄 수 있다는 것들도 좋았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늘 소심하고 위축되어 있고 자신감이 없었는데 2년 후에 나올 때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도 당당하게 불렀습니다.

사람이 모자란 듯 푼수처럼 웃고 사는 게 정말 좋은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잘했다는 소리 들으려고 아등바등 거리고 완벽하려고 애썼던 것이 나한테는 마이너스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말하면 되고, 잘못했으면 그냥 잘못했다고 그런 소리를 들어도 괜찮은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게 아픔을 준 사람들을 원망도 했었지만 결국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였습니다. 후회와 원망, 그리고 용서가 되풀이되었습니다.
보험금이 끊겨 요양병원을 나오게 되었고 결국 분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살기 위한 분가였지만 대신 경제적인 문제가 저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암이 재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식당에 데려가 밥을 먹이고 하는 장면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렇게 살고 싶어요. 저렇게 살게 해주세요. 저렇게 할 수 있도록 건강 좀 주세요. 그러면서 심장이 멎는 듯한, 타는 듯한. 알 수 없는 뭔가에 휩싸였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제 하나뿐인 소망이고 욕심입니다. 남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제가 좋아서 하는 욕심인 것을 저는 압니다. 그래서 매일 바쁩니다. 그 꿈을 꾸는 것이 행복합니다.
저는 내년이면 강원도로 갑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서 살렵니다.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배우고 제가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암은 운명처럼 왔지만 저는 기꺼이 안고 제 길을 가려합니다.

환우여러분. 여러분도 새해에는 꿈 하나를 품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월간암(癌) 201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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