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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암 8년의 기록 - 감사하며, 기도하며
고정혁 기자 입력 2012년 01월 30일 10:35분848,424 읽음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있던 당시에는 수동요양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커피관장을 해주었다. 여자선생님이 해주는데 환자 중 한 명이 늘 참지 못하고 바로 배설해서 선생님의 옷소매에 변이 묻고 침대가 엉망이 되곤 했다. 선생님이 늘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기가 뭐해서 그분 관장을 내가 해주겠노라고 하였다. 그렇게 친분이 생기고 힘들다고 안 하려는 운동도 억지로 시키곤 했다. 하기야 그분한테 변 세례를 수십 차례 받았으니 여간 친한 사이가 아니니 내가 권하는 걸 마다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나와 같은 식도암 환우의 이야기다. 그는 초기에 식도암을 발견해서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를 하신 분인데 매사에 짜증을 내고 부인에게 매우 심하게 대하셨다. 하루는 같이 산을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마음을 털어놓으며 사실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심하게 말이 나온다며 치료 후유증으로 음식을 먹으면 메스꺼움이 심해서 더 짜증을 내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마음을 나도 이해는 한다. 같은 암이라 그런지 처한 상황이 공감이 가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작년, 20010년 4월경에 그가 찾아왔다. 상태가 몹시 안 좋았다. 형님은 식도암 4기라 수술도 못하고 병원 치료를 중단하고도 이렇게 건강한데, 저는 수술부터 치료라는 치료는 다 받았는데도 지금은 췌장과 간으로 전이되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는 것이다. 그때 한 책자에서 경주의 모 병원에서 야채스프와 커피관장을 한다기에 함께 경주로 내려갔다. 병원 원장과 간호부장과 함께 상의를 하는데 지금 상태로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큰 의미가 없으니 본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시라고 했다. 그는 결정하지 못한 채로 돌아왔고 그 후 여러 병원을 다니며 검사하다가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지금까지 치료중인데 힘든 길을 가고 있다.

그은 처음 만날 당시 이미 치료를 다 받은 후였는데 요양생활을 하면서 투병의 방향을 잡고 산중턱에 황토방을 짓고 몸을 바로잡는데 전념하셨는데 몸의 상태가 좋아지니 2년 후 사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결국 상황이 다시 나빠진 경우였다. 그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셨지만 다시 황토방 짓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치료에 의지하였다.
암환우는 항상 초심을 잃지 말고 생활해야 하며, 검사로 암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이전의 나쁜 습관으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 된다. 항상 자신을 관리하고 스트레스를 피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무엇보다 규칙적인 운동이 꼭 필요하다.

아무튼 지내면서 환자들에게 지금까지 겪은 투병기를 들려주면 다들 좋아라 하셨고 내가 생활하는 대로 따라하시는 분도 많이 생겼었다. 짬짬이 자연치유요법 교육을 받아 수료증도 이수했다. 이곳에서도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산을 오르면서 매일같이 큰 목소리로 웃으며 노래를 불러 대서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아프기 전에 다니던 미용봉사도 여기서도 계속했다.

그러다가 경제적인 문제로 더 저렴한 요양원으로 옮겨 다녔고, 식사 문제로 또 환자들끼리 여기저기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다니면서 점점 투병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연락하고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고 좋은 추억거리도 많이 생겼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충주이다. 여기서 벌침요법 교육을 받으러 서울로 일주일에 두 번씩 3개월을 다녔고 웃음치료 자격증을 따러 또 대전으로 다니곤 했다. 환우 한분하고 같이 산을 다니며 겨우살이를 채취했고, 영지버섯, 팽이버섯, 가지버섯 등을 채취하러 다닐 때면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이런 것들이 어떤 치료보다 몇 십 배 좋은 것 같다. 가을이면 도라지와 더덕, 삼 등을 캐러 다녔고 산을 잘 다니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면서 마음이 흐뭇했다. 오디열매, 개복숭아를 따서 효소도 많이 담갔다가 힘든 분들에게 드리곤 했는데 그걸 먹고는 기침이 멎었다고 얘기해주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또, 야채스프를 더 잘 만들려고 밭을 얻어 직접 무를 재배하여 동네 창고를 빌려 무청을 말리기도 했다.

이곳에서도 하루 생활 패턴은 거의 차이가 없다. 누구와 같이 하지 않아도 새벽이면 일어나 제일 먼저 물과 야채스프를 마시고 현미차는 주머니에 넣고 산으로 향한다. 아직 채 깨어나지 않은 산의 자태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산에 품에 안기는 것은 매번 황홀하다.

정상까지 오를 때는 기도를 한다. 가족을 위해, 이 나라를 위해, 그리고 병원에 있는 나의 친구 암환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이분들이 하루 빨리 건강을 찾아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그리고 정상 부근 나만의 비밀 장소에서 옷을 훌훌 벗고 벌거벗은 채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내 몸을 쓰다듬는다.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감사하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와 먹고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어 감사하고, 팔다리가 있어 내 마음대로 걸어 다니고 운동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비록 내 몸 안에 암세포가 있을지라도 그 세포 하나하나 사랑한다고 기도한다. 그러다보면 아침의 태양이 떠오른다.

붉게 타오르는 그 불덩어리를 태초의 모습 그대로 마주보면 마치 내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데 그 느낌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지라 하나님께 또 크게 외친다. 경식이는 건강하고 행복하고 부자이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어떤 시련이 다시 온다 해도, 어떤 고난이 온다 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흥에 겨워 혼자 발가벗고 손뼉을 치고 박장대소를 한다. 지를 수 있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웃으면서 이 지구상에서 나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것은 병원과 의사가 전부는 아니다. 나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의 면역력이다. 한참 웃다보면 기진맥진하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나는 여름뿐 아니라 한겨울에도 벌거벗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더운 여름부터 매일같이 하면 겨울이 온다고 해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게 혼자만의 장소에서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 기도하고 웃다가 노래를 부른다. 일반 노래가 아니라 그냥 내가 웅얼거리다가 만들게 된 것이다. 부끄럽지만 가사는 이렇다.

즐겁게 웃으면서 하! 하! 하!
사랑하고 감사하고 용서하고 칭찬을 했더니
경식이 몸과 여러 환우들 몸에서
암세포가 사라져 버렸네. 떠나가 버렸네.
우리 모두 치유가 되었네.
우리 모두 감사하며 사랑하고 용서하고
칭찬하며 봉사하며 건강하게 살아보세.

잘 있거라, 경식아 환우 여러분들. 암세포는 떠나갑니다.
그동안 마음고생, 아픔 주어서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암세포는 경식이 몸과 여러 환우들 몸에서
살수가 없어서 영원히 떠나갑니다.
경식씨! 환우 여러분! 감사하며 즐겁게 오래오래 사세요.

이런 노래를 혼자 만들고 곡조를 붙여 크게 부르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요양병원으로 돌아오면 아침운동이 끝이 난다.

낮에는 배낭을 메고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산을 오르면서 눈에 띄는 여러 가지 약초를 담아 내려온다. 그리고는 채취한 걸 다듬고 만져서 효소를 담그다 보면 하루가 바쁘다. 같이 병실을 쓰는 환우들이나 병원 직원들은 경식씨 얼굴 보기가 대통령 얼굴 보기보다 힘들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하도 산을 잘 오르내려서 환우들은 내게 다람쥐, 족제비 같은 별명을 붙여주곤 했고 산에서 혼자 이상한 짓과 소리를 내며 다니니 동네 어른들은 내가 나타나면 미친 사람으로 오해하고는 도망가기도 하는데 나중에 사연을 알고 나서는 저렇게 열심히 하니 무슨 병인들 낫지 않겠냐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요양원 간호부장님은 새로운 환우가 오게 되면 꼭 나를 만나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다지 말솜씨도 없고 별다를 것이 없이 열심히 지내는 것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나를 쳐다보는 암환우의 힘든 눈빛을 보면 이 얘기 저 얘기를 들려주는데 그것만으로도 용기를 얻었다며 기뻐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는 요양생활을 하면서 운동을 하지 않는 환우들에게는 걸을 수 있는 힘만 있다면 몇 걸음만이라도 걸어보라고 잔소리를 했다. 어떤 이는 따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불평하는 환우에게는 더 다가가서 나의 힘들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여기까지 왔노라고 말해주면 다음날에는 나도 같이 산에 가자고 하시며 부축을 받고 걸으려고 애쓰고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의사도 아닌 나의 말을 새겨듣고 따라 해주는 모습을 보면 너무 기뻐서 종일 가슴이 들떠 있었다.

기사 오류안내: 12월 원고 중 투병생활을 한 요양병원은 '에덴요양병원'이 아니라 '수동요양병원'입니다.

월간암(癌) 201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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