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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투병수기식도암4기 8년의 기록 1 -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고정혁 기자 입력 2011년 09월 30일 11:52분886,302 읽음
식도암으로 투병생활을 한지 만 8년! 그 세월동안 나는 어떻게 변화된 모습일까?
아픔 그 이전보다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한 것 같다. 아픔이 있었기에 욕심도 떠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 용서해 주는 마음이 생겼으니 말이다.
66년의 나의 지난 삶은 평탄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는 없다. 빈농의 가정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18세 후반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갖은 고생 끝에 이발사가 되었다. 나는 21살 때 위장병 진단을 받은 후부터 평생 약으로 살았다. 약이 없으면 하루 일과를 보내기 힘들었고, 음식물이 자주 역류해 고통스러웠다. 그렇기에 몇 년에 한 번씩은 위내시경 검사를 꾸준히 받아왔다. 특히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면서 가족력까지 있구나 싶어 걱정되어 매년 한 차례씩, 1월이면 꼭 위내시경 검사를 했었다.
2003년 1월에도 어김없이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위궤양과 신경성 위염이었다. 위궤양은 이용업에 종사하다 보니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어 늘 받는 진단이었고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그러다 그해 3월경,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생선을 먹은 일도 없는데 꼭 가시가 걸린 것과 똑같은 증상이라니……. 목이 이상하게 까칠한 것이다. 문득 어릴 적 할머니 생각이 났다. 고향이 바닷가여서 생선을 자주 먹는 편이라 목에 가시가 가끔 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쌈을 크게 싸주셨는데 할머니가 싸 주시던 쌈을 먹으면 신기하게도 가시가 쑥 내려가곤 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 달 정도 쌈을 싸 먹었다. 그런데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어 쌈 싸먹기는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이러다 언젠가는 내려가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그 증상이 심해지면서 음식물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급기야는 음식이 목에 걸려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여러 번이었다.
'생선가시 때문에 상처에 고름이 생겨 목이 막히나?' 하는 생각에 11월경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검사결과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위내시경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속으로 어차피 다음해 1월이면 위내시경 검사를 받을 텐데 싶어서 조금만 더 참아보자 싶었다. 그렇게 불편함을 견디면서 그럭저럭 지내다가 2004년 1월 검사를 받았다.
의사에게서 악성종양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악성종양. 나는 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올 일이지만 그때 나로서는 악성종양이 암이라는 것도 몰랐었다. 태연하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의사는 그저 좋지 않은 것이니 큰 병원으로 가 보라는 말뿐이었다. 받아온 CT와 소견서를 늘 다니던 약국에 보여주었더니 약사는 놀라면서 암이네요 빨리 병원으로 가보세요 한다.
경황이 없는 마음에 포장마차로 가서 술을 마시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 보아도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1994년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아 하던 이용업을 그만두고 다른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경험 부족으로 모아두었던 재산을 모두 잃고 빚만 1억이 넘게 깔려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 암이라니…. 앞이 깜깜했다. 처지가 그러하니 치료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곤 가족에게 내 상황을 알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니, 도저히 내 입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앞을 봐도, 옆을 봐도, 뒤를 봐도 어디 하나 살아날 구석이, 치료조차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아 자포자기를 한 셈이었다.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포기한다고는 했지만 암과 함께 찾아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나를 옭아매어 끝없는 벼랑에서 떨어트렸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나는 잊기 위해 술을 마셔댔고, 취한채로 일하고 있던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차라리 여기서 뛰어내려 모든 것을 다 끝내버릴까 하는 마음이 불끈 일기도 했다. 홍제천에 내려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목 놓아 울기도 했다. 때로는 죽음이 너무도 두려웠다.
결국은 아내가 알게 되었다. 아내는 집을 팔아서라도 살리겠다며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주일에 걸쳐 검사를 받았다. 담당 교수는 한참 뜸을 들이다 어렵게 결과를 알려주었다. 진행성 식도암 4기. 이미 식도에서 림프절로 전이가 되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만약 수술을 한다면 1차로 등을 열고 2차로 배를 열고 3차로 목을 열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이 수술도 할 수가 없다는 말에 우리 부부는 넋을 잃고 말았다. 다만 2차례 항암을 받아 암의 크기를 줄이면 수술이 가능하다는 말에 희망을 품고 같은 교회 집사님께 500만 원을 빌려 다시 입원했다.
항암치료는 5박 6일로 진행되었다. 3일째부터 구토가 나고 밥 냄새, 소독약 냄새도 맡기 싫더니 나중에는 흰 가운만 봐도 구토하기 일쑤였다. 식사시간이 되면 나는 병원 내 기도실로 피신했다가 다른 환우들의 식사가 끝난 후 병실에 돌아오곤 했다.
단 6일 만에 체력은 바닥이 나고 항암치료가 끝이 났다. 더는 병원에 있기 고통스러워 3~4일 회복기를 지나야 한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간청했고 간단한 주의사항만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암의 후유증은 집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손톱과 발톱이 들떠 빠질 듯 아팠으며 입 안은 완전히 헐고 잇몸이 부어올라 보철을 해 넣은 이에 혓바닥이 찢어져 결국 이빨들을 뽑아버렸다.
물만 마셔도 토하고 설사가 멈추질 않아 13일 만에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그렇게 3주를 보내고 2차 항암치료를 위해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2차 때는 처음보다 고통이 빨리 시작되었다. 둘째 날부터 가슴통증이 심해 모르핀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으면 거짓말처럼 통증이 멎었다. 좌측 팔에는 모르핀, 우측 팔에는 항암주사를 맞으며 5박6일의 2차 항암치료를 받았다.아내는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일이 끝나면 밤에 왔다가 새벽에 다시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고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우리 부부는 견뎠건만 결과는 참담했다. 지금까지 받은 항암치료가 조금도 효과가 없었단다.
그리고 우연히 종양학과 교수와 아내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교수 말로는 항암이 듣질 않아 얼마 살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방법을 시도해야 하는데 위험이 따르니 가족끼리 상의해서 사인을 하라는 것이다. 그 다른 방법이란 항암은 듣지를 않으니 항암과 방사선을 같이 해보자는 것이었다.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항암도 간신히 버텼는데 거기에 방사선 치료까지 더하라니…….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다.
가족에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없어 나는 기도실로 올라가 문을 잠그고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생명을 주신 이도 하나님 아버지시고, 생명을 거두는 이 또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신가요? 하나님 아버지. 이 한 생명,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오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아서 해 주세요. 그 대신 이 생명 3년만 연장해 주십시오. 제가 죽으면 우리 애들 결혼식 때 누가 손을 잡아준단 말입니까? 3년만 살게 해 주세요. 대신 현대의학 치료는 더 이상 받지 않겠습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마음을 정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기왕 얼마 살지 못한다면 고통 없이 살다 가리라……. 나는 기도실에서 나와 샤워실로 들어가 방사선 치료를 위해 몸에 그어진 선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그때부터 치료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치료를 거부하니 가족들은 내 의견을 따르는지 아무 말이 없고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 곧 죽는다고 설득을 했다. 같은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도 치료 받으라고 아우성이었다.
한 보호자는 내 한 몸 힘들다고 가족 생각은 않는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고, 대장암을 앓고 있던 환자 한 분은 아내와 같은 노씨라면서 우리 부부를 위로하며 내 맘을 돌이키려고 애를 썼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그 분은 항암을 7차까지 받았지만 머리 한 올 빠지지 않고 식사도 잘했었는데 9개월 후에 사망하셨다고 한다. 퇴원을 요구했지만 퇴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항암주사를 놓겠다며 들고 온 주사판을 들러 엎기도 했고, 의사에게서 심한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치료거부 4일 만에 그렇게 퇴원했다.
월간암(癌) 201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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