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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재발한 암, 효소가 나를 살린다

이 기사는 고정혁 기자가2011년09월30일 11시51분에 최종 입력하였습니다. 총 890805명이 방문하여 읽었습니다.

이경숙(56세)

2001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가슴 왼쪽에 생긴 종양이 악성으로 판정되어 유방 절개 수술과 함께 끝도 모를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0년이 흘러 2011년 6월. 가슴 오른쪽에 종양이 생겨 다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에서는 재발이 아니라 새로 생긴 암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암 진단을 받으려니 10년 전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담담했지만 남편과 두 딸은 아내와 어머니를 잃을까봐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새로 진단을 받고는 나는 수술과 항암요법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전에 겪은 치료의 고통과 부작용을 다시 되풀이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너무 끔찍했다. 하지만 눈물 어린 가족의 호소를 차마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나의 몸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소중한 남편과 두 딸의 일부이기도 했다. 결국 가족들의 호소에 지고 말았다.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다.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고 있지만 2001년과는 달리 수월하게 항암을 받고 있다.

2001년에는 좌측 유방암 진단을 받고는 꾸준히 치료를 했었다. 담담한 마음으로 병원의 치료에 매진했는데 극심한 병원치료의 부작용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로 침상에 누워서 참으로 힘든 치료과정을 지냈었다. 더구나 2001년에 투병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여러 암 친구들이 하늘나라로 갔는데 암이 진행되면서 과도한 항암제를 되풀이하다가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과 공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병원의 치료 대신 내가 공부했던 여러 요법들을 통해서 치료하고자 했던 것이다.

10여 년 전 암이 걸리기 전에 집안에 커다란 우환이 있었다. 남편은 동아건설에서 해외에 근무하였다. 힘들게 고생해서 모은 그 돈. 피땀과 같은 그 돈을 모두 날려버렸었다. 보증을 잘못서서 살고 있던 집마저 경매에 붙여지고 우리 가족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었다. 결혼하고 몇 십 년을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모아놓은 모두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집마저 잃게 되니 사는 게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살 수 있는 희망이 모두 사라졌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이 너무도 불쌍하였다. 죽는다는 것은 두렵지 않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나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 때 내 나이 마흔 다섯이었다. 수술로 한쪽 유방을 절개하고 항암치료를 12번, 방사선 치료를 33번 받았다. 몸이 어찌되는지도 모르고 살기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참으로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치료를 받았다.

병원의 모든 치료가 끝나고 황폐해진 몸으로 집에 왔다. 이제 무얼 할까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했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치료는 끝났다지만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암환자는 어떻게 생활해야 하고, 암은 무얼 먹고 사는지, 다시 재발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서점과 도서관을 오가며 건강과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모두 읽었다. 몇 년간 공부를 해보니 어렴풋이 "우리 몸은 자연을 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몸의 독소를 빼는 해독과 좋은 효소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이 두 가지만 잘 하면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공부하던 대로 철저하게 잘 생활하였다. 다시 건강해졌고, 휴대폰 대리점을 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도 찾게 되었다. 모든 게 잘 되는 듯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니 암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7년 정도 지나서는 모든 것을 잊게 되었다. 암은 이제 생활에서 완전히 멀어졌고 뇌리에서도 지워졌다. 수술, 병원, 항암, 책, 자연, 해독……. 점차 아이들은 성큼성큼 자랐고 나는 건강하고 일반인이었다.

어느 날, 우측 겨드랑이에 가벼운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나이를 먹으면 나타나는 증상으로 일축하고 지내왔다. 그러다 2011년 6월. 가슴 오른쪽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만져 보니 딱딱한 무언가가 잡히는 것이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얼마 후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검사를 받기 위해 올라갔다. 속으로는 괜찮을 거야 되뇌었지만 몸은 긴장하고 있었고 마음 저 밑바닥에서는 설마 하는 두려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검사결과가 나온 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새로운 암이 또 생겼다는 것이다.

지나온 10년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나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도 들었다. 철저하게 관리해야 했건만 그러지 못했다. 후회한다 해도 이미 나와 있는 결과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전에 공부했던 대로 다시 철저하게 생활하면 힘든 병원 치료를 받지 않아도 이번에 생긴 암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병원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지금은 항암치료 중에 있다.

병원 치료는 나보다는 식구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 하고 있다. 나에게는 자연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북 청도에 있는 자연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10년 전에 공부한 내용대로 생활하고 있다. 나의 생활을 위해서 주치료 병원도 서울에서 동네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 어차피 병원에서 주는 항암약은 같은 약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하루 3끼를 효소로 먹고 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에는 제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국파비스에서 만들고 파인드효소라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효소제품이다. 밥 대신 먹을 수 있다. 그리고 프로자임이라는 버섯효소를 통해서 면역력을 올리고 있다. 나와 같은 암환자가 비싸지 않은 가격에 선택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이 제품들은 성분표와 제조공정이 신뢰가 가는 제품이다.

몸에 좋은 음식은 저분자로 된 활성효소이다. 항암치료 중에는 소화기관이 약해져서 무엇을 먹어도 흡수가 되지 않는다. 이 제품들은 저분자로 발효되어 나온 효소들이기 때문에 나의 몸이 잘 받아들인다. 지금 항암치료중이지만 10년 전처럼 극심한 고생은 하지 않고 있다. 그저 편안하게 지내다가 2주에 한번 병원에 들르면 된다. 예전에 공부한 덕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또다시 이런 일을 겪었다면 아주 어려운 길이었을 텐데 지금은 다르다. 나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처지의 긴 시간을 암과 함께 보내는 암환자일수록 자신만의 투병방침과 규칙을 잘 세워놓고 꾸준히 지키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아프지 않으면 잊게 되고 잠깐씩 병원 검진할 때만 긴장하다가 다시 풀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저 사람이 좋다면 그쪽으로 따라가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다른 쪽에 솔깃하기를 반복하면서 허둥지둥하다 시간만 낭비하고 절망감만 깊어지게 된다. 이번에 두 번째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고 있지만 이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나에게는 하나의 사명이 있다. 암환자들에게 해독과 효소에 대해서 알리는 것이다. 암 때문에 독이 생기고, 병원의 항암제도 독이다. 해독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효소가 필요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