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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암을 이기게 하는 에너지
고정혁 기자 입력 2011년 04월 20일 17:21분878,144 읽음

우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 많은 생각들을 합니다. 어떤 생각은 결정을 하여 실행에 옮기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생각들은 그저 생각이나 상상으로만 간직한 채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의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근심, 과거에 대한 후회 등이 많습니다. 정작 우리가 살아 있는 지금에 대한 생각보다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는데 주로 우리 스스로의 에너지를 빼앗아 버리는 기억이나 생각입니다. 나는 나에게 충실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걱정과 후회가 암을 만들었다고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난다!’라는 생각만으로도 사람들은 설렘을 느낍니다. 일상을 살면서 생겨나는 부정적인 걱정과 근심, 후회 등은 설렘에 눈이 녹듯 사라집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는 어디론가 떠난다는 설렘이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에너지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어떤 학자가 연구한 것처럼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 근심, 두려움이 암을 만들어 낸 원인이었다면 여행이 가져다주는 기쁨은 분명히 암을 물리치는 일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들뜬 마음은 잠을 못 이루게 합니다. 지난 6월 5일부터 1박 2일 동안 암환자지원센터의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25명 정도의 암환우들이 참석하였는데 공지를 보고 참석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들뜬 마음에 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태안 앞바다와 그 곳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몇 번이라도 상상의 나래 속에서 그곳을 다녀왔을 것입니다. 이렇듯 여행은 여행 자체의 목적보다는 여행을 떠나는 즐거움이 때로는 더 크기도 합니다.

여러 사람들과 여행을 하다보면 상대편 때문에 불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여행 자체가 상상처럼 지속적인 만족을 줄 수는 없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즐거운 상상으로 기분이 좋았고 여행을 다녀오고 그 시간을 돌이켜 볼 때 행복하다면 성공적인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추억을 꺼내어 읽어보면서 우리는 행복감을 얻게 됩니다. 여행을 짧지만 힘든 현실 속에서 여행의 추억은 오래도록 지속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나의 기대와는 동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우리 삶의 목표는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행복을 찾는 일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이 너무도 주관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무엇이다라고 수학공식처럼 정의를 내려 해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여행은 행복을 찾는 일에 역동성을 줍니다.

암환우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행은 암과 투병하고 있는 환우들에게 더욱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암에 걸려 잃는 것도 많지만 얻는 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중 하나는 투병을 위해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기 전, 삶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던 나를 위한 시간, 원하지 않아도 나를 위한 돈을 쓰게 됩니다. 조금만 더 일하고 나서, 집을 넓히고 나서,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정년퇴직하고 나면… 하고 미루기만 했던 일을 이제는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자가 아니라 해도 여행을 떠날 특권쯤은 누릴 수 있습니다. 간혹 어떤 암환우는 말합니다. “나는 암에 걸려서 예전보다 더 행복해졌다”라고 말입니다. 암 때문에 돈에서, 일에서 자유를 얻어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었던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마음에 맞는 새로운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생소한 사람과, 풍경들은 우리의 내면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처음 나온 아이처럼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입니다. 여행의 목적이 단순히 먹고 즐기는 것이라면 참으로 따분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공간과 사람에 대한 경험이며, 이러한 경험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암과 투병하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순환시킴으로써 예전의 나를 발견하고, 변화시켜, 결국에는 ‘암환자로서의 나’가 아닌 ‘암을 극복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만들어 가는 일을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

또한, 우리나라의 소설가 김동리 선생님이 1948년에 발표한 역마(驛馬)라는 소설이 발표되고, 무속인들은 역마살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역마살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을 이야기합니다. 역마살이 운명이라면 우리는 운명을 거슬러서 역마살을 맞아 보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어디든지 떠나는 것입니다. 렛츠 고.

월간암(癌) 201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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