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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기 - 내 몸아 잘 버텨줘서 고맙구나
고정혁 기자 입력 2011년 03월 08일 17:27분882,314 읽음

김경희(63) 유방암.

93년, 내 나이 46세에 자궁암 검진을 받다가 근종을 발견하고는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마치고 일 년 후에 체크하러 병원에 가니 깨끗하고 괜찮다고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지했다. 자궁을 드러내면 폐경이 오고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는 당연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병원에서 아무 이상 없다니 그렇다고만 믿었다.

그런데, 만 4년 정도가 지나니 허리가 아픈 정도가 점점 심해져 끊어질 듯 아팠다. 왜 아플까 생각하다가 자궁 적출로 아마도 골다공증이 왔나보다 싶었다. 골밀도 검사를 하니 골다공증도 왔고 갱년기 증상도 있으니 호르몬제를 처방해주었다.
그렇게 자궁근종 수술로 폐경이 와서 여성호르몬제를 10년4개월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처음에는 먹는 약, 붙이는 약, 그 다음에는 바르는 약을 썼는데 해마다 골밀도 측정, 유방 촬영을 받았다.

가끔 ‘여성호르몬제를 장기간 사용하면 유방암 걸릴 확률이 높아 조심해야 한다’라는 식의 기사나 방송을 보곤 했다. 걱정이 되어 의사에게 물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미국이나 다른 나라도 모두 이렇게 한다며 걱정 말라고만 했다. 유방암 걱정에 초음파 검사를 받고 싶었지만 받아야 하는 검사는 흉부 CT, 대장암 검사 등 비싼 검사만을 받아야 했다.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의사가 시키는 검사를 받지 않으면 처방전을 내줄 수 없다고 하여 할 수 없이 검사를 받곤 했다.

그러다 나는 화가 나서 약이 떨어지고는 약 타러 병원엘 가지 않았다. 유방암을 그나마 발견한 것도 이 일 때문이었다. 약을 먹지 못하고 3주 정도가 지나자 허리가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98년 5월경이었다.
할 수 없이 다른 병원을 가서 약을 달라고 하니 검사도 없이 어떻게 무작정 약을 주냐고 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약을 탈 마음으로 골밀도, 유방촬영, 유방초음파 등을 받았다. 검사 결과를 받은 산부인과 의사는 내게 외과로 가라고만 했다. 외과에서는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다.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는데 오지 않으니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왜 오지 않느냐고 해서 열흘 만에 시큰둥하게 병원을 찾았다.
다짜고짜 큰 병원을 아느냐고 묻더니 병원을 소개시켜 줄 테니 당장 가서 의사를 만나라고 했다. 암이냐고 물으니 뚜렷하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최종으로 원자력병원을 가서 초음파를 받는데 의사가 중얼거리기를 ‘조직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었구만’이라고 한다. 나는 엉뚱하게도 그 소리를 별것도 아닌데 필요도 없는 조직검사를 했구나 하고 해석해버렸다. 사실은 초음파만으로도 종양이 보인다는 뜻인데 심하게 낙천적이다 못해 내 맘대로 왜곡해서는 수술 전 일주일 동안 걱정도 없이 편안하게 지냈다.

처음 암이 두 군데 있는데 0.9cm밖에 안된다며 수술을 부분절제를 받았다. 수술하면서 암 조직을 배양해서 조직검사를 했다. 일주일 후에 의사가 와서는 그 조직에서 암세포가 나왔다며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단다. 이때는 너무도 스트레스를 받고 몹시도 울었다. 그때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험이라도 많이 들어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애들이라도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며 재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유방암 3기. 임파선으로 전이되었다고 했다. 항암 8차, 방사선 33회를 받으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항암하면서 구토 등 후유증으로 너무도 힘겨워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구토 증세가 느껴지면 얼른 음식을 넣으면 괜찮아지곤 했다. 대신 밤이면 악몽에 시달렸다. 손가락이 잘리는 등 끔찍한 꿈을 꿨다. 항암은 1차만 조금 힘들었고 나머지는 잘 넘어갔고 방사선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받았다. 친구가 프로폴리스가 좋다고 권해서 항암 5개월, 방사선 2개월 동안 열심히 먹었고, 그 후에 겨우살이를 알게 되어 지금까지 쭉 프로폴리스와 겨우살이를 먹고 있다. 다른 보조식품이나 비싼 약은 전혀 먹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방암은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당시 남편의 사업 실패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첫째 원인이고, 두 번째로는 평소 식습관이 육식을 너무 좋아했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장기간 여성호르몬 제제를 복용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나의 유방암 치유였다.
가정 문제는 정리되었고, 식습관은 완전히 바꿨다. 현미밥에 채소를 먹고 흰살 생선을 조금 먹는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두 시간 이상 즐겁게 걷는다. TV도 병원에서 보게 된 1박2일 같은 신나는 프로그램이 재밌어서 요즘도 빼놓지 않고 손뼉 치며 웃는다.
암으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잠도 잘 자는 편이고, 밥도 잘 먹는다. 책도 보고 신문도 보고 이제는 일주일에 세 번씩 컴퓨터도 배우러 다니고 있다.

참, 구역예배도 본다. 종교라고는 평생 관심둔 적이 없는데 친구가 성경책을 사줘서 억지로 교회를 몇 번 나갔었다. 암 진단을 받고는 그냥 교회를 못 나오게 되었다고 하니 어찌나 꼬치꼬치 캐묻는지 암 얘기를 결국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병원 생활하는 다섯 달 동안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그 먼 곳까지 2주에 한 번씩 목사 부부가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만두시라고 해도 꿋꿋이 병문안을 와주셨다. 그러니 어떻게 교회를 안 나갈 수가 있겠는가.

신앙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지만 그래도 교회에 가면 이 세 가지를 기도한다.
하나는 내 몸의 건강. 하나님, 안 아프게 해주세요. 더는 암이고 뭐고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또 하나는 모든 암환자들 빨리 일어날 수 있게 해주세요. 마지막으로는 모든 세계 인류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좋은 세상 만들어주세요 하고 거창하게 기도를 마친다. 나 혼자만 암 없어지고 건강하게 해달라고 하기엔 남에게 베푼 것도 없는데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루 일과는 단순하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일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프로폴리스를 입에 물고 책이나 신문을 보고 가족이 출근하고 집안일을 마치면 꼭 한 시간 정도 한숨을 잔다. 달게 자고 나서는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해서 자격증도 땄다. 이제 컴퓨터도 배우고 있다. 직장을 다녀서 노후를 아이들에게 기대지 않고 내가 책임지고 싶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참 잘 버텨졌구나 싶다. 내 몸아. 고맙다.
암아, 덕분에 잘 쉬었다.

월간암(癌) 201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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