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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몸 - 완전한 마음과 본성치유 ①
고정혁 기자 입력 2010년 12월 27일 15:59분897,640 읽음

서재건 | 암대체요법 연구소 연구소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암전문병원 행복한 병원장 역임. 의료법인 성은의료재단 이사장.

암에 잘 걸리는 체질도 있고 암에 잘 걸리는 성격유형도 있다. 반면에 암에 잘 안 걸리는 체질도 있고 암에 잘 걸리지 않는 성격유형도 있다. 물론 암에 잘 걸리지 않는 유형은 다른 병에 잘 걸리거나 다른 부분에서 동일한 아픔을 누리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은 유전적인 성향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유전성을 제외한 부분만 말하고자 한다.

MBTI로 보는 암환자 성격유형분석

나는 10년 이상 각종 난치성 환자들의 성격유형을 분석해왔다. 약 3,000명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분석을 토대로 암환자를 성격유형별로 그 빈도수를 나누어 보았더니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 다 빈도 유형 : ISFP(성인군자형), ESFP(사교적인 유형), ISFJ(임금뒤의 권력형), ESFJ(친선도모형)
● 평균 빈도 유형 : INFP(쟌다르크형), INFJ(예언자형), ESTJ(사업가형), ENFP(스파크형)
● 저 빈도 유형 : ISTJ(세상의 소금형), ISTP(백과사전형), ESTP(활동적인 수완가형), ENFJ(언변능숙형), ENTP(발명가형), INTP(아이디어뱅크형), INTJ(과학자형), ENTJ(지도자형)

MBTI의 선천적 선호경향을 중심으로 분석해보면 F(감성, 관계중심 경향성)와 S(감각, 현실 중심 경향성)가 암유발 경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N(직관, 미래 중심 경향성)과 T(사고, 사실중심 경향성)는 암억제 경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MBTI는 마이어브릭스 유형지표의 약어이다. 융의 심리유형론을 근거로 하는 심리검사로 개인이 응답할 수 있는 자기보고 문항을 통해 각자가 인식하고 판단할 때 선호하는 경향을 찾아낸 뒤, 그 경향들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파악하여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선호경향성의 간단한 이해

F(감성) 선호경향성이란 관계중심 경향성을 말한다. 이들은 사실보다는 관계에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그 반응의 양상이 감정적이다. 예를 들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사기를 쳐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도망 다니다가 자신을 찾아와 숨겨달라고 부탁한다면 이들은 친구의 잘못을 알고서라도 숨겨주어야 마음이 편한 유형이다. 만약 진실을 위해 친구를 경찰에 고발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더라도 그렇게 하기가 너무나 힘든 유형이다.
친구를 숨겨주는 것이 친구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위험한 일이며 가족까지 위험 속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다 인지하더라도 친구를 고발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친구를 고발하는 것은 관계중심의 자신의 존재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진실을 지키는 것이 자신을 죽이는 일이란 말이 이해가 되는가? 그러나 적어도 이 유형의 사람에게는 그러하다. 물론 F(감성) 선호경향성의 극단적 설정을 말한 것이다.

반면에 T(사고) 선호경향성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들은 사실중심의 경향성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이들도 친구를 좋아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반을 둔 관계성을 중요시한다. 이들은 사랑하는 친구가 도망 다니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도망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비교적 쉽게 현실적인 판단을 한다. 그리고 비교적 쉽게 친구에게 자수할 것을 권한다. 여기서 언급한 비교적 쉽다는 말은 F(감성) 선호경향성의 사람에 비해 감정적인 영향을 덜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들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기에 친구가 도망 다니는 현실이 안타까울 수 있지만 F(감성) 성향보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들은 진정으로 친구를 돕기 위해서 오히려 고발할 수도 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친구를 팔아먹은 사람이란 말을 들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친구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자신다운 진실한 반응이다.

S(감각) 선호경향성이란 현실 중심 경향성을 의미한다. 이들은 5감으로 체험되는 것을 인지한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것은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보다 현실의 부족과 불편감에 민감하다. 현실이 만족스러우면 병이 날 이유가 없지만,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편안히 인내하며 견디어 낼 능력은 없다. 이들이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견디어내고 있다면 그들은 N선호경향성(직관, 미래중심경향성)의 사람보다 엄청나게 인내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보다 100배 이상 불편감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즉시 불편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한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가? 어쩔 수 없이 참고 인내해야 하는 현실이 이들을 힘들게 한다. 불편한 현실을 즉시 개선하지 못하고 참아야만 하는 고통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반면에 N(직관) 선호경향성(미래 중심 경향성)의 사람은 현실보다 미래를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실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그래서 현실의 불편감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감지센서가 미래가치 쪽으로만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 민감성이 둔하므로 덜 힘들다. 그래서 이들은 여간해서는 병이 걸리지 않는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다른 유형에 비해 선천적인 결함이 있을지라도 현실의 스트레스를 느끼지 못하니 병이 안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더는 미래가 없고 절대 절망만 있는 경우라면 이들도 병이 나고 만다. 이들의 삶의 에너지 기반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선호경향성의 바른 이해

여기서 선호경향성이란 선천적인 경향성을 의미한다. 후천적으로 만들어지고 훈련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누구나 선천적인 경향성에 따라 반응을 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비록 충분히 훈련되고 의도된 행동과 반응을 일시적으로 할 수는 있지만 언제나 자신의 본성을 속이고 다른 사람으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개 성격유형을 분석하고 설명을 듣고 나면 자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며 고마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이 전적으로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많은 경우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 고쳐야 하지요? 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질문하곤 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선천적 성격유형과 선호경향을 뜯어고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최고의 성품을 스스로 망치기 원한다면 모를까!

한계와 결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아(自我)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결점을 수정하려고 한다. F선호유형(감성, 관계중심의 경향)은 타인의 반응에 집착하는 자신의 감정을 부담스러워한다. 타인의 작은 무의식적 반응이나 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신이 싫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타인의 그런 반응에 불쾌해하지도 않고 잘 넘어가는데 자신은 그럴 수 없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감정변화를 예민하게 인지할 수 있어 관계성을 맺는 데 있어 유리한 점이 있다는 사실은 큰 장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T선호유형(사고, 사실중심의 경향)의 사람은 감성적이고 느낌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F선호유형의 사람을 부러워한다. 자신도 남들처럼 크게 웃고 신이 나서 노래하고 춤추고 일상의 작은 감동을 즐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 있으면 왠지 어울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들 적당히 흐트러지고 경계심이 풀린 듯한 장소에서 즐거워하고 있는데 자신만 경직되어 있고 어색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자신은 내일을 위해 절제할 줄 아는 책임감 있고 능력 있고 신중한 사람이라 여긴다. 그러면서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마지못해 수용한다.

S선호유형(감각, 현실중심 경향)은 현실의 불편감에 민감한 자신을 부담스러워한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 작은 일이나 미세한 차이라도 민감하게 느끼는 자신을 보면서 자신이 문제 있는 사람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런 유형에게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발견해내지 못하는 미세한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도 있다. 이 능력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잘하는 것을 감사하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힘들어하는 부분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N선호유형(직관, 미래가치중심 경향)은 현실 감각이 뒤떨어져 자신의 선택들이 자주 틀리는 것을 통해 좌절한다. 자신은 최선의 직관을 이용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선택을 하고 노력하지만 현실의 위험성을 살피는 민감성이 부족하여 실패하곤 한다. 사람들이 대부분 직관적이지 않으며 미래가치보다는 현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실에 대한 민감성부족과 세심한 주의력부족으로 소중한 가치가 사소한 일들 때문에 망쳐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절망한다. 그러면서 현실감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자신 주위에 자신의 부족함을 도와줄 현실감 있는 사람이 없음을 원망하며 병이 들어간다.

헛된 동경과 기대들

그리고 상대 선호경향성을 가진 사람을 동경하고 매력을 느낀다. 상대방을 통해서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T선호유형(사고, 사실중심의 경향)의 사람은 대부분 F선호유형(감성, 관계중심의 경향)의 사람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자신에게는 없는 그들의 생동감을 함께 누리고 싶은 것이다. 반대로 F선호유형의 사람은 T선호유형의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끼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진지함과 논리가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S선호유형의 사람들은 N선호유형을 동경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현실에 초연해 보이며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대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라면 자신이 느끼는 인생의 모든 불편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가지는 것이다. 반대로 N선호유형은 S선호유형의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그들과 있으면 현실의 부적응을 모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매력을 느끼고 함께 연애하며 지낼 때 좋았던 상대방에 대한 본능적 판단력이 결혼 후에는 깊은 한숨으로 바뀐다. ‘바로 이 사람이야’하고 본능적인 직감에 따라 선택을 하고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 가족으로 살아가면서부터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대부분은 아마 일생일대의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느끼는 듯하다. (너무한 표현인가?)

가끔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으로는 최고였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함께 할 사람은 아니라는 이성적 판단을 한 것이다. 이유는 사사건건 나와 다른 판단을 하고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 삶을 돕는 동력자가 아니라 최고의 방해꾼이며 간섭자요, 원수로 느껴져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가족이 되었고 자녀가 생겨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이다. 남은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덧없는 것일지는 굳이 솔로몬의 교훈이 아니어도 누구나 다 직감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행복의 길

그러나 자신과 다른 선호경향을 가진 사람에게 특별한 매력을 가지는 이 본능이 틀린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대부분 사람은 배우자를 이성이 아니라 본능에 의해 선택을 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본능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본능은 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본능조차도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같은 유형의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반응하고, 똑같은 색깔과 디자인의 옷만을 입고, 똑같은 모양의 거리, 똑같은 모양의 집, 똑같은 모양의 차 등 나와 모든 것이 똑같다면?

아마 나는 이 세상을 더 살고 싶어지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당신이 선천적으로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성향을 타고났다면 직관적이고 사고적인 나보다 더 빨리 이 세상에 싫증을 내고 말 것이다. 정말 똑같은 것은 매력이 없다. 똑같은 것에는 생동감이 발휘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고유의 개성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왜? 그렇지 않다면 살고 싶지 않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제멋에 산다. 그런데 제멋을 느낄 수 없다면 무슨 낙(樂)으로 살겠는가? 남다른 존재감이야말로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나는 우리의 본능도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특히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우리가 이성보다는 본능을 택한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를 허무하게 만드는 이 선택들이 정녕 우리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말 이 세상 어떤 존재보다도 미련한 존재이지 않겠는가? 자신을 죽음과 같은 절망과 허무로 내모는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 믿는다. 우리의 가족을 이렇게 허무하게 하신 것도 물론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이보다 더 깊어서 이 깊은 허무 속에서, 그 허무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 인생의 생각과 다른 점이 이것이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도무지 이해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하셨다. 이런 분이 아니라면 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분이라면 어디 하나님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존재라면 적어도 나보다 한 수 아래의 존재일 뿐이다.

본성치유의 탄생

이처럼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들이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들이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노력으로 생각하며 제멋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본성치유가 불가능하다.

본성치유란 개념을 떠올리게 할 만큼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은 김영 목사님과의 만남이었다. 김영 목사님의 스토리텔링이란 세션을 통해 경험한 일들은 너무나 신비로워 당시에는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었다. 그저 경외로울 뿐이었다.

우선은 사람들 마음속에 그토록 감추고 싶은 기억들이 오랫동안 수십 년 동안이나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둘째는 그런 아픈 기억들을 서로 아는 바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가족과 친구들에게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인데 말이다. 셋째는 한 사람의 아픔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한 여러 사람에게 각각 다른 경험이지만 비슷한 공감을 일으킬 기억을 불러일으켜 함께 울게 했다는 것. 넷째는 각 사람에게서 각각 다른 치유가 일어났다. 다섯째는 그 한 번의 치유가 각 사람을 각각 다르게 성장시켰다.

나에게 특히 중요한 경험은 각 사람에게 모두 독특한 치유가 경험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에 사람들의 눈빛이 선해지고 맑아졌다. 얼굴빛이 밝고 생기를 찾은 듯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목표가 더 확실해졌고, 어떤 사람은 과감히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었지만 모두 현재의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았고 목소리에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더는 기운이 없다거나 피곤하다거나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이를 다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월간암(癌) 201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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