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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수기 - 사랑의 말을 할 줄 아는 내가 되련다
고정혁 기자 입력 2010년 10월 28일 17:25분880,362 읽음

이옥희 자궁내막암

조기 건강검진의 중요성은 병원마다 벽보판에 붙어 있었다. 여기저기 병을 달고 살아 병원 출입이 잦아 자주 보다가 몸이 이상하다 싶어 암 검진을 받게 되었다. 약간의 이상증세였는데 검진결과는 자궁내막암 1기였다. 수술을 하고 담당 선생님은 면담을 하고 생존율이 99%이고 환자가 우울증도 없고 정신도 건강하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퇴원하고 나니 정기적인 검사만 있을 뿐 약도 없었다.

하지만, 수술 후 몸은 이전과 달랐다. 자궁 쪽에 느껴지는 불편함부터 여러 가지 증세가 나타났다. 내가 느끼는 자각 증상에 대해 담당 선생님께 물어보니 수술한 환자들이 대부분 그와 똑같은 말을 하지만 괜찮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괜찮지가 않았다.
몸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문제들은 나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딱히 죽음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암환우들을 만나면서 더러는 지극하고 정성된 보살핌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전이하거나 재발하는 등 상황이 악화되어 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나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 될까 너무도 두려웠다.

책을 보고 암 관련 세미나와 환우들을 만나면서 생존율 99% 보장될 줄 알았는데 실제는 달랐다. 1기도 아닌 0기, 혹은 전암 단계에서도 암이 전이되어 급속히 나빠지는 것도 보고 5년 넘어 완치를 기뻐했는데 7년, 9년 만에 또 재발이나 전이하는 환우들을 보면서 암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99% 생존율이라지만 내가 그 1%가 될지 안 될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옛날 속담에 모르면 상팔자, 알면 지옥이라는데 요즘은 속담이 바뀌어 모르면 지옥, 알면 천당이라고 했다. 인도를 가는 사람이 차도를 가는 사람보다 훨씬 사고 날 확률이 적은 것이 당연하다. 나는 인도를 스스로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암에 대해 공부하고 지식을 넓히기로 했다. 암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치료방법을 앎으로써 암에 대한 공포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암은 산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몸의 체계가 다 깨지는 소모증후군으로 혈액순환병의 마지막 단계 질병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유전자의 변이로 오는 것이 암인데 젊은 나이도 아닌 62세로 과연 얼마만큼이나 복구가 가능할지, 몸의 체계를 다시 세울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지만 단계적으로 시도하기로 했다.

다양한 의학지식을 전하는 월간암 잡지를 통해 암환자지원센터를 알게 되었고, 환자들의 다양한 물음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질문을 정확하게 인지해서 치료할 수 있도록 친절히 인도하시는 국장님과 실장님의 말씀에 감사를 대신한다.

환우들 중에는 생활환경이 좋아 값비싼 고가의 약들로 치료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가난한 암환우다. 암 이외에도 만성질환을 달고 살아왔는데 고가의 약으로 치료하려면 금전적으로 무리였다. 처음은 돈으로 때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얼마 안가 돈은 바닥나고 제품 살 돈이 없어 절망하게 될 것이 뻔했다.

비싼 돈이 들어가는 제품군 및 치료방법은 모두 배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밑바닥에서부터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첫째로 정신수련, 둘째로 마음(심신) 안정, 셋째는 항암식품, 넷째는 운동을 목표로 세웠다. 잘 먹고 잘 쉬며 몸 상태를 올리고 면역강화에 주력키로 했다.
그리고 월간암에서 여는 강좌 아우토겐 자율훈련법에 참가하였다. 방법은 매우 쉽지만 진행하면서 나의 마음과 여러 부분이 깨져야 했다. 그 과정에서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남에게 기죽어 사는 것이 싫었다. 어깨에 힘도 좀 넣고 싶었고 자식들은 잘 가르쳐 좋은 데로 결혼시키고 싶었다. 집도 사고 재산도 늘리느라 전국을 다니며 일을 하기도 했다.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자기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나를 위해 떨어댄 억척은 결국 내 몸을 활성산소를 만드는 공장으로 만들어버렸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소소하고도 끊임없는 스트레스도 참 많았다. 아우토겐 수련을 하며 본연의 나의 모습과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친정아버지께서 의학 공부를 위해 동학사에 기거하신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가 끝나면 십리가 넘는 길을 둑을 걷고 큰 냇가를 건너 동학사까지 올라갔다. 가을이면 밤도 줍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학사 할아버지 스님은 참 인자한 분이셨다. 항상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주셨다. 스님 할아버지는 자식은 없었지만 대구에서 다섯 살 남짓한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계셨다. 난 스님 할아버지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좋은 일을 하면서 살겠노라고.

그 꿈은 결혼하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고 자리를 잡고는 공부도 하려 했지만 불행히도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다 깨져버렸다. 내가 열심히 살려는 내면에는 공부의 한도 서려 있었다. 배우고 싶었지만 가르쳐 주지 않았던 공부에 대한 한은 친정 식구를 대할 때마다 싸움을 걸고 분노하고 증오하고 미워하게 했다. 친정식구에게 과녁을 겨누고 상처를 주기 위해 화살을 쏘았고 기를 죽이고 주눅 들게 했다.
평생을 돌이켜 보니 내 몸에 에너지는 모두 세상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다.

아우토겐 이주희 소장님은 필요한 부분에 에너지를 주입시켜라, 몸의 에너지 있는 것을 잘 써야 한다며 이를 악물고 사는 것은 한계가 있고 한계를 넘어서면 언젠가는 병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나타난다고 하셨다. 암은 그중 마지막 단계의 병이고 소모증후군이며 1기나 4기나 의미가 없다했다. 사고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암도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아우토겐을 배우면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내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것을 조금씩 터득해나갔다. 꿈이 생기고 기쁨과 희망이 생겼다.

암대체요법 연구소 서재건 원장님의 완전한 몸 강의에서 신진대사의 중요성, 자율신경의 중요성을 들었다. 듣고 보니 나의 몸 구석구석 성한 부분은 없었다. 머리부터 간, 신장, 위, 소장의 기능이 다 허약했고 무릎도 상당히 안 좋았다.

내가 하고 있는 생활 속에서의 암 치유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둔해진 뇌를 일깨우려고 웃음치료도 혼자 잘 한다. 어느 세미나에서 배운 것인데 항암과 면역기능이 있는 음식들을 혀 밑에 넣어 침을 많이 나오게 하여 뇌신경을 자극하면 뇌파가 정상 작동되도록 유도한다고 하여 그 방법도 실천중이다. 간과 신장의 독소제거법도 하고 위와 몸속의 장기도 바른 먹거리로 기능을 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매일 산을 다니며 몸속에 산소 공급도 충분히 해준다.
침과 쑥뜸도 배워서 혼자 잘 뜬다. 하루에 1회 내지 2회 정도 각탕도 하여 몸을 따뜻하게 한다.

먹거리부터 시작해서 침, 쑥뜸, 각탕, 산을 다니고 살림까지 하려면 얼마나 번거로운지 모른다. 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첫 번째 장애물이 바로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 하나 먹자고, 나 하나 건강해지자고 시작했던 일들이 이제는 남편과 아이들의 건강으로 넓어졌다. 가족들은 나처럼 암에 걸리거나 다른 병으로 고생하기 전에 미리 이렇게 먹거리와 생활습관을 바꾸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덕분에 암환자의 하루는 손이 쉴 새 없이 바쁘다.

이제 수술 한 지 일 년이 넘었다. 서울에서 전남 장흥의 남편의 고향집을 둘러보러 다니고 있다. 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정남진. 정남진은 참 아름답고 따뜻한 남쪽 고을이다. 바다를 둘러싼 땅이 둥글고 바다에서 보는 하늘도 둥글다. 정남진의 바다는 어머니의 바다다. 모든 만물을 품에 기르는 생명력의 바다,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평안의 바다, 세상의 갈등을 치유하는 관용의 바다라 하여 소설가 이청준은 해질녘 바다에 들면 나를 에워싼 땅과 섬들이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린다 하였다.

이곳이 참 좋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넉넉해진다. 남편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뒤뜰의 치마산이 있고 서쪽엔 서산봉, 집 앞쪽에는 기러기가 앉는다고 하여 안지산이 있고 바둑판같이 넓은 간척지에는 푸릇푸릇 보리밭 초원이 펼쳐져 있다.

나의 혼과 자연의 혼을 연결하는 통로인 해송들이 주변의 산자락을 빙 둘러싸고 있다. 이제 이 넉넉한 어머니의 품인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다.

즐거운 말을 할 줄 아는 나.
축복의 말을 할 줄 아는 나.
사랑의 말을 할 줄 아는 나.
주변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는 재미있는 말을 할 줄 아는 내가 되련다.

월간암(癌)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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