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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투병수기[투병 이야기] 좁은 문을 선택한 부부의 투병기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6월 23일 13:54분884,594 읽음
강나윤(39) | 유방암.
2002년 문득 가슴에 종양이 잡혔다. 양성으로 판정됐고 6개월마다 한 번씩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사는 게 바쁘다보니 잊어버리고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그 사이에 집 안팎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지냈었다. 이상의 징후를 발견한 것은 남편이었다.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다니던 병원을 찾아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악성 같으니 빨리 대학병원에 가서 생검을 받아보라고 한다.
부랴부랴 대학병원을 가서 진단을 받았다. 암 덩어리는 1.7Cm의 크기로 위치가 바로 유두 옆에 있어서 여유를 둘 자리가 없어 가슴을 살릴 방도가 없다고 한다. 유방 전체를 모두 들어내야 한다고. 그러니 수술 전에 항암치료를 해서 크기를 줄여보자고 하셨다. 가능성은 50 대 50이라며. 내겐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앞뒤 돌아볼 여유가 없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모종의 결심을 하고 나의 암치료 방향을 결정하고 있었다. 당사자인 나와는 의논도 없이.
남편은 암에 대해 아픈 기억이 있었다. 20년 전 젊은 시절에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당시 폐결핵으로 오진하여 몇 년을 결핵치료를 받다가 상황이 악화되어 뒤늦게 폐암임을 알게 된 경우이다. 남편은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건강서적을 읽고 도움이 되는 전문가들을 많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폐암을 알게 되고 2개월 만에 돌아가셨는데 그때의 경험은 남편에게 큰 상처를 남겨주었다.
오진, 잘못된 투약, 불친절한 의료진, 임종 전의 고통스럽던 아버지의 모습 등의 기억이 남아 나의 유방암 발병은 남편에게 다시금 그때의 상처를 헤집게 만들었다. 아내까지 또다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편을 적극적인 투병의 길잡이로 만들었다.
어느 날, 항암 치료도 하기 전 남편은 나를 차에 태우고 <밥따로 물따로>의 저자 이상문 선생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평생회원에 가입을 시키고는 대체의학으로 치료하겠노라고 사람들 앞에서 공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결혼 전 간호사 일을 했던 나로서는 암 진단에 걱정이 앞섰고 병원에 입원도 해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데려가질 않나, 무슨 놈의 대체의학을 해야 한다고 하질 않나…. 남편의 일방적인 태도에 속상하고 화가 나서 혼자라도 병원을 가겠다고 우겨서 겨우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 기본적인 조직검사를 끝내고 맞을 항암제도 결정을 하고 내일이면 치료에 들어가는 저녁이었다.
초췌한 얼굴로 입원실에 누워있는 데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도저히 항암 치료를 받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짧은 기간이지만 녹즙기를 병실로 가져와 녹즙을 짜주고 감자를 가져와 생즙을 내어 먹이곤 했다. 그 좁아터진 병실에서 내 옆에 붙어 부산스럽게 간병을 했었다. 수술도, 항암 치료도 받지 못한 채로 남편의 우격다짐으로 병원을 나오는데 얼마나 서럽던지…. 나중에서야 남편은 생검할 때 밖에서 내가 지르는 비명소리, 조직검사 때의 고통스런 모습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결심을 했다고, 자기가 책임을 지고 나를 반드시 살리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날로 생업을 포기하고 일 년 동안 남편은 오직 나에게만 매달렸다. 경제적인 활동을 그날로 접어버리고 병원을 나올 때 힘들어하는 내게 한 약속, 반드시 나를 살려주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는 데 있는 힘을 다했다. 너무나도 열성적인 남편의 모습에 시댁과 친정 가족들도 모두 승복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남편은 틈을 내어 우리나라의 이름 있고 알려진 대체의학자, 자연요법가, 암을 이겨낸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책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멀리는 거제도의 옥미조 선생을 만나 조언을 듣고, 단식도 배우러 다니고, 음양단식법을 하고, 녹즙을 짜서 먹이고, 포도요법을 배우고 요로법을 찾아 하고…. 특히, 나와 같은 경우-병원 치료 없이 투병-로 건강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전국으로 찾아다녔다. 건강관련 책이란 책은 모두 다 사들여서 새벽 2시까지 책을 정독하고 필요한 부분은 내게 읽어주고 보여주곤 했다.
하루 일과표를 짜서 현미밥을 먹고 생채소를 먹고 내 팔을 끌고 산을 올라가고 커피관장을 하고…. 남편은 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요법을 배워서 먼저 하곤 했다. 그리고는 함께 했다. 아니, 더 지독하게 열심히 했다. 포도단식을 할 때는 솔직히 혼자 했으면 중간에 그만뒀거나 대충 넘겼을 텐데 아프지도 않은 남편은 악착같이 굶어가며 어찌나 열심인지 차마 싫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또, 남편은 나의 발병 이유를 나름대로 파악했다. 특히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데 애를 썼다. 매일 새벽이면 함께 산에 올라 무관심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며 내게 서운하고 힘들었던 일들을 묻곤 했다. 차라리 암이라도 걸려 죽고 싶을 힘들었던 당시의 상황-가게일과 고부간의 갈등,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자 가게를 처분하고 어머니를 설득시켜 분가를 했다. 힘들게 했던 주위의 모든 상황을 모두 다 막아주고 바꿔주고 오직 나를 살리는데 24시간 온 힘을 다했다. 그 모습에 병원 치료를 못 받게 한다고 너무도 속상했던 마음은 어느새 누그러지고 몸은 점차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음악줄넘기’라는 생소한 운동을 권한 사람도 남편이었다. 지금은 음악줄넘기 1급 자격증을 따고 외국으로 공연을 다니고 학교로 초청 강의도 나간다. 우리 부부는 건강관련 자격증도 두어 개씩 땄다. 그때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6년의 세월이 지나가며 이해가 되었다.
암환자 누구나 나와 같이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받지 말라고 말하려고 투병기를 쓰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맡기지 말고 스스로 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투병의 길을 찾았고, 좁은 문이었지만 그 길을 택해 열성적으로 6년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길을 걸었고 이제 새로운 인생을 감사히 살아가고 있다.
너무 힘들기만 했던 지난날에 비해 지금은 매일 즐겁다. 여전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생기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지만 행복하다. 대부분의 암환자는 당장 암만 없으면 행복할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사실 암이 없어도 행복의 좁은 문을 찾지 못하면 여전히 불행하고 고통스럽다. 어떻게 하면, 무엇을 먹으면 암이 없어질까 하는 궁리만 하고 집안에서 지내며 두려움에 사로잡혀 수동적으로 투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집에 있었다. 이전부터. 암을 만나 고통의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는 법을 배웠다. 여러분들도 집안 어딘가에 있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시기를 소망한다.
월간암(癌) 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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