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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김경희의 간병기 ⑪ 좌충우돌,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다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6월 11일 13:44분882,097 읽음

김경희(44)|미용업. 야생화사진.
남편(48)|혀암. 식도상피내암. 위상피내암. 간암. 간내담도암. 비장비대증. 간섬유종. 간세포암.

이 글은 2년 동안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기록들입니다.
간병기를 쓴다고 하나 아내입장에서 쓰다 보면 이야기가 자꾸 곁가지로 빠지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 병은 늘 예고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내 무지까지 들추어내야 하기에 힘든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 우리 부부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그즈음 검푸른 자두가 익어갔고 날마다 자두 따 먹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있노라며 즐거워했지요. 하지만, 실상 날마다 복수가 늘어갔고 얼굴색과 눈빛은 노랗게 변해가고 움푹 꺼진 눈을 보면 꺼져가는 불빛을 보는 듯했습니다.

정상적인 소변과 대변이 어려워졌고, 볼수록 힘겨워하는 남편과 의논 끝에 산속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고, 듀파락과 라식스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지요. 약을 처방하며 의사는 약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길었습니다. 이 약은 간 문맥이 이상이 왔을 때, 복수로 힘겨울 때, 또는 환자 스스로 소변이나 대변을 볼 수 없을 때에 쓴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약으로 순간 위기를 모면하신 분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간 다스리는 법>이라는 곳에 나와 있는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열심히 이야기했고 또, 이종수 박사님의 책에 나와 있는 약에 설명 중에서 긍정적인 측면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은 만약에 경우 쓸개즙이 과다분비 될 수도 있고, 수분이 모자랄 수도 있고 등,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어쨌든 듀파락을 두 번 먹고 라식스는 하루에 한 알씩 처방받아 먹으니 조금은 안정기에 접어든 듯 보였지요.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집으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모님이 그리웠나 봅니다. 그때까지 거의 2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암에 걸렸다거나 암에 대한 언급을 가족 모두 부모님께 비밀로 했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환자인 남편 즉, 아들이 가려면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시부모님은 그때까지 남편의 병을 간경화로 알고 계셨습니다. 아들의 혀암 수술도 몰랐고 간암 고주파 수술도 몰랐습니다. 결국, 시동생과 시누이와 함께 의논을 하여 남편이 가는 길을 열기로 했습니다. 부모님께 자식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제게 너무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약한 시어머니와 건강하지 못한 시아버지가 혹시나 쇼크가 오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시누이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부모님께 알리냐는 시누이에게 저는 더 망설일 시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는 두 번째 눈물을 흘렸습니다. 남편의 병이 깊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저 자신과 혹시 모든 끈을 놓아 버리려고 집으로 간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밤새 내내 소리 없이 울었지요. 울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만에 하나라도 부모님이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습니다. 혹시 부모님 사랑이 어떤 역할을 해 준다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요.
그때, 옆방 아저씨도 집으로 돌아갔고 혼자 산채에 놓여 있어서 남편은 끈 떨어진 사람과도 같이 홀로 외로웠습니다.

막상 짐을 정리하니 말이 산채 생활이지, 짐이 한 트럭이 나오고 삼촌 차에 실은 약재도 하나 가득했지요.
친정으로 보낼 것은 보내고, 남편이 가져갈 것을 다 챙기고 떠나기 전에 회문산과 옥정호를 바라보니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이 좋은 곳을…, 더구나 그때쯤 산 열매가 익어가고 있어 남편 먹거리가 넘쳐나는데 저걸 두고 어찌 가나 싶기도 했습니다. 남편과 삼촌은 짐에 묻혀 부모님이 계신 거제로 내려가고 저는 그다음 주에 내려갔습니다. 저를 보더니 남편이 대뜸 하는 말이 변을 볼 수가 없답니다. 이제는 관장도 더는 할 수가 없답니다.
“여보, 이리 와봐.”
“왜?”
“한번 봐봐. 이상하지?”
“글쎄, 이상하지는 않은데, 그런 증상은 당연한 건데….”
“진짜?”
“응.”

사실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랜 복수 때문인지 몰라도 탈루라고 하나? 잘 모르지만 항문 밖으로 장 일부가 나와 있었지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순간 남편이 더는 못 버티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도 안 된다고 하네요. 약은 겁이 나서 더는 못 먹겠다고 하며 이제까지 해오던 것을 정리하고 아침에 생고구마와 사과를 먹는다고 합니다. 저는 무언가를 해야 했습니다.

거제도에는 알로에 농장도 많고 알로에를 키우는 분도 많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 아침 내내 이 농장, 저 농장을 기웃거리며 다녔지요. 쉽지는 않았지만 드디어 발견했습니다. 땅을 파보니 땅속에 거름이 나왔고 땅도 건강했지요. 알로에 묘목을 파종하고 계셨는데 잎이 노르스름하고 가시가 약간 붉은빛을 띤 알로에베라를 발견하고는 두 그루를 샀습니다. 옆 밭두렁에 키가 큰 아보레센스 몇 그루가 있어 한 그루에 만 원을 주고 사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유기농 요구르트에다 가시만 없애고 알로에를 갈아서 복분자 효소를 첨가해서 마시게 했는데 남편이 먹기 좋다고 합니다. 시아버님께 알로에 농장 위치를 알려 드리고 먹어보고 효과가 있으면 계속 먹자 하고는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남편에게 알로에가 잘 맞았는지 하루가 다르게 차도를 보인다고 하네요. 일주일 만에 장루 탈장된 것이 들어갔고 복수도 많이 빠졌다고 합니다. 운동도 하고 걷는 양도 많아져서 산에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전화기 너머로 전해오는 목소리에 제가 더 놀랐습니다. 하루하루 목소리도 좋아져 갑니다.

보름 만에 만난 남편은 놀랄 만큼 달라져 있었습니다. 남산만 한 배는 쏙 들어갔고 누렇던 얼굴이 발그스레해졌고 거무스름하던 입술은 산삼을 먹었을 때처럼 발그스레했습니다. 남편의 기적 같은 회생은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날에야 저는 남편에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얼마나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있었는지요.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해 주었고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선에서 돌아온 남편은 아기 같고 유리 같아서 어머님께 신신당부하고 돌아왔습니다. 두 분은 절대로 남편 앞에서 말다툼하지 말고 오순도순 사이가 좋아야 한다, 예민한 상태이니 항상 조심해 달라 했습니다. 다행히도 남편의 상태는 점점 좋아지고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계절은 어느덧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거제도 시인의 마을에서 암환자 음악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남편은 혼자서는 절대 못 가겠다고 해서 내려가서 함께 참석했습니다. 남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며 기적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늘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이보님도 남편의 회생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고 부산의 강아님, 그리고 쮸맘님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저에게 다짐하자며 말을 꺼냈습니다.
“당신이 인터넷 활동을 하고 사람 만나고 유명인사가 되어도 괜찮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나에게 사람을 보내지 마라. 또 하나는 꼭 암환자와 만난다 해도 절대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면 안 된다. 난 투병 중이고 앞으로 더 열심히 몸을 만들어야 하니 절대로 안 된다.”

남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저도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흔쾌히 그러마 하고 약속했지요.
그 사이 산에서 함께 생활하던 분이 병원에서 돌아가셨고, 또 한 분은 무척 악화된 상태였는데 남편에게는 말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생겼지요. 이른 아침,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가야, 니 신랑이 없어졌다.”
“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언제 나갔는지 모르겠다. 어짜면 좋노?”
“어찌 된 일인데요?”
“마, 니 엄마랑 소소한 거 갖고 잔소리 좀 했디. 마 얼로 가

월간암(癌)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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