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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특별한 거름으로 크고 있는 씨앗 하나⑤
고정혁 기자 입력 2009년 06월 03일 15:55분882,961 읽음

정병귀 | 아들 간모세포종 4년 투병 중

4차 항암을 위해 병원에 갔다가 입원을 위한 혈액검사를 하였는데 백혈구, 헤모글로빈, 혈소판은 다 좋은데 ANC가 750밖에 되지 않아 수치 주사만 맞고 집으로 되돌아왔다. 선배들 이야기에 의하면 갈수록 수치가 오르지 않는다는데 수치 주사라도 계속 맞혔으면 하는 후회가 든다. 물론 내가 처방할 수도 없고 의사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야 하지만 한 번 얘기를 해봤으면 어땠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집으로
하규의 입원수속을 하다가 갑자기 내가 현기증과 오심이 나서 한참을 헤맸다. 수치가 좋지 않으니 집으로 갔다가 다시 오라는데 다른 때 같았으면 좀 속이 상하였을 법도 하지만 내가 간호를 할 상황이 아니라 얼른 내일 오겠다고 하고는 집으로 와서 한잠 자고 나니 어지러움이 다소 가셨다. 닥치는 대로 살아야지 하면서도 나름대로 입원에 대한 걱정이 있었나 보다.

4차 항암 중
CDDP를 시작으로 주사가 들어간다. 3차도 잘 넘긴 것으로 판단하신 선생님이 75% 쓰던 약을 100%로 올린다고 한다. 항암제는 제 몸이 버틸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하시며….

그리고 이렇게 약을 많이 쓰면 열이 날 수도 있으니 잘 관찰하고 열나면 입원하라 신다. AFP 수치는 원하던 <5가 세 번째로 나왔다. 간수치가 다 지극히 정상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아침부터 병원 밥은 못 먹겠다는 하규에게 오므라이스를 사다 아침을 먹이고 좀 있다 마트가 문을 열 때쯤 가서 비요트와 우유를 사다 미숫가루 타서 먹이고 점심에는 프레스코 크림스파게티가 먹고 싶다 하여 사다 먹이고 좀 전에는 동아일보를 사오라 하여 사다 주었다.

이것도 행복이다. 먹겠다고 하고 읽겠다고 하고…. 입원하면서 책도 많이 들고 와서 책도 읽고 신문도 읽고 먹을 것도 챙긴다. 신문을 읽는 하규를 보고 간호사 선생님이 소아병동에서 보기 드문 신기한 일이란다. 그래, 오늘은 이것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하루를 넘기자.

하규의 단식
지난번 뇌파검사도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먹을 것을 쉴 새 없이 사다 바치던 행복한 종노릇도 그날 저녁 오렌지를 사오는 것으로 끝이 났다. 힘든 줄 모르고 이것저것 사다 먹였는데 약이 들어가면서부터는 아예 단식을 하고 누워있다.

평소보다 약이 더 많이 들어가서일까? 둘째 날이 되자 아이는 하루 중 22시간을 자고 소변을 보거나 혈압을 재는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누워 잠만 잤다.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마음이 아프지만, 마음만 아프지 무엇 하나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참으로 이 아픔이란 것은 정말 개인적인 것이다. 엄마라고 하는 나조차도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으니 말이다.

전날 사온 오렌지를 3분의 1이나 먹었을까? 토해내더니 다음날은 녹차 500밀리를 마시고 그것도 토해버린다. 먹은 것이 없으니 헛구역질만 하는데 그것은 또 얼마나 힘이 들까? 1차, 2차, 3차까지는 의지력으로라도 구토를 참아내더니 약이 쌓이면서부터는 의지력으로 되지 않는가 보다.

그런데 어제부터는 이제 약에 적응되었는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지만 밥은 생각지도 못하고 음식 이름만 얘기해도 구역질을 한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하규야 힘들지? 하면 아이는 씽긋 웃으면서 괜찮다고 한다.

CT 촬영한 것이 결과가 잘 나와야 할 텐데… 신경이 쓰인다. 내일까지는 궁금한 것을 참고 견뎌야한다. 그렇지만 이 상황도 감사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다
엊저녁까지 주사를 다 맞고 아침 일찍 케모포트 바늘을 빼주신다고 했지만 이런저런 수속을 밟느라 거의 12시가 되어 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늘어져 있던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제가 좋아하는 빵과 과자를 먹겠다고 하여 조금만 먹고 쉬라하였는데 언제 그랬더냐 싶게 제 할 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병원이 주는 압박감이 더 힘들게 하나보다. 병원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게 한다.

회진 시 선생님마다 이번에는 약을 많이 써서 수치가 금방 떨어질 터이니 집에 가자마자 멸균식을 할 것, 손을 씻고 아이를 만질 것, 가족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당부하셨다. 또 열이 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 집에 와서 포카리스웨트를 많이 사놓고 물 대신 수액과 비슷하다고 하는 포카리스웨트를 무조건 마시라고 했다. 그것으로 열이 나는 것을 막아보려는 속셈인데 어떨지는 모르겠다.

우리집 식당 휴업하다
CT의 결과는 좋다고 했다. 수치도 세 번 정상으로 나왔고 CT도 깨끗하게 나와서 앞으로 두 번 더 항암치료를 하고 종결하겠다고 한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저녁이 되어 누룽지를 끓여서 먹으라고 나물반찬과 함께 상을 차렸더니 방에서 나오다가 구역질을 하였다. 아이는 운동복에 반팔티를 입고 있었는데 냄새가 심하다면서 밖으로 냅다 뛰쳐나갔다. 차려놓은 밥상이라 치울 수도 없어 남편과 나는 최대한으로 빨리 밥을 먹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있다가 아이의 화난 목소리가 들린다. 엊저녁은 비가 오면서 날씨가 추웠는데 반소매를 입고 나가니 한기가 들었나 보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서 화난 듯이 말을 했다.

서운했을까? 저는 이렇게 고통을 받는데 부모가 밥을 먹는다고, 앉아 있다고 속이 상했을까? 전에 없던 일이라 나도 남편도 깜짝 놀랐다. 병원에서도 저는 못 먹지만 엄마는 밥을 먹고 오라하고 엄마가 먹어야 간호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던 아이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큰 아이가 저토록 화를 버럭 내다니….

친구에게 전화가 오고 이내 평정을 되찾은 아이는 친구에게 말한다. 사탄의 꾐인지 갑자기 절망감이 들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그러더니 친구에게 자랑한다. 이번 CT촬영 결과가 잘 나와서 2번 더 치료받으면 끝난다고 말이다.

아침에는 당연히 아이의 눈치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나 살피다가 아침밥을 하지 않았다.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하는 큰아이 민규도 엄마가 밥을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미숫가루에 빵과 오렌지를 먹고 학교에 가고, 우리 식구 모두 전혀 냄새가 나지 않는 가벼운 식사로 아침을 넘겼다.

점심이 되어도 나는 밥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에만 있으면 더 식욕이 없을 것 같아 뒷동산에서 용마산까지 걷다가 점심을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서 무엇을 먹어보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낙지 수제비를 매콤하게 먹고 싶다하여 음식점에 가면 또 음식냄새에 질릴까 봐 포장해 가지고 와서 한 공기 좀 넘게 먹었다.

당분간 우리 식당은 휴업해야 하나보다.

아직도 식당은 휴업 중
내가 아무리 아파도 아침밥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규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 전에는 한 번도 부엌을 맡기거나 끼니, 특히 아침을 하지 않은 기억이 없다.

어릴 때, 결혼 전에 나는 맹장이 터지고 복막염을 앓았고 더 어릴 때는 팔의 골절로 휴직을 두 번이나 했었다. 휴직을 하고 투병을 할 때 아침을 거르고 늦잠을 자고 싶어 하는 내게 아버지는 이 아침을 거르면 네 평생에 다시 찾아먹기 어렵다시며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잠을 잘 것을 주문하셨다.

그때 생긴 버릇인지 아이들이 아침이면 시간에 쫓기지만 나도 밥을 먹지 않으면 학교에 갈 수 없다고 우기면서 꼭 아침을 먹여 보냈다.

덕분에 남편과 나는 가끔 빵으로 먹자고해도 아이들이 밥을 고수하여 아침밥은 꼭 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침은 물론 점심도 음식 냄새를 피울 수가 없어 우리집 식당은 개점휴업이다. 음식을 사다줘도 구역질을 하며 되도록 먹지 않으려 하는데 눈치 없는 엄마 뱃속은 계속 꼬르륵거린다. 이러다가 둘 다 쓰러질지도….

집에서 냄새를 피우면서 해주면 냄새에 질려 더 먹지 못할 것 같으니 저녁에는 또 뭐라도 사다가 강권하며 먹으라고 해야겠다. 먹고 토해도 먹어야 살지 않겠니? 하규야. 주민등록증 나온 아이의 간호는 이게 힘든 거구나 싶다. 아이들은 토할 때는 토하더라도 주면 잘 받아먹는다. 엄마가 한 마디 야단이라도 치면서 먹여주면 잘 받아먹는데 이 큰 아기는 제가 알아서 먹는다고-뭘 알아서 먹나- 조금만 참으라고 하는데 걱정이다.

늘 때가 되면 뭘 먹을까, 무엇을 해서 밥상에 올릴까 고민하였었는데 그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것을 지금 깨닫는다.

건강보험, 비보험
외래 날이 다가와 의사선생님께 구토가 너무 심하여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고 하니 진토제를 처방해 주셨다. 보험이 되지 않는 약이라 약값이 비쌌다. 항암치료를 하는 아이들이 경계해야 할 폐렴약은 금, 토, 일에만 먹는데 한 번에 세 알씩 하루 두 번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먹으면 토할 때는 약을 먹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난 금요일에 먹어야 하는 것도 아직 다 먹지 못했는데 오늘이 또 금요일이라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보험이 되지 않는 펜타미딘을 처방해 주셨다. 펜타미딘은 약 15분간 폐로 직접 들어가게 심호흡을 하면 되기에 한 달에 열두 번 먹어야 하는 박트림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계속 토하면서도 보험이 되는 진토제나 맞으면서 삼키지도 못하는 약을 계속 토하면 또 먹이고를 반복해야 한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슬픈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식이 아픈데 그 무엇이 아까우랴마는 다달이 세금처럼 내는 건강보험이 필요할 때는 또 다른 돈을 더 지출해야 한다니 참 그렇다.

또다시 금식
약을 많이 써서 열도 나고 입 안도 헐 것이라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열이 무서워서 포카리스웨트를 물이려니 생각하고 많이 마시라고 했는데 가글을 좀 열심히 하지 않은 때문인지, 약 때문에 정해진 순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입안이 아프다면서 말도 조금만 한다.

어제 병원에서 혈소판 수혈을 했다. 혈소판 수혈을 하면 열이 오르는 아이도 있다고 하여 더 많은 양의 포카리스웨트를 마셔 열은 계속 미열 상태로 있다. 응급실행은 어떻게 피할 것도 같은데, 입안이 아파 죽을 먹고 있다. 죽도 잣죽처럼 갈아놓은 것은 마시는 듯이 먹지만 전복죽처럼 씹을 것이 있으면 힘들어한다.

괴롭다. 힘이 든다.

마취 가글하다
전복죽처럼 씹어야 먹을 수 있는 죽을 먹지 못하니 잣죽만 먹다가 어제는 단호박 죽을 먹겠다고 하여 끓여 그래도 조금 먹었다. 입안이 헐어서 말 수가 줄 정도이니 무엇을 먹겠나 싶다.

그래도 나를 들볶지 않고 저 혼자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데 아침에 내가 왜 그랬을까 싶다. 약의 용량이 많아서 선생님들이 입안이 헐 것이라고 말했건만 아파하는 아이를 보니 공연히 화가 났다. 왜 가글을 게을리 했니 하고 화를 벌컥 내어 조금 냉전 상태가 되었다.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저 혼자 아파하면서도 꿈쩍 않고 있는데 쳐다봐 주는 것도 못하나, 에미라는 것이…. 참 한심한 노릇이다.

입을 크게 벌리지도 못할 정도로 아파하여 오늘 외래에 간 김에 선생님께 이비인후과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더니 수치가 0인 상태에서는 이비인후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마취 가글을 처방해 주셨다. Lidocaine garg 1%를 밥먹기 전 20분쯤에 목안에 넣고, 위 내시경 할 때 목 마취를 하듯이 1분여를 있다가 뱉어내고 물로 헹구어내면 입안이 마취가 된다 하였다. 대신 입맛이 없어진다며 이것을 하겠느냐고 했더니 아이가 하겠다고 하여 처방을 받아왔다. 무엇이든지 먹어야 기운을 내어 병을 이길 것이 아닌가.

마취를 하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 속이 상하지만 그래도 먹어야 한다. 입이 아프지 않으면 뭘 먹고싶냐고 물었더니 킹크랩을 먹고 싶다하여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들러 한 마리를 사다 쪄 주었더니 약 덕분으로 배 불리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다. 수치가 0인 상태에서는 감염되어 열이 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 밖에 없다. 감염을 막는데 쓰는 약 바이버정 200mg을 20알 처방받아 6시간마다 먹여야 한다. 오늘부터 주일까지 수치가 바닥을 치고 어쩌면 월요일부터는 수치가 오르기 시작하여 수요일쯤에는 뛸 것 같은데 그동안은 정말 조심하여야 한다. 온 가족이 마스크 쓰고 밖에 갔다 오면 손을 씻고….

병원 다녀와서 힘이 드는지 점심 먹고 자는 아이가 너무 안쓰럽다.

응급실에서 원자력 병원으로
일주일 내내 미열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지난 토요일(28일) 저녁에는 38.7도가 되어 깜짝 놀라 병원으로 갔다. 역시나 응급실은 만원이었다. 병실이 없는 것은 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싸이즈도 맞지않는 소아응급실의 침상에서 보호자는 달랑 의자 하나를 의지하면서 밤을 보내야했다.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고문인지 또 밤에 이부자리를 펴고 개는 일이 얼마나 행복인지 깨달은 날들이었다. 어제는 견디다 못해서 바닥에 신문과 타올, 홑이불을 깔고 노숙을 했다. 체면이고 뭐고 다 사치였다.

꼬부리고 자다 앉아서 자다 각종 항생제를 막 뿌려버리는 병원바닥에서 신문을 깔고 잘 수 있는것도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새벽에 제주도에서 왔다는 신환의 아버지는 그 새벽에 신문을 어디서 구할 수 도 없었는지 바닥에 그냥 양복을 입고 드러누웠다. 그렇게 자는것 또한 행운이라고 금요일에 들어온 보호자가 말을 했다.

아이는 열이나서 힘들어하는데 그 자그마한 침상하나 차지하지 못해서 병원복도에 휠체어 하나에 아이만 앉히고 보호자는 복도 바닥에 앉아있었단다. 그러니 그 상황도 불평할 처지가 아니었다.

왜 또 이렇게 신환이 많이 들어오고 열환자가 많은 것일까.

오늘 내일 수치가 오를 때이지만 병실에는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으니 협력병원인 원자력병원으로 보내졌다.

그동안 아이는 입안도 많이 좋아져서 엊저녁에는 비후까스를 먹고 이제는 먹고싶은것은 먹을 수 있을정도는 되었는데 수치가 낮아서 조심스럽게 먹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몸이 많이 힘들고 지쳐서 원자력병원으로 오는것도 짜증이 났는데 아이는 엄마 이제 한 두어달이면 이 생활을 끝인데 언제 이런경험 해 보겠어요 그동안에 이 병원도 가보고 저 병원도 가보고 하는것도 좋지않아요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맙네

오늘 내일은 또 어떤이들과의 만남이 있을까 서로 힘이 되는 원자력병원에서의 날이었으면 좋겠다.

월간암(癌) 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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