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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골목 위의 휠체어
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4년 11월 21일 17:01분266 읽음
글: 김철우(수필가)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과거 군부대 부지였다. 군부대가 이전하며 토지를 불하(拂下)받아 동네가 형성되었으니, 다른 지역에 비하면 계획적으로 개발되었다. 집 앞 도로는 200여 미터가 직선으로 이어졌으며, 인근 도로 역시 바둑판처럼 형성되었다. 우리 골목 위쪽이 주변에 비해 지대가 다소 높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집을 나서며 나는 먼저 우편함을 살피고, 차가 오는지 여부를 양쪽으로 확인한 후 걷기 시작한다. 구청 일을 보거나 카페에 가려면 위쪽 길로, 재래시장이나 다양한 교통 연결을 원하면 아래쪽 길로 간다. 지하철 역시 호선별로 나눠 길을 잡아야 하니 위아래 길의 선택은 절반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귀갓길 역시 교통편이나 교통상황 또는 지름길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골목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집을 나서거나 들어오는 순간에 이상한 시선 하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선의 발신자는 골목 위쪽 끝, 전봇대 바로 아래 휠체어에 앉은 그였다. 그의 시선을 처음 대했을 때의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우리 집 대문에서 5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이므로, 식구들이 들고나는 것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이다. 어디 우리 집뿐일까. 200여 미터의 골목길에 마주 보며 앉은 집들의 대문을 통과하려면 그의 시선을 피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언젠가 서대문형무소에서 봤던, 긴 복도 끝에 놓인 교도관 자리를 떠올린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한동안 아래쪽 길을 택하며 그의 존재만 확인하거나, 그가 자리를 잡지 않았을 때 위쪽 길을 선택해서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와 정면으로 마주할 일이 생겼다. 마침 구청에 서류를 찾으러 가는 일이 생겨 점심 식사 후에 집을 나서던 길이었다. 늘 하던 대로 우편함을 확인하고 좌우를 살핀 후 위쪽으로 길을 잡아 서너 걸음을 뗀 순간, 전방에서 느껴지는 시선. 그였다. 챙이 넓은 모자와 파란색 조끼, 휠체어에 앉은 채 무릎을 모으고 그 무릎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은 자세가 반듯하다. 필시 장애가 있을 거라는 추측은 휠체어뿐만 아니라 한눈에 봐도 작은 신장 때문이었다. 십 미터쯤 가까이 왔을 때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와 눈빛이 폭풍처럼 달려와 박힌다. 무표정의 원형(原形)이랄까. 감정 따위는 조금도 허락하지 않은 기백이 대단하다. 좋거나 싫은 감정이 조금이라도 비치면 그사이를 파고들 텐데 도무지 틈이 없다. 내 눈빛을 피할 의도 역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싸우자는 걸까?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확연하게 드러나는 그의 눈빛에 적의(敵意)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흘겨보는 시선도 아니다. 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고개를 돌려가며 내 눈빛을 정면으로 맞춘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먼저 난감한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첫 번째 눈빛을 교환하고 나서 다시는 그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의 ‘적의 없음’을 확인한 후로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일행과 대화하는 식으로 외면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는 외면의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으로 내 시선을 좇았다. 물론 나의 태도와는 별개로 그에 대한 궁금증은 놀이동산의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복장으로 보아 인근 주민이 틀림없을 터인데 사는 곳은 알지 못했다. 아니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표정과 복장이 전부였다. 그는 왜 그 자리를 지키는 걸까? 골목길의 파수꾼이나 보안관 같은 역할 놀이를 하려는 걸까. 어린 시절 손을 놓친 피붙이라도 찾는 것일까. 아니면 느지막이 사람 구경하는 재미를 알아버린 은둔자일까.

커진 궁금증은 그의 행태를 관찰하는 것으로 발전해 갔다. 십여 개월을 관찰하며 그가 자리를 잡는 시간 등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오전에는 자리에 없다. 오전에 자리를 지킨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여름이나 겨울에도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바람이 심하거나 비가 오는 등 궂은 날씨에도 그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나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볕 좋은 오후라면 그의 눈길은 골목길 위에 고정되어 있다. 그렇게 그의 행태가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한 달쯤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고향에 내려갔거나 앓아누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얼핏 보아도 오십 대 중반은 넘은 나이로 보였으니, 질병과 친해질 때가 아니던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의외의 장소였다, 늘 자리를 잡았던 전봇대 아래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그가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원래 있던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의 입구였다. 턱선이 안 보일 정도로 덥수룩한 수염의 초췌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수염이 없을 때와는 족히 열 살은 넘게 차이 나는 얼굴.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예의 그 무표정은 사라지고, 처진 어깨에 좌절의 표정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외면하는 내 발길도 천근의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눌렀다. 나는 이미 마을의 풍경화 속에 그를 그려 넣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그는 부재중이다. 볕 좋은 오후에도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늘 앉아있던 전봇대 아래에도, 마지막으로 보았던 좁은 골목길의 입구에도 그는 없다. 그를 지나쳤던 많은 시간 동안 나는 왜 가벼운 인사나 목례조차 하지 않았을까. 깊이를 알 수 없었던 그의 눈길이 어쩌면 소통을 기대한 유일한 신호였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제 그가 자리를 비운 지 수 개월째. 내 일상은 변함이 없다. 그가 앉았던 전봇대 주변에서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긴 것 말고는.
월간암(癌) 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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