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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파란 우산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4년 10월 21일 12:44분246 읽음
글: 김철우(수필가)
사무실 한쪽 구석에 우산이 서 있다. 짙은 파란색 우산은 무채색으로 둘러싸인 사무실 벽과 뚜렷하게 대비되어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눈길을 잡는다. 우산은 가는 쇠로 살을 만들고 나일론을 씌운 흔하디흔한 박쥐우산이지만, 크기만큼은 예사롭지 않다. 뒤에 놓인, 3단으로 접어 우산대만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검은 우산이 초라하게 보일 정도다.

자꾸 우산에 시선이 가는 이유는 크기뿐이 아니라 독특한 맵시 때문이기도 하다. 우산은 편하게 손목에 걸칠 수 있는 기능을 포기한 날렵한 일자형이다. 흰색 금속의 우산 꼭지는 길고 뾰족하여 위압적인 느낌마저 든다. 멀리서 보면 창이나 화살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따뜻한 구석도 있다. 푹신한 스펀지로 감싼 손잡이는 포근한 느낌이고, 우산을 펴는 데 사용하는 둥근 버튼의 촉감은 부드럽다. 게다가 폭이 넓은 허리띠를 두른 우산은 마치 파란색 레인코트를 입은 신사 같다. 차가운 듯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지닌 중년 신사. 이게 우산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다.

사무실에 들른 사람들이 ‘멋진 우산’이라고 할 때마다 마치 나를 찾아온 인기 연예인을 사무실에 앉혀 놓은 듯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파란 우산이 사무실에 있는 이유는 이랬다. 얼마 전 지방의 출장길에서 친구 A를 만났다. 사업상 진행해야 하는 미팅이 오후 4시경 끝나 귀경길을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같은 도시에 사는 A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출발 전부터 약속을 잡았던 만남이었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는 A를 보자마자 콧잔등이 시큰해져 왔다. 반백(半白)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으나, 깊이를 알 수 없이 팬 이마의 주름에서 켜켜이 쌓인 고생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읽혔다. 융통성 없이 정의로운 성격의 A에게 게걸스러운 자본주의가 흰머리와 깊은 주름을 만들어 놓은 게 틀림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A의 차림새였다. 몇 차례의 연락을 통해 A의 생활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직접 본 그의 세련된 옷차림과 행동에서 중년의 중후함이 배어 나왔다.

“고생했어”

‘어떻게 지냈어?’라고 묻는다는 걸 나도 모르게 이렇게 첫 마디가 나갔다. 지나간 삶의 고단함을 이미 다 알기라도 하듯이. 대답 없이 웃기만 하던 A가 시선을 위로 향하더니 소리 내 웃음을 날렸다.

그렇게 시작한 A와의 대화는 말보다 웃음이 더 많았다. 상경 기차 시간에 쫓겨 서둘러 저녁을 먹을 때도 마주 보고 웃다가 웃는 서로가 우스워서 다시 웃었다. 소리 내 허공에 흩어지는 웃음보다는 소리 없이 상대방의 가슴을 건드리는 웃음. 그 속에는 말보다 더 많은 것들이 오고 갔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시간의 간극(間隙)을 메울 수 있는 우정이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

A는 내게 특별한 친구였다. 그는 학교에서보다는 수업이 끝난 후에 나와 더 가까웠다. 나는 친구가 많았지만, A에게는 내가 유일한 친구였다. 그래서 A는 항상 둘만 보길 원했다. 나 역시 A가 필요한 순간에는 다른 약속을 어기는 한이 있어도 그를 먼저 찾았다. 그만큼 나는 A의 기발한 상상을 좋아했고 또 가장 믿고 의지하는 친구였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은 수업시간에 나오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누구에게 묻거나 답을 구하지 않았던 문제들 아니 어른들조차 해결하지 못했던 사회문제는 우리의 대화 속에서는 속 시원히 풀리곤 했다. A는 때론 기발하게 또, 때론 엉뚱하게 사회의 부조리를 쓸어버릴 대책을 제시하곤 했다. 나는 늘 그의 상상 속에 초대되는 유일한 손님이었고, 만족할만한 대안을 제시받고 있었다.

물론 A와 즐거운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A가 여유 있는 가정형편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급학교로의 진학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황망했던지……. 결국 아버지와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진학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같은 반 아이들에게 모든 상황이 알려지게 되었고, 평소 많은 사람 앞에서 이상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던 A에게는 적지 않은 상처였을 것이다.

그 후 나는 긴 투병 생활의 서막을 알리는 휴학과 A의 이사로 인해 연락이 끊어졌고, 40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다시 만난 것이다.

아쉽기만 한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A가 차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던 길에 비를 만났다. 서울에는 비 예보가 없었던 터라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었다. 그래도 역까지는 멀지 않아 그냥 가겠노라고 하자 그가 굳이 손에 쥐여준 것이 바로 파란 우산이었다.

“가져가. 널 비 맞혀 보낼 순 없지. 그리고 난 비 오는 날이 한가하니까 비 올 때 다시 와라. 그땐 집으로 가자. 집사람도 보고 애들도 봐야 하잖아.”

그날, 귀경열차 안에서 A의 가족과 우리 가족이 함께 만나는 상상을 하며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의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력은 하얗게 변한 그의 흰머리처럼 빛이 바랬겠지만, 그래도 그날을 기억하고 함께했던 친구가 있다는 건 큰 위로가 아닐까.

오늘도 사무실 한쪽 구석에 우산이 서 있다. 친구를 닮은 짙은 파란색 우산. 하늘은 우산 색처럼 파랗다. 언제쯤 비가 올까 나는 자꾸 일기예보만 힐끗거린다.
월간암(癌) 202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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