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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감나무가 있던 자리
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4년 08월 22일 15:24분454 읽음
글:김철우(수필가)
문학의 집이 사라졌다. 서울시 스물다섯 개 구(區) 가운데 유일하게 구로구에만 있다며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한국문인협회 소속 문인이기도 했던 구청장님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문인들은 자랑스럽게 하곤 했다. 그런데 문학의 집이 사라진다니……. 1968년에 지어진 집을 구청에서 사들여 「문학의 집 · 구로」라는 옥호를 걸고 구로문인협회 소속 문인들이 운영하다가 10년 만인 2023년 5월에 철거되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집이 세워진 지 55년 만의 일이다. 그 일대를 재개발해 문학공원화하고 문학의 집은 멋진 건물로 재탄생한다는 청사진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러더니 비용 문제로 구와 시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어느 날은 무허가라느니, 주택 재개발 때문이라느니 하는 말이 돌더니 느닷없이 통보된 서울시의 결정은 바로 ‘철거.’

「문학의 집 · 구로」에 첫걸음을 한 건 장마가 끝나갈 무렵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장마가 곧 끝난다는 소식만 들려올 뿐, 여전히 강한 빗줄기가 기세 좋게 쏟아지던 날, 장맛비에 맞선 우산 하나가 내 문재(文才)처럼 한없이 초라하다고 느끼며 문학의 집을 찾았다. 도착하고 보니 이미 시낭송회를 마치고 막걸리와 파전으로 뒤풀이를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전반적으로 낮은 천장에 서까래를 닮은 구조물도 그렇고 오래된 집이 풍기는 기운이 문학 행사와 묘하게 어울렸다. 방 하나에 화장실 하나, 강의가 이루어지는 거실 그리고 거실과 연결된 주방이 전부인 「문학의 집 · 구로」는 규모는 작지만, 문학의 향기가 넘쳐나던 곳이었다. 특히 창작실 문 위에 걸린 현판, ‘초광(草筐)’이 시선을 잡았다. 김익하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초광(草筐)은 풀로 만들어진 광주리 즉 둥우리’였다. 이는 ‘부화를 연상시키는 사물로, 문학작품을 잉태하고, 그것을 생산하는 방(房)’이라는 의미였다. 문학의 집을 가꾸고 지켜낸 사람들의 문학에 대한 진심과 애정이 심장 주변을 자꾸 건드렸다.

방 안 가득 시퍼렜던 문학의 기(氣)에 눌린 탓인지 현관 밖에 벗어 두었던 메시(Mesh) 소재 운동화가 비에 젖는 것도 몰랐다. 오롯이 ‘문학만 생각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게 좋았다. 문우(文友) 한 명 없이 외롭게 빈칸을 메워나가던 시절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 때문인지 운동화 속의 발이 질컥거리는 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부풀어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문학의 집 · 구로」, 나는 그곳에서 1년간 소설을 공부하며 꿈을 키웠던 적이 있다. 예닐곱 명이 모인 소설작법 강의는 늘 바람처럼 시간의 흐름이 빨랐으며, 머릿속에서는 쉼 없이 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주인공들과 관련한 사건을 창조했으며, 그 사건에 어울리는 배경을 함께 만들어 내기 바빴다. 가끔 강의를 놓쳐 남몰래 우왕좌왕하기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렇게 혼자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창밖으로 보이던 감나무 때문인지도 모른다. 콘크리트가 덮인 작은 마당, 나무 한 그루가 겨우 흙과 만날 수 있는 좁은 면적에 감나무가 덩그러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장기간 병마와 싸우며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문단에 나와 이제 가느다란 숨구멍 하나를 찾은 것 같은 내게 감나무 한 그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투영 대상이었다. 책상에 앉아 보면 감나무 가지들이 조각낸 하늘은 꽤 근사한 예술작품처럼 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길고 굵은 선으로 하늘을 나눠놓곤 하였다. 어떤 날은 파란 하늘에 가지를 꽂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휘몰아치는 감성의 소용돌이들을 모아 감나무 가지에 걸어두었다. 다음 강의가 있던 일주일 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걸려있던 그것들을 모아 더 커진 문학에의 꿈과 함께 걸어두는 일이 반복되었다.

감나무 가지에 탐스러운 감이 열리고 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주황의 열매가 그렇게 기쁘고 대견할 수 없었다. 작은 숨구멍을 통해서 나도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지마다 걸어 둔 내 꿈들을 걷어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목표가 뚜렷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3주쯤 흘렀을까. 문학의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감나무가 밑동을 20여 센티미터만 남긴 채 잘려있는 게 아닌가. 휑한 하늘만 남은 창밖 풍경에는 어디서도 내 꿈들은 찾을 수 없었다. 베어버린 감나무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익을 대로 익은 감이 지대가 낮은 아랫집에 떨어져 마당이 지저분해지니 처리를 부탁한다는 이웃의 민원이 제기되었고, 상시 거주자가 없는 문학의 집에서 나무를 관리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벤 것이라고 한다. 내 문학에의 꿈과 삶의 희망을 투영했던 감나무는 그렇게 베어지고 말았다. 잘려 나간 예각의 가지 끝이 아프게 가슴을 찔러댔다. 1년이 되어가던 소설작법 시간이 내게서 빛을 잃어가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문학의 집을 향한 발길을 거두고 말았다.

몇 년이 흘렀을까. 얼마 전 문학의 집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구청에서 문학의 집을 옮길 작은 공간을 마련해 주고 원래 있던 문학의 집에서 퇴거를 통보한 날이었다. 재개발로 인해 철거를 앞둔 시점이었으니 버릴 것은 모두 두고 떠나는 날이었다. 버릴 책들이 한가득이었다. 본래 나무였던 것이 종이가 되어 글을 담았다가 이제 다시 흙으로 돌아가 다른 나무의 양분이 되거나, 일부는 종이로 재생되어 다른 글을 담아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곳에 넘치던 문학의 기운이 산산이 흩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대문을 나서기 전, 애써 외면하던 그곳을 둘러본다. 콘크리트로 아무렇게나 덮어버린 자리는 주변 콘크리트와 색과 질감이 달라 무엇인가 덮은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주변으로는 주인 잃은 화분과, 무엇을 담았는지 알 수 없는 깨진 스티로폼 뚜껑, 그리고 마당을 쓸던 빗자루 두 개가 낙엽과 함께 모여 있다. 모두 무엇인가 잃은 것들이다. 내 처지인 것 같아 울컥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뒤돌아본다. 남몰래 꿈을 걸어두었던 자리.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는 자리. 감나무가 있던 자리.

(토지문화관에서 창작한 작품임)
월간암(癌) 202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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