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칼럼
주위 사람 힘들게 만드는 암 환자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3년 07월 14일 17:10분2,618 읽음
글: 김진목 | 파인힐병원 원장
부산대병원 통합의학센터 교수 및 파인힐병원장 역임
(사)대한통합암학회 이사장, 대한민국 숨은 명의 50에 선정
마르퀴스후즈후(세계 3대 인명사전) 평생공로상
[통합암치료 쉽게 이해하기] 등 다수 저술


암 환우분 중 유독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퉁명스럽고 난폭한 행동을 해서 힘들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병원에 와서도 자기를 도와주려는 의사나 간호사에게 시비를 걸고 욕을 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언행을 일삼습니다. 이들은 암 진단 전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었는데, 암을 진단받은 후부터 갑자기 성격이 바뀌었다며 걱정하는 보호자를 봅니다. 그런데 그리 걱정하실 일은 아닙니다. 암을 처음 진단받은 후 대부분의 암 환우들이 겪게 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저 유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분노 5단계’라는 심리변화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겪게 되는 감정의 변화단계에 관해 기술한 내용인데,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겪게 되는 심리의 변화과정을 말합니다.

그 5단계란 처음에는 부정 즉, ‘아니겠지, 진단이 잘못되었을 거야’ 하는 부정의 단계입니다. 부정의 단계에서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검사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국에는 똑같은 진단을 받게 되고 암이라는 것이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이젠 분노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평소에 건강 관리에 신경 썼고, 술 담배도 안 하고 운동도 자주 했는데, 왜 나에게 암이 왔느냐?’라는 생각에 화가 나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감에 사로잡혀서 가족은 물론이고 잘 모르는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신경질을 부리고 시비를 거는 언행을 하게 됩니다. 병원에 와서도 의사의 설명을 듣고는 말꼬리를 붙잡고 시비를 걸고, 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그럽니다.

분노의 단계에 계속 머무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개는 타협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암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도, 내가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는 ‘언제까지만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기한을 희망하게 됩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혹은 결혼할 때까지는 살게 해달라고 의료진에게 부탁하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치료를 열심히 받겠다. 등으로 타협하지만, 결국 인력으론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우울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가족분들께서는 분노 단계일 때 매우 힘드셨겠지만, 사실 환우분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는 이 우울 단계입니다. 입맛도 없고,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치료 효과도 더디고…. 힘든 시기입니다. 심한 경우 암 환자가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 우울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울 단계를 극복하면 수용 단계에 이릅니다. 암을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암 치료에 매진하겠다는 투병 의지를 세우게 되는 시기입니다.

그러니까 부정-분노-타협-우울의 단계를 지나서 수용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모든 단계를 거치는 사람도 있고, 한, 두 단계를 뛰어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하나의 단계에 계속 머무르지는 않기 때문에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고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분노의 단계에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암 환우를 보시게 되면 싸우거나 핀잔주지 말고, 누구나 겪게 되는 단계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사실을 알려주고 격려해 주면 더 좋겠지요.

암을 진단받은 초기가 아니라도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고 불안해지면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가 안 되고 설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고, 만성 스트레스나 우울증이 있으면 감기에 잘 걸리고 회복이 느려서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당뇨 치료를 받던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당이 갑자기 상승하고 잘 조절되지 않는 현상도 흔합니다. 모두가 정신적 문제가 신체기능에 영향을 준 실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암 진단으로 인한 충격, 암에 의한 신체적 고통, 그리고 암 치료에 수반되는 부작용에 따른 고통은 다른 질병에 의한 고통보다 더 힘들고 반복되는 특성이 있고, 이러한 신체적 변화는 불안, 불면, 우울 같은 정신적 변화를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우울증이 지속하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예민해지므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키기 쉽겠죠?

이처럼 암으로 인해 발생한 정신적, 사회적 고통은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암의 경과와 치료까지 부정적 영향을 주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암이 단순한 신체적 질병이 아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질병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모든 질환에 있어 중요하지만, 특히 암에서는 거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월간암(癌) 202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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