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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막 전이 췌장암 4기 진단 후, 세 가지를 실천하며 극복하는 삶의 여정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3년 02월 02일 12:26분12,771 읽음

글: 송기석(췌장암 4기, 1965년생)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서 2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서 보낸 시간이었지만 나는 더욱 강해졌고, 즐거워졌으며 무엇보다 건강해졌다. 처음 암 진단받았을 때 만해도 등산은 꿈도 못 꾸었는데, 요즘은 집사람과 다니는 산행은 즐겁고 행복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가정과 주변에 더욱 다정해졌으며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진단 후 한동안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했건만 시간은 나를 변화 시키고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담당 의사는 나의 시간이 6개월 이내라고 말했지만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아직 긴장 상태이지만 조금씩 나와 가족에 대해서 용기가 생기고 있다.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체험으로 지나고 있다.

2021년 설 명절을 지난 후였다.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되고 있었다. 명절에 과식한 탓이려니 하면서 며칠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 여기며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배는 더욱 더부룩해졌으며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 할 수 없이 동네 의원에 방문해서 증상을 얘기하니 소화제를 처방해 주고는 며칠 지켜보자고 한다. 그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차도가 없고 오히려 배는 더 불러오고 증상은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당시 대전에서 근무하고 있어 근처 충남대 병원을 찾았다. CT 검사를 하니 담당 의료진이 췌장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며 정밀 검사를 권한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분당 서울대병원을 방문하여 다시 CT 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췌장암 4기이며 복막에 전이 된 상태로 수술은 불가능하며 남은 시간은 6개월 정도라는 말이었다.

내 나이 이제 오십 대 중반을 갓 넘긴 중년이었고 인생에서 제일 멋지게 지낼 수 있는 시점이었다. 지난 삶이 떠올랐다. 바다가 멋진 시골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지내 온 시간이었다. 모나지 않게 젊음을 보냈으며 결혼하고 아들과 딸을 낳아 오순도순 살아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다닌 직장은 이제 몇 년만 더 하면 정년을 맞이할 것이고 그 후 집사람과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행복한 노후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순간 모든 삶은 송두리째 멀어졌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장면이었고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나의 현실로써 떠올렸다. 그 후 열흘 정도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죽는구나’라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 뿐 무엇도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없었다.

그렇지만 충격의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나는 담담해지고 한편으로는 투병에 대한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대로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무얼 할 수 있는 지식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시간만 흐를 뿐이었다. 나를 진단했던 병원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은 항암치료밖에 없었으므로 그것이라도 열심히 그리고 희망을 품고 진행하자는 생각이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뱃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는데 조금 더 지나니 면도칼로 살을 베는 고통이 찾아왔다. 담당 의료진 진통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러나 진통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져만 갔다. 의료진에게 강한 진통제를 받아 올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더 강한 진통제를 찾게 된다면 결국 내가 갈 길은 딱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증을 참을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견디고 견디면서 그것과 맞섰다. 살을 베는 고통을 견디는 것은 힘들지만 그렇다고 죽음과 나의 통증을 맞바꿀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참을 수 있는 아픔이 아니었지만 나는 결심한 데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진단받을 당시 췌장에 있는 암은 크기가 2.6 Cm였으며 복막은 전체적으로 퍼져있었다. 항암치료를 두 달 정도 진행하고 검사를 하니 다행히도 췌장에 있던 암의 크기는 2.1cm로 줄었다. 죽음과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항암치료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나와 담당 의료진 모두 고무적인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시작했다. 피곤하여 체력이 떨어지고 입맛이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운동을 시행했으며 먹는 음식을 바꾸었다.

대부분 회사에서 회식은 조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사이다. 나도 수십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잦은 회식으로 술과 담배 그리고 고기를 가깝게 지냈다. 이런 음식과 흡연이 몸에 좋게 작용할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지금은 회사도 쉬고 있으며 투병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당연히 건강에 해로운 것들은 모조리 끊었지만 돌이켜 보면 안 좋은 습관과 스트레스가 몸에 암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는 건강에 이로운 것들만 먹고 생각하고 즐기기로 결심했다. 이는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꾸준하고 변함없이 건강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과거의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과거의 안 좋은 습관을 떨치고 좋은 습관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음식을 바꾸었다. 특별한 것도 없지만 당연하게도 술, 담배를 끊었고 식단은 채식 위주의 식단을 마련했다. 집사람의 강력한 권유로 닭고기나 오리고기는 가끔 식단에 오르지만, 기본적인 식단은 채식이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처음 항암을 시작하고서는 너무 기운이 없었지만, 지금은 집사람과 다니는 등산에 푹 빠져있다. 삶에 변화를 주니 암도 차츰 기운을 잃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대략 9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2021년 11월경이었다. 담당 의사는 항암제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같은 약을 쓸 수 없다고 판단했고 다른 약으로 바꾸어 항암치료가 계속 진행되었다. 고무적이었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악화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병원의 항암치료만으로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바꾸고 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직장 동료가 암환자들이 보는 잡지에 소개된 운모 가루를 알려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소한 생각이 들었는데, 운모 가루가 무엇인지 여러 곳에서 정보를 모았다. 체험사례도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쏠투비제약에서 제조하는 약품이 거의 유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항암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는 자신이 처방하는 항암제 외에는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랬지만 갑자기 안 좋아진 상태에서 나는 항암치료에만 의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 정보를 통해서 어느 정도 확신이 생긴 뒤 나는 쏠투비 운모가루를 처방 받기로 마음 먹었다. 서울 봉명당한의원은 쏠투비운모가루를 처방하는 병원이었으며 그곳에 방문하여 진찰 후 처방받은 운모가루 복용을 시작하였다. 병원치료와 쏠투비운모가루를 병행하는 요법을 시작한 것이다.

쏠투비 운모가루에 대하여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약을 복용하고 1년 2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췌장의 암은 그대로이며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무엇보다 복막에 전이되어 있던 암은 흔적만 남은 상태가 되었는데, 이는 기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개월에 한 번씩 하는 혈액검사에서 암 수치는 조금씩 떨어졌고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이다. 처음 봉명당한의원을 방문하여 처방받을 때 만해도 이 정도의 작용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병원의 치료에서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이 약으로 조금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지, 암이 사라진다거나 혈액검사에서 수치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기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췌장암 4기를 진단받고서 가장 도움 되는 방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암 진단 후, 나는 세 가지를 실천했다. 첫째는 병원의 치료이다. 나는 어떤 통증과 어려움이 있어도 병원의 치료는 성실하게 받았다. 6개월이라는 의사의 말에도 굴복하지 않고 충실하게 치료에 임했으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통증이나 피곤, 구토와 같은 부작용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견디었다. 두 번째는 생활 습관을 바꾸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운동과 식단을 바꾸었으며 흡연과 같은 안 좋은 습관은 버렸다. 특히 집사람의 헌신 때문에 두 번째 실천을 꾸준히 할 수 있으며 앞으로도 오랜 시간 이 과정을 견딜 것이다. 세 번째로는 쏠투비운모가루를 만난 것이다. 이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몸 상태는 점점 좋아졌으며, 등산도 다니며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 이 약을 복용하기 전만 해도 나는 기력이 없어서 등산은 꿈에만 있던 일이었다. 이 세 가지 중에 우선 순위를 정하라면 나는 단연코 쏠투비 운모가루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나에게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준 약이다.

나의 투병 때문에 식구들은 모두 비상이 걸린 채로 2년을 넘기고 있다. 아들과 딸은 20대의 한창 젊음을 누리며 즐겁게 지낼 시기인데 식구들 모두 나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다. 나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결국 아내와 아이들이다. 나의 유일한 바램은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담담하게 이 길을 걷고 있다. 울퉁불퉁 아프고 힘든 길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좋은 길로 접어들어 하루의 일상을 지낼 때, 암이나 죽음과 같은 근심거리 없이 지내는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사실 처음 진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음을 비웠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설사 잘못된다 해도 긍정적인 상태로 있고 싶어서였다. 나와 같은 처지에 계신 분들이라면 긍정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마인드컨트롤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진 후에 치료가 시작되어야 좋은 결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 여유가 된다면 쏠투비운모가루와 같은 요법을 알아보고 적용한다면 언젠가 완치의 길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마음의 변화를 가지고서 세 가지 변화와 실천을 했던 나의 체험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렇지만 삶의 기간이 6개월이었지만, 2년을 넘어섰다는 점만으로도 삶의 여정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각과 실천에 따라서 삶의 시간은 늘어날 수도 혹은 줄어들 수도 있다. 암과 투병하는 모든 분에게 행운과 희망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2년여의 체험을 짧게 줄인다.

월간암(癌)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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