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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손으로 말해 주세요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2년 09월 19일 18:05분2,131 읽음
글: 김 철 우

철판으로 만든 틀에 밀가루 반죽을 부어 굽는 풀빵은 찬 바람에 옷깃을 올리는 겨울의 초입이면 어김없이 입맛을 당긴다. 쫀득한 밀가루 반죽 속에 숨겨진 단팥의 맛은 한겨울의 추위를 잠깐 이나마 잊게 하는 맛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풀빵의 대명사 격인 붕어빵에서 나아가 ‘황금 잉어빵’까지 등장하여 입맛을 자극하고 있으나 집사람과 나는 국화빵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둥근 모양을 좋아한다. 풀빵이란 것이 결국 밀가루 반죽과 단팥의 맛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 뿐 모양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으나 철판 틀에서 바로 나온 뜨거운 풀빵의 반을 갈라 호호 불어가며 먹는 맛이려면 아무래도 큰 것 하나보다는 작은 것 여러 개가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집사람은 벌써 풀빵이 나왔다며 반가운 기색이다. 모임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풀빵 트럭을 봤다며 제법 자세한 위치까지 일러준다. 더구나 단팥소가 맛있으니 꼭 맛을 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며칠 후 집사람이 알려준 장소를 지나칠 일이 있어 눈여겨보았으나 풀빵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풀빵 트럭을 만난 건 며칠이 더 지난 후였다. 큰 사거리의 건널목 사이 인공섬에 낯선 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집사람이 말한 바로 그 자리였다. 추위를 막기 위해 처진 비닐이 서걱대며 바닥에 끌리는 키 작은 트럭은 주변 초고층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더 초라해 보였다. ‘풀빵 이천 원어치 주세요.’라고 주문하자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한 개에 천 원이라는 옛날 호떡 가격과 다섯 개에 천 원, 열 개에 이천 원이라는 풀빵 가격 사이에 선명하게 붙어 있는 문장 하나가 눈길을 잡았다. ‘손으로 말해 주세요’ 50대로 보이는 주인은 청각 장애인이었다. 트럭 주변을 정리하던 비슷한 또래의 아주머니와 수화로 대화하는 걸 보니 아마 같은 장애를 가진 분들이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를 토닥이며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나 보다.

주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원하는 품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원하는 개수를 다시 손가락으로 나타내 보였다. 그러자 능숙한 손놀림으로 종이봉투에 풀빵 열 개를 담아냈다. 방금 나온 듯한 풀빵 하나를 집어 조심스럽게 맛을 보자 집사람이 말한 대로 반죽과 단팥소가 부드럽고 지나치게 달지 않아 입맛에 맞았다. 요즘은 반죽과 단팥소를 납품받아 영업하는 곳이 많아져서 어딜 가나 같은 맛이었는데 안타까운 시선이 더해진 까닭인지는 몰라도 계속 손길이 갔다. 부부가 직접 반죽과 소를 만들거나, 납품을 받았더라도 자신들만의 재료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맛에 더 신경을 쓴 것은 아닐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 번째 건널목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 이곳에 들러 손으로 주문하고 풀빵이 든 종이봉투를 받아 가는 것을 보면 내 추측이 아주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신호에 맞춰 서둘러 건널목을 건너며 트럭을 향해 시선을 한 번 던지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했을 뿐이었다.

단순했지만 ‘손으로 말했던’ 그날의 기억은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말이 아닌 다른 언어로 소통해 본 적도 많았고,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몸짓을 통해 소통해 본 적도 있었지만, 그날의 경험은 왠지 특별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소통하는 존재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말 역시 소통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인간은 소통하는 존재이며, 소통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 힘을 얻는 것도 인간이 사회를 이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소통이 그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언어 이외의 다양한 소통방식을 이미 알고 있다. 호의(好意)의 신호인 ‘미소’만 하더라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의미 전달이 가능하다. 이것은 배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본능에 가깝고, 소리를 매개로 하는 언어를 넘어선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보더라도 과학기술 발전은 눈이 부실 정도다. 이것은 반드시 새롭게 변화된 소통의 방식을 탄생시키곤 했는데, 집안에 전화기 한 대만 놓고 살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격세지감마저 들게 한다. 그런데 다양한 소통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우리는 ‘소통 부재(不在)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소통을 넘어선 교감일 것이다. 교감을 통해 진정한 관계 맺음이 필요한 시대에 수없이 쏟아지는 소통의 방식이 오히려 방해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차라리 불통을 선택하여 소통 방식의 공해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아닐지 모르겠다. 아무리 다양한 방식이 있다고 해도 소통이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소통을 넘어선 교감이 필요한 시대에 수화(手話)는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방식이다. 소리를 통한 언어보다 신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수화는 더 직관적이고 감성적이다. 더구나 다양한 표정을 짓는 수화는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므로 다른 소통의 방식보다 오해의 소지가 적으며 인간적이다. 간단한 수화 몇 가지는 알아두는 것이 어떨까. 속절없이 쏟아지는 소리 공해 속에서 침잠(沈潛)의 바다에 다가갈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랑한다, 고맙다, 맛있다, 아름답다, 좋다’와 같은 단어들로 시작해서 간단한 문장까지 할 수 있게 되면 꼭 표현해야 하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수화로 해보면 어떨까 싶다. 생각하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표현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저 무뚝뚝한 성격이라며 사랑이나 고마움을 그냥 지나친다면 세상은 삭막해질 것이고, 개인에게는 안타까움만 남게 될 것이다.

며칠 전 다시 가 본 사거리의 건널목에는 풀빵 트럭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궁금했는데 집사람이 다른 동네에서 보았노라며 걱정을 달랬다. 그곳도 유동 인구가 꽤 많은 곳이라 시간을 정해 장소를 이동하는 판매전략을 세운 것 같다. 괜히 마음이 든든해져 온다.

다음에 풀빵 트럭을 만나면 ‘오른 주먹의 엄지와 검지의 옆면을 턱 왼쪽에 댔다가 오른쪽으로 이동’ 시키는 ‘맛있습니다.’라는 의미의 수화(手話)로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월간암(癌)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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