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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골목길
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2년 07월 12일 17:55분2,493 읽음
글: 김철우

오래전 내가 살던 상도동의 집 앞에는 골목길이 있었다. 폭은 오 미터쯤 되고 길이는 백 미터쯤 되는 이 골목길은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오른쪽에 있는 골목길은 폭과 길이가 거의 같아서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었고, 왼쪽에 있는 골목길은 폭이 조금 더 넓긴 했으나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한쪽 경사면을 차지하고 있어서 낮에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나곤 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집 앞 정면의 골목길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골목길은 단층 주택들만 어깨를 비집고 서 있던 그 동네에서 꽤 넓은 공터와 맞닿아 있었고, 골목길 입구의 한쪽은 구멍가게가, 맞은편에는 목욕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골목길 안쪽으로는 기와를 인 비슷한 모습의 주택들이 도열하듯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길은 밤이 되면 꽤 어두워져서 걷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골목길 입구와 끝 그리고 골목의 가운데에 가로등이 있었으나 가운데 있는 가로등은 거의 꺼져 있거나 누군가에 의해 전구가 깨져있기 일쑤였다. 어쩌다 가운데 가로등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날은 어찌나 반갑던지……. 그렇다고 이 골목길이 우범지대는 아니었다. 목욕탕 뒤쪽으로 난 여탕 창문 쪽을 기웃거리던 호기심 많은 녀석 몇이 가끔 혼나며 쫓겨나는 일을 제외하고는 서울의 여느 주택가 골목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 길은 늘 조용했다. 어둡고 긴 골목길을 나는 막연히 두려워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상도동으로 이사 간 이후로 해진 골목길을 걷는 것이 두려워 친구들과 놀 때도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곤 했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잰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온 후 한숨을 몰아쉬었었다.

중학교 겨울방학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시내의 도서관을 다녔다. 방학 기간을 이용해 일주일에 두세 번, 새벽부터 저녁 무렵까지 경쟁적으로 자리를 지키며 공부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뿌듯한 성취감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문제는 단 하나, 꼭 걸어야 했던 그 골목길뿐이었다. 겨울이라 일찍 해가 지는 까닭에 어두워진 골목길에 들어서면 조금 더 서두르지 못한 것을 늘 후회했다. 간혹 옆집에 사는 형을 만나 동행하거나 거짓말처럼 가운데 가로등이 켜져 있는, 운이 좋은 날을 제외하곤 대부분 가슴을 졸이며 길게만 느껴지는 골목길을 걸었다. 게다가 거친 노면에 발부리라도 차이는 날에는 고통과 공포가 삽시간에 함께 몰려오기도 했다.

그날도 역시 늦은 귀갓길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뿌듯하여 가벼웠던 발걸음은 목욕탕을 돌아서며 멈추고 말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주변에 보이는 사람도 없는데, 마침 눈까지 흩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긴 한숨을 내쉬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꺼진, 가장 어두운 곳만 지나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멀리 골목길 끝의 가로등은 불을 밝히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중간쯤 갔을까. 어느 집 대문 앞에 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허공을 날았다.

“철우냐?”

중년 남성 특유의 저음은 눈 속을 날아 귀가 아닌 가슴을 먼저 툭 쳤다. 아버지였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으며 온몸에 퍼지는 안도감……. 작은 키에 뒷짐을 지고 발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고 계신 아버지. 아마 체기滯氣가 있으셨던 모양이다. 그럴 때마다 늘 하시던 동작을 아들을 기다리며 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두운 골목길의 끝. 흩날리는 눈을 맞아가며 가로등 불빛 아래 서 계시는 아버지는 흡사 거인 같아 보였다. 전쟁을 피해 열아홉이란 나이에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아버지였다. 북에 두고 온 고향의 주소와 지도 그리고 헤어진 가족의 이름을 적어주며 언젠가 꼭 찾으라고 당부하시던 아버지. 평생을 그리움의 삽으로 세월을 갈아엎으셨던 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거인 같은 모습을 본 것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봄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던 이듬해 봄,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부모와 형제들을 보지 못하고 생을 달리하셨다. 그런데 제자들과 이웃들까지 모인 노제路祭에서 아버지가 누워 계셨던 곳은 바로 골목길 끝에 있는 가로등 아래였다. 거인 같았던 아버지를 그 자리에서 보내드린 셈이다. 그래서인지 길고 어두운 골목길 끝에 서 있는 가로등을 보면 아직도 아버지가 생각나곤 한다.

이제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상도동을 떠난 이후로 더는 어둡고 긴 골목길을 걷는 일도, 또 그런 골목길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은 나는, 당시의 나보다 더 나이를 먹은 딸아이를 마중 가곤 한다. 대로변의 횡단보도 맞은편에 선 딸아이가 나를 거인처럼 느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안도감은 느끼지 않을까. 오늘처럼 눈이라도 올 것 같이 찌뿌듯한 날은 그 어둡고 무서웠던 골목길이, 그리고 거인처럼 서 계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월간암(癌)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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