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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사망예고 통보를 받다
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22년 02월 28일 17:21분3,181 읽음
윤은혜(62년생) | 난소암 3기 5년차

2015년 4월 어느 날. 유방이 저려서 서울 미즈메디 산부인과에 검진 차 들렸었다. “오신 길에 초음파도 해봅시다.” 의사의 권유에 우연히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예상과 달리 담당의는 심각한 얼굴로 “급히 삼성병원을 예약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 후 삼성병원 산부인과 병동 3인실에 입원했고 서울 삼성병원 교수가 사복을 한 수간호사와 젊은 의사 둘을 대동하고 내 침상 앞으로 왔다. 없는 기운에도 나도 모르게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고 침상 옆에 넋 놓고 앉아있던 남편도 자동으로 일어섰다.

“잘 주무셨어요?” 의례적 인사를 건넨 주치의는 우리 부부를 바라보며 지체 없이 말을 이었다. “수술을 해보니 종양이 ○○부위까지 침범했기에 3기입니다.”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무성영화 속 화면처럼 입술의 움직임만 보이기 시작했다.

뇌 속의 피가 일시에 빠져나갔는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지러웠다. 머릿속이 텅 빈 백지장 같았다. 나도 모르게 옆을 바라보니 하얗게 변한 남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 역시 의사에게 어떤 자비의 한마디라도 구걸하는 듯 교수의 입만을 간절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담당교수는 굳은 얼굴로 일행을 몰고 타 병실로 사라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남편은 교수 꽁무니를 쫒아가려 했으나 이내 수간호사에게 제지당했다.
“교수님 바쁘시니까 나중에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양성입니다.’, ‘1기니까 수술만 하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수술 전에는 주치의가 ‘1기 아니면 2기로 추정됩니다.’라고 설명했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남편을 향해 쓰러지듯 무너졌다. “나 3기래. 이제 가족들하고 다시는 밥 한 번도 먹을 수 없는 거야?” 남편도 나를 안고 말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는 그 후에 담당 간호사나 의사들을 붙잡고 “수술 받으면 살 수 있는 거냐?”고 물었지만 건성으로라도 살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더 바쁜 듯 나를 피하기 급급해 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설명해준다고 제지하던 수간호사가 병실에 왔지만 설명 대신 남편을 데리고 나갔다. 궁금했던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응. 간호 잘하라던데.”라며 어물거리던 남편. 후에 알게 된 내용이었지만 수간호사는 복도 끝 조용한 곳으로 남편을 불러서는 “보호자에게는 사실대로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제가 25년간 환자들을 보아왔는데 아내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심한 불면증과 중증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소소하게는 발가락에 큰 티눈까지 달려 있었다. 티눈 때문에 산보조차 안하겠다는 나를 보고 ‘걷는 운동조차 안하면 어떻게 암을 극복하느냐?’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2년 여간, 나는 심한 불면증과 우울증, 변비, 발가락 물집 등으로 그야말로 자지 못하고, 싸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최악의 건강상태였다.

훗날 한 살 아래의 여동생은 내가 아파트에서 뛰어 내릴 정도의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다고 했다. 난소, 자궁 제거 대수술한 당일조차 수면제를 처방해달라고 떼를 쓰니 ‘수면제를 달라고 떼써서 처방해준 환자는 당신이 처음이었다.’라던 주치의의 말이 생각난다.

지나간 후에야 들었지만 당시 남편도 마음속으로 “그 어렵다는 난소암 3기, 심한 불면증과 심한 변비, 중증의 우울증, 티눈으로 인한 보행불가. 한 가지도 감당 못하겠는데 참 가지가지 한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나도 그럴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과 수면, 배변은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3대 요소라던데 말기 암에, 수면장애, 운동 불능, 변비까지 내가 생각해도 가지가지 하는 것 같았고, 치료는 요원해보였다.

“당신 없으면 못산다!”고 고백해 나를 울린 남편
“엔돌핀 박사” 이 상구 박사와의 만남

이때부터였다. 남편의 핏속에 잠재되어 있던 끼가 발동한 것은. “이봐, 해봤어?”라고 알려진 정주영 왕회장님의 현대근성이 남편에게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중동사막에 나가면서 악바리 근성을 체득한 남편은 난관에 부닥치면 돌파력이 유달리 강했다. 집요한 노력으로 어려운 과제들을 해결하곤 하여 ‘해결사’라는 별명이 있던 남편이었다.

리암니슨 주연의 영화 ‘테이큰(TAKEN)’- 애지중지하던 딸이 여행 중 마약 인신매매 갱단에게 유괴되었을 때 아버지가 이를 단신으로 구해내는 영화를 보고 ‘나도 내 가족이 유괴된다면 저렇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중얼거리던 남편이었다.

이번에는 갱단이 아니고 저승사자. 딸이 아닌 아내. 남편이 나를 구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남편의 얼굴과 리암니슨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어린애처럼 남편 그늘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남편이 유일한 의지처였다.

넋 나간 듯 했던 남편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시신처럼 누워있던 나를 일으켜 4시간 동안 강원도로 향해 운전했다. 드디어 목적지인 오색약수터 인근 산속 어느 펜션 2층 건물로 들어가니, 키가 거구인 백발의 노인이 지하에서 올라왔다.

한눈에 그가 ‘엔돌핀 박사’로 유명한 이상구 박사임을 알 수 있었다. 미국 내과의사인 그는 자신의 현대의술로 암환자들을 치료하다가, 회복되지 않는 많은 암환자들을 보고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번민 끝에 의사자격을 접고 “뉴스타트 운동”이라는 자연치유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암환자들을 치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둘러보니 병원간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박사는 우리에게 “이곳에 입소하여 자연음식과 운동, 명상 등 자연치유를 먼저 해보고, 그 후 수술, 항암을 고려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나는 이상구 박사님의 강의를 많이 들어 그분의 이론에 공감했으며 한편으로는 존경하는 분이었다. 하지만 당시 불안으로 가득했던 우리에게는, 그분의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은 “말기 암은 성장이 빠르니 우선은 수술을 최대한 빨리하고, 그 후 뉴스타트에서 지도하는 자연치유요법들을 시행하자. 우선은 수술하기 전에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을 해서 체력과 면역력을 높여 수술 후 회복에 대비하자.”라며 나를 산속 요양병원으로 데리고 들어가 입원시켰다.

깊은 산속 요양병원으로 들어가는 차안에서도, 나는 계속 남편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왜 나를 이 깊은 산속에 데려오는 거야? 나 버리려고?” 대화상대도 되지 않던 나의 질문에 기가 찼는지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계속 산 깊은 곳으로 차를 몰았다.

요양병원에서 “사랑한다” 고백한 남편
비타민 C, D와 고가의 영양제……. 10여일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루의 낭비도 없이 남편의 프로그램은 계획성 있게 진행되었다. 산을 싫어하던 나는 산에 가자던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깊은 산은 싫어! 병원 음식도 싱거워서 맛없어.”
“산책길에 뱀을 본 사람이 있대. 산에 안 갈래!”
“1인실 아니면 잠이 안와!”
“발가락 티눈 좀 봐. 이렇게 크단 말이야.”

남편은 어린아이같이 투정하는 나를 데리고, 1인실에서 같이 지내며 나의 암 코치 역할을 시작했다. 남편이 옆에 있다는 생각에 덜 불안하고 든든했다. 남편은 자는 시간외에는 모두 암 공부에 몰두했다. 자신이 먼저 잠들면 코를 골아 내가 숙면에 들지 못할까봐 밖에 나가 있다가 내가 약을 한주먹 먹고 잠드는 시간인 11시가 넘어서야 조용히 들어와 잤다. 신발을 밖에서 벗고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와서…….

나중에 안 얘기지만, 수술을 1개월만 늦추면 3,500만원이라는 거액의 암진단금이 나올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상구 박사의 권유대로 잠시 그곳에 입소해 체력을 보강하고 수술을 했더라면 보험금을 받을 수가 있었는데, 오히려 남편은 병원 측을 독려하여 수술을 최대한 앞당겼다. 말기 암의 급속한 성장, 전이를 우려한 결과였다. 3,500만원이 날아갔다. 내가 더 안타까웠다. 하지만 남편의 깊은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느 날, 청평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점심 식사 후 산책하던 시간이었다. 남편이 느닷없이 진지한 얼굴로 쳐다보며 말했다.
“난 당신 없이는 못산다! 날 위해서라도 꼭 살아다오!”

난 그 소리에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평생 애정 어린 말을 단 한 번도 안했던 남편이었기에 더욱 고마웠다. 실제로 여성 암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 그중에서도 남편의 사랑이다. 남편의 사랑이 치료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간혹 아내를 요양병원에 두고 면회조차 뜸한 남편들을 본다. 남편들은 치료는 의사가 알아서 다 해주겠지. 나는 돈만 대주면 되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사가 5% 고치고, 가족의 사랑과 관심이 95%를 고친다.’ 라고 생각될 때가 많다. 결국 그 아내는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고 치료에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실제 스탠포드 대학교 숀 맥케이 박사는 통증을 가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았던 실험자는 44%의 통증감소가 있었다고 한다. 도파민(기분이 좋아지는 뇌의 화학물질)의 분비가 증가되었던 것이다.
맥케이 박사는 “사랑은 놀라운 진통제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실제로 사랑은 놀라운 진통제이자 놀라운 치료제이기도 하다.
월간암(癌) 202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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