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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사는 실천 방법, 채식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1년 12월 28일 16:12분4,481 읽음
웰빙이라는 삶의 양식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주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웰빙은 영어 웰(well)과 빙(being)의 합성어로 우리말로 표현하면 ‘잘 존재하기’ 정도로 어색하지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인사할 때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이야기하면 상대편은 무척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이다. 이 말은 이제 다시는 안 보겠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인데 반어법을 사용해서 상대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어투이지만 스스로에게 ‘잘 먹고 잘 살자!’라고 다짐한다면 이는 웰빙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므로 누구나 웰빙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웰빙의 근본을 이루는 것은 좋은 생각과 좋은 몸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운동과 좋은 먹거리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 중에 특히 음식은 웰빙의 가장 기초적인 실천 항목 중에 하나이며 살아있는 음식을 몸에 넣어 주는 일을 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이는 곧 채식을 의미한다. 채소가 풍성한 식탁을 보면 누구나 ‘몸이 건강해지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훌륭한 식사는 자연에 가깝다. 인류에게 요리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훌륭한 요리는 자연의 것을 그대로 살리는 일이며 각 재료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되도록 요리라는 공정을 거치지 않는 게 좋다. 고급 호텔의 요리사가 좋은 솜씨로 멋들어지게 차려 놓은 식탁이 있다. 그리고 텃밭에서 방금 따온 갖가지 쌈채소와 된장 그리고 수북이 쌓은 보리밥이 올라와 있는 식탁이 있다. 이 중에 어느 것을 더 웰빙 식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텃밭의 식탁을 더 웰빙에 가까운 식탁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음식을 섭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웰빙이다. 적은 양의 고기와 많은 양의 식물을 섭취할 때 인체는 건강을 유지하고 정신은 맑게 지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완전한 채식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오직 식물성으로 만들어진 음식만 섭취한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을 보았을 때 완전한 채식은 영양분의 불균형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비타민 B12는 식물에서 섭취하기 어려운 영양소 중에 하나이다. 보통 생선에 이 영양분이 들어 있다. 그래서 채식을 해도 생선 정도는 가끔 섭취하는 사람도 있다.

채식을 어느 정도까지 하느냐에 따라 대략 3가지 정도로 구분한다. 달걀을 섭취하는 사람 아니면 달걀과 생선 정도는 섭취하는 사람 그리고 오직 식물성으로 된 음식만 섭취하는 사람이다. 영양학적으로 보았을 때 가끔 생선 정도는 괜찮지만 최근에는 필요한 영양소만 따로 구입해서 보조제로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 채식을 실천하는 데에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웰빙은 이제 더욱 발전된 형태로 도약했다. 최근 소비자들은 물건을 살 때 그 물건의 생산과 유통을 꼼꼼히 살피면서 윤리적으로 잘못된 점은 없는지 사회에 어떤 이익을 주는 회사인지 등 여러 가지 면을 검토하고 소비한다. 이른바 윤리적 소비이다. 기업도 소비자의 이런 변화에 발맞춰 윤리적 경영을 하고 이를 수치로 나타내어 공표한다.

이렇게 과거의 웰빙은 한층 더 발전하여 기업과 소비자를 윤리적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점을 무시하는 기업은 도태되고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로 변할 것이며 소비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윤리를 요구할 것이다.

과거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건강을 위해서 애쓰는 단계에서 나와 사회 그리고 지구 전체에 주는 영향을 생각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류의 의식 수준이 발전하면서 채식은 하나의 윤리적 소비이며 이는 전세계적인 추세이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이런 윤리적 소비에 대한 호응이 매우 높으며 중고등학교에서도 윤리적 소비에 대한 주제로 아이들을 교육한다. 웰빙은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삶의 방식에서 사회적인 활동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채식만 하는 사람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겠지만 육식도 하는 사람이라면 고기를 구입할 때 어떤 농장에서 어떻게 자랐고 어떤 식으로 도축되었는지 관심을 갖는다면 윤리적 소비를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저 유기농이라는 단어로 식재료들을 포장했지만 현재에 와서는 유기농이 모두 같지 않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특히 가축을 사육할 때 환경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공장식 우리에 갇혀서 살만 찌우다 도축되었는지 아니면 동물복지법에 따라 쾌적한 환경에서 생존의 시간을 지내다 도축 되었는지에 따라서 축산물에 붙는 이름과 가격이 다르다. 이제는 윤리적 요소가 유기농을 구분하는 새로운 방식이며 이에 따른 구분도 다양하다.

완전한 채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식생활에서 윤리적 요소를 헤아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간혹 커피를 마실 때 그 커피 생산을 위한 노동의 대가가 정당했는가 정도만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윤리적 측면에서 소비를 생각하는 사람 중에 완전한 채식을 선호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며 가끔 생선이나 달걀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다. 때로는 그조차도 불필요할 수 있다.

사실 완전한 채식은 과거 수도자들이나 하던 식습관이다. 불교의 스님, 가톨릭의 수도사들은 금욕과 함께 완전한 채식을 유지한다. 수도자들이 윤리적 소비를 위해서 오랜 기간 채식 식단을 고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는 교리가 있다지만 가톨릭이나 기독교는 그런 교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교의 수도사들은 채식을 고집한다.

이에 대하여 공감할 만한 소설이 있다. 200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존맥스웰쿳시(John maxwell coetzee)가 동물권을 소재로 쓴 소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Elizabeth Costello)’를 보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채식만 하는 주인공이 육식을 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게 되는데 육식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질문을 한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윤리적 측면에서 시작된 것 아닙니까?’ 이에 대한 주인공의 답변은 큰 울림을 준다. ‘아뇨!,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웰빙은 웰다잉과 연결되며 채식은 그러한 삶의 흐름에 좋은 영향을 주는 생활 방식이다. 최근 채식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종교적 이유라기보다는 자신의 삶과 영혼에 대하여 좋은 영향력을 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곧 우리의 의식 수준이 과거보다는 더욱 진화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월간암(癌)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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