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병수기
유방암, 폐 와 간 전이를 이기고 다시 삶의 희망을 보다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1년 12월 10일 18:11분11,970 읽음
글: 서기분 - 74세(1948년생) -

나는 안양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중매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시댁은 부산이었고 시집을 간 후로는 줄곧 그곳에서 살고 있다. 아들 하나를 낳았고 지금은 번듯한 사회인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내가 암을 겪으면서 아들의 효심은 나를 살리고 있다. 얼마전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도 아들의 효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나마 이 곳에 쓰려 한다.

태어나서 큰 어려움 없이 행복하게 지내 왔지만 2001년 백혈병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나의 삶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반려를 먼저 보낸 슬픔은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았으며 평온했던 일상은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처지가 되었다. 남편은 백혈병으로 투병하였지만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떠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준비하지 못한 나의 마음은 반려의 부재로 큰 충격에 휩싸였고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슬픔의 나날이 지속되면서 나의 몸은 점점 더 야위어 갔고 반려가 떠나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흘렀을 때 쓸개를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유방암이 발병하였다. 반려를 잃은 마음의 상처는 나의 몸 이곳 저곳에 병을 만들었다.

2012년 어느날 왼쪽 가슴 아랫 쪽에 작은 돌처럼 딱딱한 것이 잡혔다. 쓸개 수술한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곳에 방문해서 진찰을 받았다. 그 병원의 의사는 암으로 의심 되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권유를 한다. 나는 암이라는 말에 놀라서 집 근처에서 조금 더 큰 병원으로 찾아가 다시 검사를 했다. 그 곳에서도 역시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나는 소견서를 들고 부산에서 알려진 큰 병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조직검사를 한 후 최종적으로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당시 나의 암은 왼쪽 가슴과 그 부위의 림프를 타고 겨드랑이까지 퍼져 있는 상태였다. 다행히 수술이 가능한 상태였으므로 빠른 날자를 잡아서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이 끝난 후 의료진은 나의 암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데 3기였으며 수술을 통해서 제거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당시 아들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나는 혼자 살고 있었으며 이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했다. 나의 병을 굳이 아들에게 알려서 마음 고생 시킬 필요도 없었고 나 대신 아들이 아파 줄 수도 없을텐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몸이 좋아지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혼자 수술실에 들어 갔으며 투병을 시작했다. 임파선에 있는 암을 제거하면서 무엇을 건드렸는지 수술 후 나의 왼팔은 눈에 띠게 부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왼팔이 코끼리 다리 같다며 빨리 어떤 치료를 받아야 되는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 후 나는 지금까지 왼팔이 부은 상태로 생활하고 있는데 최근 아들이 소개한 쏠투비운모가루를 섭취하면서는 다행히도 부종이 많이 줄어 들었다. 처음 암 수술이 끝난 후 담당의료진은 노란색 알약을 처방하면서 이 약을 평생 섭취해야된다고 이야기한다. 암이 발병하고 나는 담당의료진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따랐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믿음이 결국 나에게 커다란 상처와 절망을 안겨 주었고 위기가 닥치면서 만들어진 지금의 변화는 또 다시 희망을 갖게 만든다. 삶이란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기쁨과 슬픔을 주는 것이 아닌가.

처음 암수술을 하고 9년 정도 지날 즈음 수술한 부위에 무언가 움직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통증이 시작되었다. 숨을 안 쉬고 가만히 있으면 통증은 조금씩 줄어 들고 움직이는 느낌도 없어지지만 그런 증상이 자주 생기고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뭔가 잘못됐나 싶어 병원에 얘기하니 대수롭지 않게 근육통 같다며 안심시키고는 별다른 처치를 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은 점점 안좋아졌으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였다. 의료진도 뭔가 심상찮다고 생각했는지 처음 증상이 생기고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올해 6월 MRI를 촬영하고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폐에 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이 보였으며 흉수가 차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간에도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였으며 암이 진행된 상태였다. 담당 의료진은 치료를 진행하면서 3개월 후에 CT를 한 번 찍어 보자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올 9월 CT검사를 했다.

CT검사 결과를 설명하는데 근 10년 동안 나를 돌보던 담당 의사는 표정이 굳어 있었고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 볼 수 없었는지 등을 돌려 앉아 나빠진 상태에 대한 설명을 계속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 분의 말을 들으며 마음 속에는 배신감이 들었다. 근 10년 가까이 웃으며 나를 치료해 오던 의사가 이제는 나의 얼굴도 안보고 무뚝뚝하게 등을 돌려 앉은 채로 설명하면서 자신의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게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한다. 절망감보다는 배신감이 더 크고 이제 병원에서 쫓겨 나는 신세가 된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기분이었다. 나는 삶의 의욕을 잃었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없어졌다는 상실감은 커져갔다. 결국 오랜 기간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짐을 싸 집으로 돌아 왔다. 병원을 나와 길을 걷는데 정신은 멍하고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타야할 전철역에서 두 정거장이나 더 걸어와 있었다. 병원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넣은 가방과 병원에서 챙겨준 검사 결과 서류 같은 것을 들고 나는 하염 없이 걷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와 무얼 할까 생각해보다 아직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받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집 근처 의원에서 2차 접종을 맞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돌아 다니며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기운은 있었는데 2차 접종 후에는 이제 기력이 쇠해져서 걸음도 몇 발자욱 못걷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일상의 풍경은 희미해졌으며 삶의 의욕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유방암은 재발을 했으며 폐와 간까지 전이가 되 있는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서울 병원 방문을 일주일 정도만 미루고 새로운 약을 알게 되었으니 그 약을 처방 받아 섭취하는게 좋겠다는 말을 한다. 사실 나도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결과에 대해서 나의 몸 상태를 보니 더 큰 병원으로 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끝까지 치료를 하려는 마음이 앞서 서울 큰 병원 방문을 계획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의견을 듣고 보니 수긍할 수 있었으므로 그에 따르기로 했다.

아들의 거래처 중에서 ‘쏠투비제약’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그 회사에서 제조하는 쏠투비 운모가루가 나에게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소개를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에 아들은 반신반의 하면서 그 약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실험 단계에 있던 논문과 사례들을 살펴 보았으며 암과 관련하여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따졌다. 또 이 약은 국가기관에서 허가를 받은 것인지 제조 시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하나씩 풀어갔다. 쏠투비 운모가루는 식약처에서 한의사 처방, 먹는 가루생약으로 허가 받은 약품이며 GMP인증이 된 시설에서 제조하고 있다는 점에 신뢰가 생긴 듯하다. 무엇보다 국내외 대학에서 실험단계부터 기록된 SCI(국제학술)scientific reports, oncotaget, BMC 논문은 획기적이었으며 암과 투병하고 있는 나에게도 좋은반응이 생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쏠투비제약은 아들이 근무하는 회사의 의뢰인이었으며 그 회사의 대표님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니 쏠투비운모가루를 한 번 써보자는 제안에 아들은 의심스러운 것들을 모두 확인하고 나에게 쏠투비운모가루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나는 인연이 있다면 혹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봉명당한의원에서 처방 받아 섭취하기 시작했다. 처음 하루 정도는 아무런 반응이나 느낌이 없었지만 이틀이 지난 후 부터는 몸에 서서히 반응이 나타났고 1주가 지난 후에는 놀라운 반응이 생겼다. 첫 반응은 왼팔에 나타났다. 왼팔은 유방암 수술 후에 부어서 딱딱하게 굳은 상태였다. 그 부위에 대상포진처럼 발진이 생기더니 왼팔을 모두 점령했다. 그리고는 딱딱했던 팔이 조금씩 물렁물렁해지기 시작하면서 붓기가 빠졌다. 또 몇 일이 지나니 변비가 말끔히 해소 되었을 뿐더러 뱃 속에 있는 검은 색 변이 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정말 많은 양의 변이 몸 밖으로 나왔다. 나도 놀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 나왔고 아랫배는 홀죽해졌다. 잠이 오기 시작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잠이 쏟아지고 밤에는 깊은 숙면을 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다가 지금은 식욕도 많이생기고 식사를 잘 하고있다. 더 신기한 일은 가슴 수술한 부위에 바늘로 콕콕 찌르는 느낌이 시작되었다. 시원하다면 시원하고 아프다면 아픈 그 느낌이 계속 지속되었다. 전기가 통하는 것같은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고 통쾌한 기분이 든다. 손발은 언제나 차가웠는데 쏠투비 운모가루를 섭취하고 몇 일 지나니 온몸에 온기가 돌고 손발도 따뜻해졌다. 그 것은 나의 손을 만지는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이다. 더 놀랄 일은 현재 간과 폐에 차 있던 물이 사라졌으며 암의 크기에 변화가 생겼다.

나는 투병하던 부산의 병원에서 쫓겨나면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그렇게 친절하던 의사선생님이 고개를 돌리고 얼굴도 안보고 간과 폐에 전이된 암을 설명할 때의 모습이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나는 그 때 내가 가지고 있던 생명의 불꽃을 이제 거의 다 소진해서 얼마 안남았다는 것을 느꼈고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지만 아들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쏠투비 운모가루를 섭취하면서 생긴 내 몸의 변화는 아직 그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려 주고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는데 부산의 그 병원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기회가 되었으며 그러한 인연이 미리 준비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 투병의 과정 속에 있지만 쏠투비 운모가루는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인연이라 확신이 든다. 섭취를 시작한지 이제 한 달 반 정도 밖에 안되었지만 그 기간 동안 이 정도 반응이 일어났다면 앞으로 한 달 후에는 또 어떻게 나의 몸이 변화 되어 있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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