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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었다고 생각될 때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1년 10월 19일 17:07분3,271 읽음
어느 늦은 밤 집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문 닫는 버튼을 누르는데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문 열기 버튼을 눌러 기다리는데 자매로 보이는 두 명의 학생입니다.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언니는 고등학생이고 동생은 중학생 같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언니로 보이는 학생이 엘리베이터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빤히 보면서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한 마디를 합니다.
“이거 뛰었다고 숨이 차네.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하마터면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웃음보가 터질 뻔했습니다. 거울 속 학생의 모습을 힐끗 보니 한창 예쁘고 발랄할 때인데 벌써 늙었다고 신세타령을 하는 소리를 들으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가장 활력 있고 젊은 시절이며 아무런 걱정 없이 의욕이 넘치는 나이인데 거울 속 고등학생은 동생에게 자신의 나이 듦에 대하여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매지간의 유머로 했던 대화일 것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표현을 주변에서 많이 합니다. 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무언가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그러한 말을 많이 하는데 옆에서 보면 가끔 안쓰럽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젊게 사시는 분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간과 마주합니다.

그런 모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속의 모습을 알 수는 없지만 얼핏이라도 그런 모습이 느껴지는 어른을 만난다면 나이가 들었음이 멋지게 보이기도 합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왔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몸의 각 세포는 노화를 거듭하며 결국 세포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육신도 노쇠한 상태로 변해갑니다. 우리 몸은 다시 젊어질 수 없습니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물리적으로 다시 젊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얼마 전 무릎이 불편한 집안의 어르신을 모시고 병원을 방문하여 보호자로서 의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칠십여 년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해 온 무릎의 연골이 닳아서 통증이 시작되었고 무슨 다른 치료 방법은 없을까 하여 방문하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뾰족한 수가 없다며 통증을 줄여 주는 주사를 권유합니다. 제가 다른 치료방법을 묻자 의사선생님이 한마디 합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자연히 치료가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어르신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묵묵히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주사 덕분인지 통증이 줄어 불편한 점이 많이 해소되었다며 즐거워하셨습니다.

젊음이 함께할 때는 몸이 주는 신호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몸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이 주는 신호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점점 몸에 대해서 예민해지는데 더해서 몸은 가끔 통증을 주기도 하고 운이 안 좋다면 만성이 되어 질병과 통증을 몸에 달고 사는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릎에서 서서히 신호를 보내더니 이제 통증으로 자리 잡아 일상이 불편해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을 테지만 만성이 되어버린 무릎의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아직 현대의학으로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불편하게 느껴지던 것에 대하여 조금 덜 예민하게 만들어 일상에서 느껴지던 불편함을 줄어들게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현대의학의 치료는 부작용을 만들기도 합니다. 아침 방송을 가끔 보면 예전 아름답게 보였던 배우들이 손님으로 출연하는데 부자연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름을 없애 준다는 어떤 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 얼굴 표정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경직된 모습입니다. 차라리 자연스럽게 늙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옛 시절의 배우들을 간만에 보면 새삼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기 자신은 매일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고 또 주변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은 매일 만나기 때문에 익숙해져서 하루하루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채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좋아했던 연예인을 오랜만에 방송에서 만나면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곧바로 느낍니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 친구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보았을 때도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늙는다는 것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일 뿐 다른 면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는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가 단순히 몸으로만 만들어져 있지 않으며 마음과 정신적인 면이 삶에서 더 큰 영향을 줍니다. 물리적으로 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으며 몸의 세포를 다시 뒤로 돌릴 수는 없지만 정신과 마음은 언제나 활력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의 숫자가 아니라 지금 스스로 가지고 있는 활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입니다. 엘리베이터의 고등학생도 활력이 없다면 나이만 어릴 뿐 말 그대로 노쇠한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이에 비해서 젊게 산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에너지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넘치는 활력으로 젊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 분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변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같은 모습을 유지합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는데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살고 있는 방식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걱정 근심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일상을 유지하는 좋은 생활습관을 꾸준히 유지해왔기 대문일 것입니다.

젊음을 유지하고 노화를 최대한 늦추며 지금 몸에 있는 질병에 최대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유쾌한 상태에서 큰 변화 없이 지내는 것이 아닐까요.

삶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명제는 나이가 들수록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삶의 시간이 아주 많아 그것을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을 때는 젊음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지나 서서히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되나 계산하게 된다면 우리는 순간적으로 나이 듦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늙음을 알았을 때 어떻게 마음먹는가에 따라서 삶의 모습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나이 들면서 좀 더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월간암(癌)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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