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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세상에서 공평한 한 가지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1년 09월 14일 16:46분3,424 읽음
누군가에게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자존심이 원하는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입니다. 보통 마음은 자존심 그 자체라고 할 정도로 우리의 내면에서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사람마다 자존심은 크기나 모양이 달라서 원하는 것을 채우는 방법이 각자 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타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족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나’라는 존재는 타인을 보면서 결정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그 말은 다른 사람이 나보다 갑자기 부자가 되어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의미하는 신조어입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밖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주변에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이 없다면 나도 벼락거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아쉽게도 요즘은 핸드폰만 잠시 보아도 세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의 가치가 오르면서 이런 분야에 투자한 사람들이 갑자기 손쉽게 큰돈을 벌었고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배에 같이 타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의 표현이 ‘벼락거지’입니다.

자산의 값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흐르는 돈의 양이 많아졌다는 의미이지만 그렇다고 받는 월급이 그에 맞게 오르지는 않습니다.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지만 어떤 사람은 저축을 부지런히 하고 어떤 사람은 저축대신 자산시장에 투자를 합니다. 더구나 투자를 하는 사람 중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빚을 내면서까지 투자를 하는데 빌릴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돈을 빌려 투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를 한다고 해서 ‘영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아주 일부가 벼락부자가 되고 그 주변에서 벼락부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벼락거지가 됩니다.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간극이 더 벌어지고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의 수도 그만큼 많아집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간격은 더욱 벌어져서 부자는 더욱 많은 부를 쌓게 되고 가난한 분들은 희망이 없는 상태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합니다. 소위 말하는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부동산의 상승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작년부터 급격히 오르는 부동산 가치 상승률은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이 우리보다 더 높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들의 양극화는 우리나라 보다 매우 심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평생 일해서 돈을 모아도 변변한 집 한 채 사지도 못할까봐 생기는 조바심입니다.

태어나면서 들고 나오는 수저의 색으로 자신의 위치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누구는 금수저를 들고 있으며 누구는 흙수저를 들고 있다고 합니다. 행여 자신의 수저 색깔을 탓하면서 소중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쯤되면 박탈감을 느끼지 못하면 이상할 정도입니다.

벼락부자나 벼락거지, 금수저나 흙수저 등의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마음은 아마도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렇게 스스로의 단점만 부각해서 부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텔레비전이나 뉴스를 보면 온통 이러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언론매체가 조장하는 사회에 우리가 스스로 세뇌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략 100년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했을 때, 이 시간의 양은 영원한 시간에 비추어 보면 티끌과도 같이 작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시간을 임시로 있다가 떠나갑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며 박탈감을 느끼거나 자존심에 상처 입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특별한 능력으로 불공평으로부터 탈출하기도 합니다. 개천에서도 용이 나옵니다. 며칠 전 지방에 있는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는 암환자들만 모여서 서로를 독려하며 투병하는 공간입니다. 그 중에 연배가 몇 살 많으신 위암 환자는 50대 중반이셨습니다.

몇 해 전 인생의 황금기가 찾아 왔었답니다. 해왔던 일이 대박을 터뜨려서 가족들과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닷없이 암이 찾아왔습니다. 능력으로 흙수저를 버리고 다이아몬드 수저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암 발견 당시는 초기였으므로 수술만으로 모든 치료가 끝났는데 그 후 2년 정도 시간이 지나 간, 췌장과 같은 다른 장기에 다발성으로 재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순간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세상은 정말로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암, 그것도 말기 정도는 되어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천하를 얻어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벼락거지라는 생각에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건강을 잃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면 그 동안 세상살이에서 불공평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하다는 것이 깨달음의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암과 투병하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함께하기를, 희망을 잃지 마시길 기원하셨습니다. 행운과 희망은 암과 투병하는 사람에게는 다이아몬드보다도 갚진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월간암(癌) 202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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