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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계절여행]타래난초
고정혁 기자 입력 2008년 08월 25일 12:08분882,470 읽음

[야생화 계절여행] 타래난초

 

키 작고 꼿꼿한 이 꽃이 피기를 기다렸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오르락내리락 하며

   기다렸습니다.

   잔디밭에도 가끔씩 피지만 제가 아는 이 꽃은

   바람 부는 언덕배기 작은 산 언덕에

   작지만 큰 키로 꼿꼿이 피

   작은 방울소리를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잠시 피였다가 지는 꽃이지만

  작은 방울을 휘감고 피는 모양이 하도 신기해

  하나하나 땅에 엎드려 바라보기도 하였지요.

                                             톡 치면 짤랑하며 소리 낼 것도 같은데

                                             소리는 나지 않아요.

 

 타래난초소개

분류 : 난초과의 여러해살이 풀

크기 : 10~40cm 내외

개화기 : 6~7월

꽃말 : 추억, 소녀

 

7월의 산기슭 풀밭에서 타래난초가 아름다운 꽃물결을 이룬다. 분홍색 꽃구름이 피어나는 것 같다.

묘지 근처나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꽃대는 줄기 하나가 곧게 선다. 뿌리에서 돋은 잎은 길이가 5~20cm로 크고, 밑 부분이 칼집 모양으로 줄기를 둘러싼다.

꽃이 아래에서부터 위로 나선 모양으로 꼬이면서 피기 때문에 타래난초라고 부르는데, 마치 꽈배기처럼 꼬여서 올라가는 모습이다. 또 땅 속의 뿌리가 흰색을 띠는데 마치 난초의 뿌리처럼 굵고 물기가 많아 타래난초라고 불린다. 가을이 되면 잎이 모두 죽고 이듬해에 다시 자라나는데 잎의 크기가 10Cm도 채 안되기 때문에 꽃이 피기 전에는 풀밭에서 찾아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기하게도 타래난초는 잔디 없이는 살 수 없다. 잔디뿌리의 박테리아를 교환하며 공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래난초는 주로 잔디가 많은 묘지 주변이나 논둑 위에서 만날 수 있다.

열매는 곧게 서고 타원모양이다. 한방에서는 용구(龍拘)라고 하여 진해제 및 종기제거제에 쓴다.

누군가는 타래난초를 처음 본 후 들꽃의 매력에 빠져버렸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타래난초에 어울릴 법한 시 한 수를 소개한다.

 

蘭時 12

이상범

한가지에 매어 달린

애틋한 살붙이여

 

무어라

지껄이는가

속삭이는

고운향기

 

꿈들이

꿈을 꿰고서

구슬처럼 매달렸다

 

 

타래난초의 목숨을 건 생존 전략

 

책 『풀들의 전략』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잡초의 삶을 풀어낸다.

  근검절약, 도주, 저항…… 유혹과 위장, 최첨단 무기 활용, 위기관리, 대모의 비용 삭감 등 생   명을 지켜내기 위한 잡초의 전략은 너무도 리얼해서 잡초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혼돈이 생길 정도다.

  책에 소개된 타래난초의 생존방법은 놀랍다.

  ‘타래난초 씨앗은 너무 작기 때문에 발아에 필요한 영양분조차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래난초는 무서운 전략 하나를 생각해 냈다. 난균이라는 곰팡이 무리를 불러 모아 놀랍게도   자신의 몸에 기생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자기 몸속으로 들어온 균사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해서   발아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난균까지 완벽하게 분해, 흡수해서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으   로 삼는다. 그러나 까닥 잘못하면 거꾸로 균의 침입을 받게 돼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마치   '살을 잘라 뼈를 세우는 것'과 같은 위험한 전략이다.’

  여리고 곱기만 한 타래난초가 꽃을 피워 내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담보를 내어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잡초를 이름 없는 풀이라고 멸시한다. 그러나 이름 없는 풀은 없다.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잡초에겐 자기만의 이름과 아름다움과 특징이 있다. 그것들은 다양하고 생기에 차 있다. 잡초의 삶도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잡초의 특징은 무엇보다 역경에 끊임없이 마주서는 강인함이다. 잡초는 식물계의 하층민인 셈이다.’

깊은 산 속, 계곡 틈, 무덤 가….

산과 들, 억척스레 틈을 비집고 이글거리는 햇빛과 세찬 폭우, 바위를 무너뜨리는 강한 바람에도 꿋꿋이 작은 꽃대를 피워내는 잡초의 생명력을, 나는, 내 남편에게, 같은 암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다.

 

월간암(癌) 200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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