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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파업을 바라보며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0년 10월 14일 13:29분4,162 읽음
의사라는 직업은 매우 고되고 혹독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기 때문에 이타심을 필요로 합니다. 또 일은 힘들지만 영리를 추구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한 명의 전문의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대학과 병원에서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며 교육비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초중고 시절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했던 공부와는 차원이 다른 혹독한 학업과 훈련을 하며 그 기간을 견디어야만 전문의가 되어 한 단계 높은 진료와 의료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환자를 대면하는 업무는 기본적으로 적성에 맞아야 하며 환자를 보살필 때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생명이 오가는 수술실에서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으며 완벽에 가까운 기량을 갖고 있어야 자신의 업무를 지속할 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이타주의적인 사명감과 의술이 있어야 수행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고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숭고한 일은 없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고 유명한 사람이 되려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어떤 사람들은 적성에 맞지 않아 좌절을 겪기도 하고 진로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일이 의사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말하는 밥그릇 싸움의 당사자가 된다면 그러한 보람된 일을 하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습니다. 최근 의료파업을 보면서 느끼는 대다수 일반인들의 시각은 존경 받아 마땅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듯하여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회사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이유는 부당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에 가장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카드입니다. 가령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회사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자신들의 지위를 지키고 노동자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입니다. 처음에는 협상을 시작하지만 협상이 여의치 않으면 마지막으로 파업을 시작합니다. 이 경우 당사자인 회사와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으며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협상을 타결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봅니다.

잘못된 의료 정책을 바로잡다는 호소로 시작된 의사의 파업은 당사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불똥이 튀어 피해가 생기며 그 피해가 심할 경우에는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점이 회사의 파업과는 다릅니다. 국민이 파업의 대상이 되며 그 중에 지병이 있거나 지금 당장 응급적인 상황에 놓은 환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됩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여파 때문에 기존 환자들의 진료와 치료가 지연되거나 멈춘 병원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의료 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터지면서 암환자들은 수술 날짜를 잡아 놓고도 미뤄지거나 취소되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병원을 방문하지만 담당 의사가 자리에 없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치료 받을 수 있는 시설을 찾아서 병원을 전전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환자들은 파업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낍니다. 암환자와 응급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파업의 인질이 된다면 정당한 파업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환자들의 파업을 상상해봅니다. 어떤 정책이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모든 환자들이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고, 병원에 있는 모든 환자들이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000년에 약사법과 관련하여 있었던 의료파업 이전에는 상상으로도 불가능했던 것이 의료파업입니다. 사회 구성원의 생명을 담보로 권력이 생겼다면 그 권력은 생명을 구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월간암(癌)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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