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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 한 잔과 함께 마주하는 세상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20년 08월 07일 18:59분4,790 읽음
요즘은 새벽 5시만 되어도 동녘 하늘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6시면 해님은 환하게 떠올라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상 속으로 나오라고 아우성입니다. 이른 아침에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다보면 부지런한 개미들이 자기 몸집보다 큰 먹잇감을 옮기느라 분주합니다. 주의 깊게 땅바닥을 보고 걷지 않으면 개미들을 밟을 수 있어 총총 걸음으로 조심스럽게 걷습니다. 작은 개미지만 공동체를 부양하기 위해 아침부터 일터에 나온 가장이라고 생각하면 무심결이라도 함부로 걸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가장을 잃은 새끼 개미들이 사람처럼 감정이 있어서 슬픔에 잠기지는 않겠지만요.

한편으론 개미에 비해서 거대한 몸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발밑을 보면서 우쭐한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찮게 여기며 짓밟을 수 있으며 장난으로 먹이를 빼앗거나 멀리 던져 보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미를 나와 같은 생명체로 여기지 않고 마치 개미 앞에 위대한 신이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냥 모른 척 조심스럽게 지나간다면 서로에게 아무런 상처가 생기지 않지만 우리가 개미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에 끼어들게 되면 개미는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의 피해는 고스란히 개미가 떠안습니다. 사람보다는 개미가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 발 밑에 존재가 개미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문제는 더욱 커집니다. 사회 속에서는 언제나 강자와 약자가 있기 마련인데 힘을 갖고 있는 존재의 성향이 야만스럽거나 폭력적이라면 발밑의 약한 존재는 언제나 상처를 받으면서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행동 양식에도 변화가 생겼고 과거에는 아니었으나 지금은 범죄가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구타가 별일 아니었으며 아이들을 줄 세워 놓고 차례대로 매로 때리곤 했습니다. 남학생들만 있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군대 시절까지 선생님 혹은 상급자가 제자 혹은 하급자를 폭력적으로 구타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때처럼 행동한다면 큰 사회적 이슈가 될 것입니다. 과거의 야만스러운 것들에 대한 문화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은연중에 남아서 서로에게 상처가 생기곤 합니다. 특히 예전과 달리 남녀의 지위는 비슷해졌지만 남녀의 구분은 더욱 엄격해졌으며 같이 일하는 공간에서는 더욱 높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로 발전했기 때문에 상대를 존중하는 배려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위가 높아지면서 나이가 들어가는데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채로 과거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라떼는 말이야!”

이런 유행어가 생겼습니다. 커피에 우유를 섞은 음료가 아니라 나이 든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아랫사람에게 훈계할 때 쓰는 말입니다. 비슷한 말로 “왕년”이 있습니다. “내가 왕년에는 저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니었어”라며 무언가 자신의 자존심을 세울 때 쓰던 용어가 지금은 “라떼”로 대신 쓰이고 있습니다.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급자들이 쓰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자신의 과거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입에 담을 때는 서글픈 마음이 들어야 조금 더 진정성 있는 인간의 모습일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과거를 들먹이며 젊은 사람에게 자존심을 세우려는 행동 자체가 서글프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습은 감추고 스스로의 권위만 앞세운다면 하급자는 속으로 손가락질 할 것이 뻔합니다. 한 번은 실수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계속된다면 더 이상 실수가 아니며 범죄가 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지금 중년이 넘어가는 분들에게 어린 시절은 폭력과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군인들이 정치를 했으며 군사 문화는 사회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 사회에서 상급, 혹은 중간 관리자 위치에 있으면서 라떼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은 변했습니다. 가정에서도 훈계를 이유로 어린 자식에게 매를 들면 경찰이 집 앞 현관에서 초인종을 누를 수 있습니다. 상대편이 누구든, 무엇이든지 존중하는 생각이 기본으로 몸과 마음에 배어 있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줄 수 있으며 더구나 회사와 같이 위계로 이루어진 조직에서는 더욱 높은 수준의 배려가 요구됩니다. 도덕이나 윤리가 필요한 이유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드러내 치유해야 합니다. 어떤 상처는 짧은 시간동안 그저 지나기만 바랄 수 있지만 어떤 것은 지속적으로 마음 속 깊이 파고들어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치유되지 못한 마음의 고랑이 깊어지면 외부로 점차 드러나 우울감이 들고 활기를 잃고 삶의 의욕마저 꺾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와 존중입니다. 학교 수업 중에 배려나 존중에 대한 과목이 있지만 실제로 생활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제가 어렸을 때보다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건강할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권리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엇이든 사회의 건강을 해치려 한다면 우리는 합심해서 그것을 저지하고 무력화시킬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개미 한 마리조차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발밑에 있는 개미가 하찮게 여겨질지언정 같은 생명으로 인정한다면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강한 개인이 건강한 사회를 만듭니다.

월간암(癌) 202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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