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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존엄한 작별을 위한 선택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9년 12월 10일 18:00분5,764 읽음
사회가 발달하고 사회 구성원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면서 개인의 권리가 여러 분야에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의료 분야에서도 확연히 다른 변화가 일어나는데 발전된 의학을 어떤 식으로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들입니다.

의학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고 보수적입니다. 그래서 모든 변화는 법으로 명시되며 관계 기관의 감독 아래에서 시행됩니다. 즉, 의학적인 변화는 법이 먼저 바뀌어야 진행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2016년에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면서 이제 우리는 자신의 임종을 어떤 식으로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으며 이 법에 근거하여 건강할 때 미리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습니다.

연명치료는 현존하는 의학기술을 동원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입니다. 생명이 연장되는 만큼 고통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치료에 대해서는 의사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며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목적으로 사용될 때 환자나 보호자는 비용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많은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이 생기기 이전에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의료진은 의무적으로 생명연장 의료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환자나 보호자는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졌습니다.

또 아직 건강할 때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들도 마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급박한 상황에서 병원에 실려갔을 때는 이미 정신이 혼미한 상태이거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장착하는 연명치료 장치에 대한 자신의 결정을 미리 문서화해 둘 수 있습니다.

보건소나 의료원, 지역보건의료기관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서류를 작성해 두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피하고 조금 더 편안한 상태로 자신의 마지막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환자가 아닌 건강한 상태에서 연명치료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미리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며 지금 중대한 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면 담당의사와 상의하여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의향서는 약 43만 명, 계획서는 3만여 명이 작성하였습니다. 이 수치를 보면 우리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모습이 이전보다는 좀 더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문서를 작성하는 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정서에서 임종을 대하는 자세는 선진국과 비교해 여러 면에서 다른 모습입니다. 아마도 유교적 관습에 따른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효도해야 한다는 관념이 임종과 결부되면 연명치료를 포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다면 산소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하면서 건강 회복을 기도하는 모습이 효도의 한 면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래서인지 호스피스 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강합니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과 같은 사회적 제도가 생기면서 서서히 변화가 생기고 있으며 자신의 임종에 대해서 스스로 대비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외국에서는 암과 같은 중대한 질병을 진단 받으면 병기에 관계없이 호스피스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치료 결정권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병의 상태가 위중해져야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호스피스 아니면 중환자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매우 슬프고 안타깝지만 경황이 없어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해봤다면 좀 더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살면서 이런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때마다 상황이 달라서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인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건강할 때부터 대비하고 있어야 침착하고 후회 없는 선택이 가능할 것입니다.

연명의료결정법과 같은 제도가 생기기 이전에는 주로 가족이나 보호자에 의해서 마지막 순간이 결정되었습니다. 중환자실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인간의 존엄성이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할 것입니다. 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연명치료가 보호자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위안이 될 수 있겠지만 환자는 원치 않는 고통 속에서 지내게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후회되겠지만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편안하게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갖고 싶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사회는 가파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그 중에서 임종에 대한 인식과 그에 따른 문화적 변화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인권은 과거와 확연하게 다른 차원으로 발전해왔습니다. 헌법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으며 그 중 10조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명시합니다. 연명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의 연장선입니다. 안락과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권리가 행복추구권이며 마지막 순간 또한 삶의 한 부분입니다.

사실 정답은 없지만 무작정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것도 올바른 선택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루 살기도 바쁜데 먼 훗날 생길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지만 누구나 그 순간을 원하는 때에 맞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을 때 충분히 생각하고 고심해야 합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4년차에 접어들어 제도가 조금씩 준비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현재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의 등록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앞으로는 누구나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마지막을 존엄한 상태에서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는 일이 아닐까요.
연명의료결정제도 공익광고 문구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결혼도 준비하고 노후도 준비하면서 왜 마지막 순간은 준비하지 않는 걸까?”

월간암(癌)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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