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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9년 09월 02일 15:17분6,397 읽음

울릉도를 신비의 섬이라고들 합니다. 이번 여름에 다녀온 울릉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깊은 고독을 품고 있는 것처럼 묵묵히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붑니다. 여행을 온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터전으로 생활하는 분들은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자연과 고군분투합니다. 여행자는 무심히 달려드는 파도를 즐기지만 울릉도의 뱃사람에게 파도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역적으로 우리나라를 한반도라고 하는데 울릉도와 독도는 유난히 신비로운 자연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바다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만들어졌다고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이 도착하는 순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섬 전체가 거대한 검은 현무암 바위 하나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좁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는데 경사가 심한 가파른 오르막이거나 내리막길입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기 때문에 명이나물 같은 저장식품들이 발달했을 것입니다. 겨울에는 눈이 2미터씩 내린다고 하는데 그런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겨울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물로만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명이나물은 누군가의 생명을 이어주는 나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명이나물이 된 것이겠지요. 길고 긴 겨울 눈이 사람 키를 넘겨 쌓여 밖을 오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물로만 연명하며 울릉도를 지켜온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가슴이 묵직해집니다.

다행히 울릉도에는 물이 풍부합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매우 좋은 물입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울릉도 주민이 물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치료 효과가 있는 신비한 물에 대한 이야기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많습니다. 프랑스의 루르드 샘물처럼 익히 알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중요한 것은 누구나 그런 기적이 생기지 않습니다. 암환자가 프랑스의 그 유명한 샘물을 마시고 단번에 암이 씻은 듯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종교적 체험에 가깝습니다.


봉래폭포는 명소 중에 하나입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고 길을 따라서 20여분을 걸어야 합니다. 중간에 풍혈이라는 작은 방이 있는데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 정도의 시원한 바람이 나옵니다. 그 맞은편에는 작은 수도꼭지가 하나 있습니다.

당시 여행의 피로가 겹치고 음식이 바뀌어 예민해진 장으로 살살 아랫배가 아프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올까 계속 생각하면서 봉래폭포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고 다시 내려오면서 그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잠시 후에 불편한 느낌이 순간 사라지고,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짜증스럽던 마음도 사라져 즐거운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단지 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불편함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입니다. 뱃속만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곤함도 모두 씻어나간 듯 상쾌했습니다. 일행에게 이야기하니 모두들 웃어넘깁니다. 정말이라며 진지하게 설명을 했지만 그럴 수 있다는 반응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있을법한 사건입니다. 꼭 물이 아니어도 별스럽지 않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늘 지나치던 어느 풍경이, 누군가 나눠준 작은 것이, 마치 온 우주가 나를 사랑함을 열렬히 알려주는 것처럼, 축복을 내려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몹시 개인적이고 은밀한 사건은 겪고 식당에서 만났던 주민이 말한 각종 효험-당시에는 무슨 물이 만병통치약이겠네 하며 시큰둥했었던-을 떠올리며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이거나 아니면 실제로 신비한 효능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일텐데 저는 신비한 효험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 놓으면 동해에 있는 섬은 울릉도와 독도뿐입니다. 그동안 교통이 불편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2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쾌속선이 등장하면서 육지 사람들의 방문이 늘었습니다. 또 중국과 거리가 가장 먼 지역입니다. 환경오염 없이 청정한 자연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바다는 하늘의 빛깔을 닮아 푸르거나 잿빛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작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맑습니다. 섬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는 작은 배들이 환한 불빛을 밝히고 오징어잡이에 열중합니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바다는 거대한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합니다.

여름에는 비가 많이 오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립니다. 제가 마신 물은 울릉도 가장 높은 봉우리부터 시작되어 내려오고 그 물을 모아서 수돗물로 사용합니다. 984m의 높이를 품은 산은 울창하고 깊은 숲으로 덮여 있습니다. 향나무가 많아 뱀이 살 수 없으며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으로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산과 바다의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하나 된 느낌입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사람에 따라 어느 곳은 편안하고 휴식을 주는가 하면 어느 장소는 불편하고 유난히 피곤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체질에 맞는 음식과 약재가 있는 것처럼 나와 궁합이 맞는 장소도 있습니다. 또 어느 지역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편안함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모두에게 힐링이 되는 장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이나 장소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한 번 만나거나 찾게 되면 잊지 못할 인연이 되고 힘들 때면 기대고 싶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 됩니다. 다음에는 어느 눈 많이 내리는 겨울을 울릉도에서 보내고 싶습니다.



월간암(癌)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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