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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에세이생명의 은인들에게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9년 05월 07일 17:18분9,390 읽음
- 길을 가다 보면 가끔 어떤 사람들이 말을 건네옵니다. ‘도를 아십니까?’ 혹은 ‘얼굴이 밝으십니다.’ 등의 종교적 접근을 시도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헌혈하고 가세요!’라는 부드러운 음성을 듣습니다. 언제 헌혈을 했나 생각해보니 25년 전 군에 있을 때였습니다. 졸병이었을 때는 예쁜 간호사의 얼굴도 보고 헌혈 후에 나눠주는 초코파이와 같은 과자가 먹고 싶어서 내심 헌혈버스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땀 냄새가 지독한 군복을 입고 생활하다가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를 보고 심장은 쿵쾅거려 펌프질이 잘 되어 피가 잘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헌혈은 내 만족을 위한 행동이었을 뿐 그 피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아픈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을 때 헌혈은 남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보다는 철이 좀 들었습니다. 헌혈은 비교적 손쉽게 타인을 돕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굳이 내가 아니어도 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헌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백혈병이나 혈액암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은 때에 따라서 골수 이식이나 조혈모세포이식 등이 필요하며 생명을 위협하므로 적절한 시술이 관건입니다. 기증을 하려 해도 조건이 까다롭고 매우 희박한 확률을 통과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위험이 따랐습니다. 지금은 조혈모세포만 채취하여 이식하기 때문에 공여자의 위험이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참여자가 적은 실정입니다.
대개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 환자에게 이 방법은 최후의 수단입니다. 환자가 시술을 결정하고도 잘못되거나 시술이 무산된다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전자 정보가 완전히 일치해야 전달 받을 수 있으며 이식 후에는 기증자의 면역체계로 바뀌고 혈액이 다를 경우에는 혈액형도 바뀌게 됩니다.
가족끼리도 혈액형이 같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혈모세포는 부모 자식 간에는 대략 5%의 확률, 그리고 형제자매 사이에는 25%의 확률로 일치합니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사람 간에는 수만 분의 일의 확률로 일치합니다. 가족끼리의 수혈이나 세포기증 혹은 장기 기증은 수시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중에서 내 혈액 혹은 조혈모세포나 장기를 필요로 한다면 큰 고민 없이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나의 피와 장기를 나누어 주는 이타주의적 행동은 커다란 결단과 용기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공여자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나누어 줌으로써 생명 나눔을 실천합니다. 최초 등록 후에 기증하려는 마음이 변한다면 언제든 자신의 결정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것처럼 기다림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길을 가다가 사고가 발생해서 응급적인 상황에서도 순간적인 판단으로 이타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동물이기 이전에 사람일 수 있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행동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서 생명의 일부를 내놓는다는 것은 이러한 사랑의 의미와 일치합니다.
다른 이와 연결됨으로써 일시적인 삶은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이 서로 연결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처럼 혈연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학연으로 연결됩니다. 같은 취향이나 취미를 갖고서 동호회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나 음악과 같은 예술을 공감하기도 합니다. 또 남녀가 서로에게 끌리기도 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공여자에게 생명을 부여 받은 환자가 있습니다. 투병 중이기 때문에 재발의 위험성으로 걱정스럽지만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을 때 환자로서의 삶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생활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는 마음은 처음에는 한주먹의 눈덩이였지만 그것을 굴리면 불어납니다. 말 그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뉴스를 보면 지구 곳곳에서 온갖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타적인 사랑과 돌봄과 배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 생명을 나누어 준 사람들이 있고 소중한 생명을 선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 것이 아니라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린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필요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잠재적으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귀하지 않은 생명이 없고 감사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월간암(癌)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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