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눈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9년 04월 11일 09:35분5,577 읽음
쌩떽쥐베리 어린왕자의 첫 장면은 보아구렁이 그림으로 시작합니다. 이 그림이 무슨 그림처럼 보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자라고 대답을 해서 어린 시절의 비행사는 실망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보아구렁이의 뱃속을 볼 수 있도록 다시 그립니다. 욕심 많은 뱀의 뱃속에 있는 코끼리 그림은 모자처럼 보이는 삽화 때문에 웃음이 나오지만 실상을 보면 섬뜩합니다. 살아있는 커다란 동물을 뱃속에 넣고 소화될 동안 꼼짝도 하지 않는 뱀의 이야기는 웃어넘기기에는 잔인한 면이 있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어린왕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보게 됩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뱃속에 들어가 있는 코끼리의 삽화를 보면서 우리말로 본다는 것이라서 ‘보아’ 구렁이라고 이름을 지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커서 다시 보니 보아과에 속하는 동물들이 있었고 그중에 속하는 구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어나 우리말이나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책 속에서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속이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하는 보아구렁이 밖에 못 그린다니까!”
이 정도면 보아구렁이는 보아과의 구렁이가 아니라 우리말 보아 구렁이입니다.
읽을 때마다 어른이 되고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실 속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몸과 마음이 변하면서 어른이 되어갑니다. 누구나 어린왕자가 마음 한 구석에 남아 모습은 변해도 순수는 간직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어린왕자는 모자 모양의 보아구렁이를 그려 놓고서는 어른들에게 시험을 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험의 요지는 이런 것입니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최선을 다해서 그린 그림에 대하여 어른들은 아이의 노력만큼 생각한 후에 대답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힐끗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질문을 했느냐 입니다. 6살짜리 아이의 질문과 직장 상사의 질문에 같은 식으로 대답하지는 않습니다.

6살짜리 아이는 진심을 다해 자신의 노력에 대해 묻습니다. 직장 상사는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간단히 묻습니다. 둘 중 어느 질문에 더 신중해야 하는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에 담긴 진심과 노력보다는 질문자의 직책과 위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린왕자는 대부분의 중요한 것들을 건성으로 대하는 어른들에게 언제나 설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것조차도 자세히 볼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매우 중요한 일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모른 척하거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지하거나 심지어는 종속되어 이용당하기도 합니다. 어린왕자는 우리가 시뻘건 얼굴을 한 채로 꽃향기라고는 맡아 본 적도 없고 별을 바라 본 적도 없이 하루 종일 계산만 한다고 말해줍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중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톱 밑에 박힌 가시나 입안의 염증은 몹시 아프고 견딜 수 없이 신경을 쓰게 하지만 암과 같은 중병은 의외로 아무런 통증도 없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더 위태롭기도 합니다.

어린왕자가 암과 투병하는 분들을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대해서 말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슬픔, 기쁨, 행복 등등 우리가 생활하면서 매순간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라고 말할 듯합니다.

가끔 전화를 걸어와 조언을 구하려는 분들의 궁금증은 대체로 자신의 병증과 최신식의 치료법 이렇게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암과 투병하는 분들이 좋은 치료를 받으면 당연히 삶의 시간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시간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일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끝없이 암에 걸린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하고 억울해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비참해지고 가장 소중하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퍼붓게 됩니다. 언제까지나 무한대로 주어질 줄 알았던 시간의 끝을 느꼈다면 그 사이를 고통으로 채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을 인정하고 주위를 돌아보고 걱정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조건 없이 퍼부어주는 따사로운 햇살에,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힘차게 뛰는 심장에도 무심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던 계절이지만 꽃이 피니 눈에 보이는 봄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들은 언제나 순식간에 다가오고 빨리 사라져갑니다. 예쁘고 고운 꽃과 함께 봄을 만끽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월간암(癌)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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