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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에세이민속촌 줄타기 공연을 보면서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8년 11월 02일 12:23분4,910 읽음
일 년에 몇 번 아이들과 함께 용인에 있는 민속촌에 놀러 가곤 합니다. 옛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보면서 집의 구조나 길의 모습 또 문화적 배경과 신분체계 등 공부할 내용이 많지만 아쉽게도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민속촌 안에 조그맣게 마련되어 있는 놀이기구를 제일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바이킹을 좋아하는데 민속촌의 바이킹은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어서 더 좋아합니다. 결국 아이들과 민속촌에 가는 목적은 바이킹을 기다리지 않고 아이들이 마음껏 탈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잘 노는 아이들이 커서도 잘 산다는 어느 책 구절을 떠올리며 속으로 ‘커서 위대한 사람이 되겠군!’ 하며 위안을 하곤 합니다.
한두 시간 바이킹을 타다보면 배도 고파지고 다른 무언가로 관심을 돌립니다. 주막으로 이동해서 밥을 먹고 여전히 미련이 남아 아이들에게 공부도 되는 재미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봅니다. 다행히 여러 가지 공연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말타기, 줄타기, 풍악과 같은 놀이 프로그램들이 곳곳에서 펼쳐집니다. 식사 후에 곧바로 바이킹을 타면 왜 안 좋은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면서 산책도 하고 공연도 보자는 제안을 하지만 아이들은 빨리 끝내고 다시 놀이기구를 타야한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움직입니다.
마을에 넓게 만들어 놓은 광장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줄타기 공연을 보고 있습니다. 얼핏 보아서는 하늘을 날면서 뜀뛰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하얀색 굵은 동아줄을 공중에 길게 늘어뜨리고 줄타기꾼은 그 위를 뛰고 텀블링하고 한발로 서고 뒤로 돌면서 갖가지 묘기를 보여줍니다. 줄 밑에서는 해설을 하는 사람이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흥을 돋우는데 신묘한 줄타기꾼과 이야기꾼의 넋두리에 빠져듭니다.
줄 하나에 몸을 올려놓고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우측으로 기울면 재빨리 몸을 좌측으로 틀고, 좌측으로 기울면 재빨리 우측으로 틀어서 균형을 맞춥니다. 몸은 좌우를 계속해서 오가지만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 줄에 몸이 붙어 있는 것처럼 신기하게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줄과 사람은 계속해서 움직입니다. 아마 줄 위에 가만히 서 있게 되면 땅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자전거가 멈추면 발은 페달에서 내려와 땅을 디딜 수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줄 위에서는 디딜 땅이 없으니 줄타기꾼은 쉼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줄타기꾼에게 멈춤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민속촌의 줄 밑에는 푹신한 모래가 깔려 있었지만 말입니다.
줄타기꾼이 줄 위에서 내려오자 줄은 곧바로 움직임을 멈춥니다. 멈추어진 줄에 누군가가 갑자기 나를 떠미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줄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손에 식은땀이 나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줄타기꾼은 노련한 솜씨로 그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이 있어야 될 중간 자리를 찾습니다. 그것이 줄타기 궁극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도 줄타기와 비슷하다면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몸은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해도 발이 언제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면 줄 위에서 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중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좌우로 움직여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몸과 생각이 고정되어 있고 멈춰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중도를 지키는 것은 암 생존자 중 장기생존자들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투병하면서 극단에 치우치거나 갇혀서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위험한 일도 없습니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면 재빨리 왼쪽으로 틀어야 줄 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어느 하나에 자신의 시간과 능력과 과정을 소진하기보다는 시야를 넓게 갖고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암과 투병할 때 우리는 줄타기의 이치를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치료가 무엇인지 잘 알아보고 어디가 중간일까 끊임없이 자문하며 극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사를 넘나드는 줄타기를 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일 수도 있겠지요. 그때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중간의 균형을 찾아 줄을 건널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월간암(癌)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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