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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는 계절 가을

이 기사는 고동탄 기자가2018년10월04일 10시25분에 최종 입력하였습니다. 총 827명이 방문하여 읽었습니다.


추석이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시원하던 바람이 본격적으로 선선한 것을 보니 완연한 가을입니다. 사계절 중에서 제일 여유 있고 쾌적한 계절입니다.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보이면 아직 젊어서 그런 거라며 농담을 던집니다. 이 맑은 하늘 아래 마음이 시무룩하고 젖어 있다면 가을을 타기 때문일 겁니다. 피부는 주름지고 기운은 없고 눈도 침침하지만 가을이 느껴진다면 아직 살아있음이 감사한 일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계속 흐르던 시간이 이제는 끝자락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드는 이유는 추운 겨울을 앞둔 가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간은 언제부터 흐르기 시작했을까요.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처럼 시간도 끝없이 지속될 것 같지만 확실한 것은 한 사람의 시작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이고, 이 세상을 떠날 때 끝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을 때의 시간은 세상의 개념이며 나와는 무관한 시간입니다. 과학자들은 드넓은 우주와 영원한 듯한 시공간의 존재를 밝히려고 애를 쓰지만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 속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할 뿐입니다.

현재의 시간은 큰 의미 없이 흘러갑니다. 작년 이맘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는 사건도 없습니다. 사실 일주일 전이나 어제나 가물가물한 기억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를 소중하고 가치 있게 썼다면 기억에 없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간 기계적인 생활은 바닷가 모래 위에 써놓은 글씨처럼 시간이라는 파도에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이제 10월이 지나고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 또 한해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워지고 울적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은 이토록 생생한데 돌아보면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습니다. 어느 영화에서 어느 비오는 날 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제자가 스승에게 말합니다.

“스승님!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듭니다.”
“그것은 바람도 나뭇가지도 아닌 너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스님들의 선문답이 마음을 흔드는 장면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나는 가만히 있는데 시간은 흘러갈 뿐입니다. 지나가는 시간에 마음을 쓰기 때문에 매순간 흔들리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누가 이 세상 속으로 나를 떠밀어 넣었는지 모른다. 세상이 무엇인지 나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나는 모른다. 나는 모든 것에 대해 끔찍할 만큼 무지하다.”

프랑스의 위대한 과학자이자 신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속의 문구입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정해진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의 시작은 알 수 없고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데 종착지도 어딘지 모른다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게 됩니다.

10월은 시간이 지나가는 달입니다. 세상은 서서히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알록달록 색깔이 변해갑니다. 땅 위로 낙하하는 나뭇잎들과 붉게 지는 저녁놀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우리는 시간의 시작과 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정된 각자의 시간이 있습니다. 생로병사의 과정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런 면에서는 모두 같은 조건 속에서 세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십년, 이십년은 장담할 수 없겠지만 10월의 시간은 확실하게 우리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