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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이 기사는 고동탄 기자가2018년10월01일 16시53분에 최종 입력하였습니다. 총 235명이 방문하여 읽었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쉰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솟아오르거나, 충격을 받아서 몸이 긴장할 때 호흡은 거칠어지고 짧아집니다. 우리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찬하며 다른 생명체를 깔보는 경우가 있지만 생존 능력으로 따지면 인간은 거의 꼴등 수준입니다.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적응하지 못하고 작은 질병에도 쉽게 목숨을 잃어왔습니다. 또 수렵생활을 할 때는 사냥하기보다는 사냥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위기가 닥치면 본능적으로 숨을 몰아쉬며 긴장합니다. 아마도 진화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님에도 호흡이 짧아지며 힘겹게 느껴지는 경우는 평온한 상태가 아닌 지속적으로 긴장된 생활이 주는 영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짧은 호흡은 마음의 불안뿐만 아니라 몸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런 경우 평온함을 줄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호흡을 변화시킴으로써 긴장의 연속에서 느긋하고 즐거운 방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호흡이 길고 가늘게 되면 정신도 고요해지며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호흡은 몸과 마음에 모두 영향을 주며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몸과 마음은 모두 호흡에 의해서 매순간 변화가 생깁니다. 자신이 지금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 느끼게 되면 지금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길고 가늘게 쉬는 호흡을 유지하는 것은 호흡명상의 중요한 관건입니다.

자세를 바로하고 눈을 감고 앉아서 어떻게 숨을 쉬는지 느끼면서 마음으로 숫자를 세는 것이 도움 됩니다. 처음 호흡법을 실행하고자 결심했다면 그저 눈을 감고 숨을 마시면서 그리고 천천히 내뱉으면서 수를 셉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세고 다시 하나부터 열까지 반복해서 수를 헤아립니다. 우리는 호흡을 위해서 앉아 있기 때문에 수를 세는 것에 마음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숫자가 10 이상이 되면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기에 바빠서 헷갈리기 시작하고 오히려 호흡에 방해가 됩니다. 수를 세는 것은 그저 하나의 보조수단입니다.

한 번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 것을 한 호흡이라고 한다면 그 사이에 숫자 10을 세어봅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그러한 규칙에 맞추려고 적응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반복적으로 수와 호흡을 맞추어 나갑니다. 어색하고 온갖 잡생각이 들겠지만 억지로 막으려고 하지 말고 지나가도록 내버려두고 계속해서 수와 호흡에 집중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지내다 보면 숨은 고요해지고 길어지고 가늘어지며 마음도 변화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수를 세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몇 분 정도 기다린 후에 운전을 합니다. 이런 버릇은 자동차에 무리를 덜 주고 성능을 끌어 올리며 안정적인 주행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흡 명상을 할 때 숫자를 세는 것은 아침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행 전 미리 시동을 켜는 것처럼 호흡 명상 전 미리 시동을 거는 것입니다.

숫자를 세면서 호흡 명상을 시작하게 되면 하루 동안 긴장했던 마음은 풀어지고 호흡은 점차 길어집니다. 지금까지 짧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면 명상을 위한 시동을 거는 몇 분 사이에 호흡은 길고 가늘어지게 됩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호흡 명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요한 상태가 되면 저절로 헤아리던 수는 사라지고 호흡은 자동으로 길게 들이 마시고 내뱉게 됩니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정신적인 면이 때때로 무시되고는 합니다. 따라서 영혼이나 마음 등 눈에 보이지 않은 영역에서 생겨나는 것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지만 최근에는 양자역학이라는 물리학의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과학의 범주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자아, 무의식 등은 과학의 범위 보다는 종교적인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명상이나 호흡법 등을 이야기하면 간혹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속에 존재하는 자아는 때로는 잊고 살지만 언제든 불쑥 튀어나와서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명상을 해온 사람들은 내 속의 자아가 악마와 같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무아의 경지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이 있다면 바로 이런 상태에서 느껴지는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숫자 10은 내가 숨을 어떻게 쉬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 사용하지만 어느 순간 호흡은 무의식적으로 쉬게 됩니다. 무아의 경지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며 누구나 쉽게 그곳에 갈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한 시간에 편안한 자세로 숫자 10을 헤아리며 숨쉬기를 시도한다면 지금 통증으로 잠 못 이룬다 해도 무아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나 구원 등의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농사를 짓는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씨를 뿌리고 햇빛과 물을 주고 땅에 거름을 주면서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면 싹이 트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 일은 알아서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며 나머지는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의식 없이 이루어지는 숨쉬기는 의지를 갖고 해나간다면 그 후 이루어지는 결실은 상상 이상으로 풍성합니다. 숫자 10은 씨앗을 뿌리는 첫걸음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