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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어둠에서 벗어나려면

이 기사는 고동탄 기자가2018년08월07일 15시38분에 최종 입력하였습니다. 총 709명이 방문하여 읽었습니다.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혼자라는 것은 지금 주변에 사람이 없으며 또 있다 해도 어울리지 않고 마음과 생각을 나누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과 질이 결정됩니다. 암과 투병하는 사람에게 ‘홀로’라는 자각은 때로는 육신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주변에 누군가가 같이 있다고 해도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암환자가 외롭다는 것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같은 처지, 같은 상황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생깁니다. 가족 사이에서 나만 암환자라는 생각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듭니다. 혼자 남은 상황에서 미로와 같은 길을 헤쳐 나가는 과정이 암과의 투병입니다.

암은 병명을 의미하지만 또 어둠(暗)을 뜻하기도 합니다. 발음만 같고 다른 뜻의 한자어이지만 서로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암과 투병하는 대부분은 진단을 받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어둠속에서 방황하며 홀로 남겨진 존재가 됩니다. 극심한 어둠이 주는 공포는 통로를 알 수 없는 미로 속에 갇힌 듯하고 두려움은 소용돌이가 되어 잡아당깁니다. 주위 사람들은 희망을 말하지만 진실은 감춰져 있으며 아무도 결과를 예측하지 못합니다. 치료하는 담당 의사도 통계적인 수치만을 이야기할 뿐 환자가 절실하게 원하는 해답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도 답을 구할 수 없는 상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합니다. 암은 어둠이며 어둠에 삼켜지는 듯합니다.

혼자 산길을 걷다 길을 잃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어둠이 찾아오고 보이는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흐릿한 나무의 형체뿐,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옵니다. 두려움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온갖 무서운 생각이 떠오르며 옴짝달싹 못하게 만듭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하는 생각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두려움은 나를 지켜주는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겁 없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하거나 길에서 무단 횡단을 하는 등은 행동은 사고를 불러옵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지켜주기도 합니다. 위기의 순간에 겁이 생기는 것은 생물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낯선 길보다는 익숙한 길을 선택하며 그 위에서 안전함을 느낍니다. 길이 사라지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에야 길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뒤를 돌아보며 다시 돌아가야 되는지, 표지판은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근심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길 위에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소설가 필립로스의 책 ‘에브리맨’에서는 죽음을 마주하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허리 통증 때문에 잠들지 못하다가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은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같은 상황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혼자서 고통을 감내하기란 매우 벅찬 일입니다. 그리고 암과 투병하는 사람의 일상적인 마음가짐을 바로 이 등장인물에게서 엿볼 수 있습니다. 삶을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버텨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세상에 우연히 들어왔다가 필연적으로 떠난다지만 그 여정은 눈물겹습니다.

이런 가혹함을 무의식적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내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의 주인은 자신이라고 당연히 여기겠지만 실상은 전혀 아닙니다. 기쁘고 행복하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공포감에 우울해지거나 화가 나기도 합니다. 몸에는 알지 못하던 새에 암세포가 자리 잡기도 하고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합니다.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멋대로 활동합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는지 몸에는 가시가 박혀 있는지, 통증이 있는지 등의 상태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에게 조그만 변화라도 생긴다면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변화는 조건에 따라서 일어나며 조건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나를 억압해왔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암은 생각과 감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강력한 강박입니다.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그곳에서만 살도록 강요하며 주위를 둘러볼 수 없도록 깊은 어둠으로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암이 주는 강박에서 벗어났을 때 자유와 안정감이 찾아오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그래서 암과 투병하던 여러 사람이 암을 ‘축복’이라고 표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외면하고 혼자만의 감정에 갇혀서 지낼 것인지,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고 밖으로 나와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낼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