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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 호흡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8년 05월 28일 13:09분5,120 읽음

영어 단어 중에서 몸의 상처를 낫게 하는 치료는 메디슨(Medicine)이며 마음을 낫게 하는 치료는 메디테이션(Meditation)입니다. 그리고 우리말로 메디슨은 의학, 메디테이션을 명상이라고 많이 해석합니다. 어원을 살펴보면 그 말을 사용했던 사람들도 몸과 마음의 치료를 같은 범주에서 생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몸에 상처가 나거나 사고가 나서 뼈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많은 병은 정신과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옛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숨을 잘못 쉬기 때문에 병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숨은 그 자체로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줄 뿐입니다.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으면서 몸에 산소가 공급되고 폐는 산소를 흡수하여 혈액에 담아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운반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 몸은 세포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체는 드넓은 우주에 비견될 만큼 커다랗고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장과 폐는 그곳으로 산소를 운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숨을 쉴 뿐입니다.

불경을 보면 호흡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에 안반수의경이나 대념처경 등의 불경은 부처님이 호흡 명상을 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기록한 자료입니다. 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집중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습을 꾸준히 할 때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숨을 쉽니다. 숨을 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숨을 쉬는 행동이 반복됩니다. 이것은 마치 밤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식물이 동녘으로 햇빛이 비치자 머리를 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의 선물입니다. 숨을 쉬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몸의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거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호흡을 명상이나 기도의 도구로 사용하여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한다고 여기지만 생각은 언제든 우리를 지배합니다. 작은 방에 홀로 앉아 있노라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저절로 오갑니다. 귓속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아주 오래된 기억들, 보고 싶은 사람들, 그 뿐만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일까지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이쯤 되면 사람이 생각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생각이 사람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도 생각이 떠오르면 거기에 따라 기분이 순식간에 변화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라는 말을 남겼나 봅니다.

호흡 명상은 집중하는 연습입니다. 자신의 호흡을 느끼는 연습은 매우 간단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입니다. 그래서 아무 때나 떠오르는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고요함을 유지합니다. 고요함 속에서는 우울하거나 들뜨거나 하는 기분이 없습니다. 그저 숨을 쉬고 있는 사람만이 조용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가끔 등이 간지럽고, 종아리가 따끔거리고 어떤 생각 때문에 비통함에 젖는다 해도 숨을 쉬고 있는 자신에게 다시 돌아와 그 숨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그런 시간이 점점 더 지나면 어느 순간 피부 밑에 있는 육체가 주는 느낌이 의식 속에서 선명해집니다.

호흡명상은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노력이 아닙니다. 간혹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런 일들을 할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바라보기 위한 작업입니다.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나를 해부할 수 없기 때문에 호흡을 통해서 그 속으로 들어갑니다. 피부 밑에서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육신을 바로 볼 수 있으며, 암과 투병 중이라면 암이 주는 통증과 느낌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 꾸준히 수행 하다 보면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은 이제 더 이상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기분의 변화나 감정의 요동이 크지 않습니다.

가끔 억눌렸던 슬픔이 터져 나와서 엉엉 울거나 아이들이 싸워서 감정에 복받쳐 울고 있을 때 어깨를 붙잡고 숨을 크게 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숨을 크게 쉬면 감정은 서서히 누그러들고 복받쳐 나왔던 울음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멈추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호흡은 그 즉시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숨을 들이마시면 몸은 풍선 속에 바람이 들어가듯이 저절로 부풀어 오르고 내뱉을 때면 그 풍선에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쪼그라듭니다. 간혹 어떤 명상센터 같은 곳에 가면 아랫배를 이용해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숨을 편하게 쉬는 것입니다. 우리는 호흡 명상을 통해서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편한 방법을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실 때와 내뱉을 때 나의 몸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느껴야 됩니다. 자연스럽게 몸을 통과하는 공기와 그 공기를 받아들이는 몸, 그리고 언제 숨을 들이 마시려고 근육에 힘을 주었는지, 몸속의 공기를 내뱉고 있는지, 들숨과 날숨 사이에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알아채는 것입니다.

숨 쉬는 일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기 때문에 잘하고 못하는 판단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언제 숨을 들이마실지, 또는 내뱉을지를 기다릴 뿐입니다. 몸속에서 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에 맡겨 놓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숨을 쉬는 일정한 리듬을 알게 되고 그 리듬 속에서 마음은 더 깊은 고요 속으로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도달 했을 때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으며 몸 내부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삶을 볼 수 있습니다.

눈을 뜨면 보이는 바깥세상이 있고 눈을 내부로 향하면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내면의 세상은 바깥세상과는 딴판으로 여러 가지 감정으로 뒤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감정은 몸과 연결되어 바깥으로 튀어나옵니다. 어쩌면 그 중 하나가 암의 촉매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내면에서 암을 유발했던 것들을 알아차린다면 치유에 한 발 더 다가설 수도 있습니다.

호흡 명상법을 치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고요한 의식이 자리 잡아서 나를 괴롭히던 감정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휴지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하나의 점이 서서히 영역을 확장해 나가듯이 고요함도 그런 속성이 있습니다. 한 번 그 맛을 보게 되면 강한 중독성을 띠는 것이 고요한 의식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고요함 속으로 빠져 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극한 고통에 다다랐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맛보기 위해서 마라톤을 중독자처럼 하는 경우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라톤 중독은 생명에 큰 지장을 줄 수 있지만 고요한 마음에 중독되는 것은 생명에 양식을 주는 것입니다. 숨은 누구나 쉬고 있기 때문에 호흡명상은 누구나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에 양식을 주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에 시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메디테이션은 마음에 양식을 주는 행위로 스스로를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월간암(癌)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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