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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모든 걱정을 내려 놓자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8년 01월 03일 15:39분5,022 읽음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면서 살아간다. 배가 부를 때는 굶을 것을 걱정한다. 커다란 불안이 항상 있다. 그러나 성현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현재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순간순간 도를 따라 살아간다.”

달마 대사의 말씀입니다. 새해가 시작될 때면 매번 그렇듯이 좋을 글이나 음악으로 경건한 마음을 만들고 그에 맞게 한해를 시작합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좋은 글귀를 보면서 새로운 시작을 맞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도 이전과는 다르게 변해가는 듯합니다. 좋은 말로는 성숙해가는 것이고 듣기 싫은 말로는 늙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음을 잃어갈수록 활기도 점차 줄어듭니다. 그래서 마음은 젊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실 마음이나 정신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육신만 홀연히 늙기 때문에 젊은 시절 패기가 있을 때와 같이 몸을 움직이고 싶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몸이 늙는다는 것입니다. 치매에 걸리지 않는 이상 우리의 정신이나 마음은 언제나 젊음을 유지합니다. 몸이 쇠약해지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몸이 노쇠해짐에 따라서 마음은 약해지고 그에 비례하게 불안과 걱정도 커져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안과 걱정은 나와 한 몸이 되어 있습니다. 매순간 걱정이 앞섭니다. 더구나 지금, 오늘의 걱정뿐만 아니라 한 달 후, 일 년 후 등 당장 닥치지도 않은 먼 훗날에 대한 걱정도 점차로 커져갑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지나온 시간의 무게만큼 걱정을 쌓아 놓고 한숨만 쉬는 날들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나이가 어릴수록 걱정의 무게가 작으며 나이가 많을수록 걱정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됩니다. 몸이 아파서 걱정이 생겼다기보다는 걱정이 쌓여서 몸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고통에 따라서 몸은 반응하기 때문에 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100년 전에도 의학에서 암은 마음의 병이라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의학계의 증거들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어렵지 않게 암이라는 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의사 갈레노스는 명랑한 성격의 여성과 우울한 성격의 여성을 비교하여 암에 걸리는 경향을 연구했던 기록을 남겼습니다. 18세기 경 암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 삶에서 커다란 상처나 재난이 암을 발병한다는 연구기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암의 발병 원인은 환자의 지속적인 분노와 고통에 기반을 둔다고 인식했습니다.

그중에 특히 1846년에 나온 <암의 특질과 치료>라는 논문은 당시 암 분야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책이었는데 그 책의 요지는 심리적 고통, 갑작스러운 운명의 변화, 습관적인 우울함은 암의 발현에 명확한 연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100년의 시간 동안 암은 물질적인 병으로 정의됩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항암제와 방사능요법의 발달이 가져온 변화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학은 불과 100년 사이에 암의 치료를 제거에 중점을 두었지만 그 이전에는 심리적인 면에도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최근에는 암의 발병과 치료가 스트레스와 같은 마음의 상태와 관계가 있다는 인식이 점차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즐겁고 활기차고 긍정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암의 치료가 외과적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암과 마음의 상태를 연결지어 건강을 호전시키는 일은 온전히 개인적인 영역에 해당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암이 마음의 병이라고 이야기하면 색안경을 끼고 상대방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점은 건강한 몸은 건강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선순위의 꼭대기에 있던 것들을 우선순위의 아래로 내려놓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고 갖고 싶은 것을 지워버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갖지 못했다면 더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하는 것입니다. 생명과 건강, 이 절대적인 크기를 뛰어넘는 중요한 가치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중요하다고 여겨졌지만 실상 없다고 해도 크게 아쉬울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도 오게 됩니다.

또 나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을 놓아 보내면 그것이 주는 기쁨보다는 그것을 견디고 지키기 위한 근심과 걱정의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느끼게 됩니다. 근심은 지금껏 하고 싶거나 갖고 싶었던 것을 취하지 못했을 때 생깁니다. 근심의 근원을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놓아 보내고 내려놓고 비워내는 것은 변화의 시작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하기를 좋아하고 변화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새해가 되면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으로 인사를 하지만 삶의 목적은 채우는 것보다 비우고 나누는 것에 더 큰 즐거움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무엇을 비워야 되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꼭 가지시길 바랍니다. 물질과 마음에서 하나씩 비워나갈 때 생활이 가벼워지고 단순해지며 편안해집니다. 암과 투병하고 있으며 회복을 원한다면 반드시 변화가 필요합니다. 걱정이나 근심 없는 마음은 스스로를 변화의 길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비움은 진정한 채움의 시작입니다.
월간암(癌)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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