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시간은 지나고 나면 순간이 됩니다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7년 12월 04일 15:08분4,987 읽음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길목입니다. 되돌아보면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을 되새김질 해봅니다. 사회적으로는 대통령이 바뀌는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이를 한살 더 먹는 일 외에는 크게 의미 있는 일 없이 평범하게 일 년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매번 다사다난하면 스트레스에 허우적거리다가 모든 시간이 지나갈 것입니다. 평범함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가면서 기쁨보다는 슬픔을, 행복보다는 불행을 가슴에 묻곤 합니다. 그래서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아픔을 줬던 사건들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고 가슴속에 남습니다. 또 몸의 상처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더욱 사무치는 듯합니다. 몸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통증이 사라지면 그에 대한 기억만 남을 뿐 마음에 아픔으로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치유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가 더 깊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통증과 함께 하는 시간은 천천히 무디게 지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이전의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무심한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갑니다. 멈춤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빠르게 지나지만 또 어떤 때는 천천히 흐릅니다. 시간의 속성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초시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시간은 매우 천천히 흐릅니다. 초침은 째깍째깍 움직임이 현저하게 보이고 분침은 느릿하지만 서서히 움직입니다. 그러나 시침은 움직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일 년을 돌아본다면 어떨까요?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이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엊그제 새해를 맞이했는데 벌써 12월이 지나면서 한해를 마감해야 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시계로 바라보는 시간은 몇 분이 길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 년은 순간입니다. 태어나서 살아온 시간을 뒤돌아보아도 마찬가지로 순간일 뿐입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지만 시간은 이미 수십 년이 흘러버렸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은 길게 느껴지고 지나간 시간은 짧게 만드는 것이 시간의 기본적인 속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간의 기본적인 속성은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합니다. 아이들의 하루는 길고 어른들은 매우 바쁘게 하루가 지납니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많은 놀이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하루에 한 가지 일을 하기도 버겁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여기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 연령에 따라서 시간에 대한 판단이 달랐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이가 70대인 그룹과 20대인 그룹을 만들어 30초 ,60초 ,120초에 대한 짐작을 하도록 했는데 연령이 높은 그룹은 물리적으로 120초가 지났지만 40초 정도로 판단했습니다. 스스로 판단하는 시간은 연령이 높을수록 짧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즉 나이가 많을수록 개인의 시간은 빨리 간다는 것입니다.

2010년에 개봉한 영화 인셉션을 보면 꿈속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사람이 꿈속에서 50년 정도를 살았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2시간 남짓이 흘렀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한편의 영화이며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와 닿는 대목입니다.

군대에 들어가면 빨리 시간이 지나 제대하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매일 길고긴 하루를 보냈지만 제대하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 긴 날들은 순간이었습니다. 저도 군을 제대하면서 집에 오는 버스에 오를 때 기사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집에 가는구나! 나는 군대 제대한지 20년이 됐다.”

이제 그 기사님이 말했던 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과학의 테두리에서 시간은 모두에게 일정하다지만 실제로 개인적인 시간은 모두가 다릅니다. 그래서 한해를 돌이켜 보면서 누구는 해왔던 많은 일들과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고, 누구는 무의미하고 무기력하여 감동 없는 시간을 떠올립니다. 그래도 모두에게는 공평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시 기회는 주어집니다. 가는 한해는 아쉽지만 새로운 한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 아쉬웠고 용기를 내지 못했고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병이 들었다면 내년에는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못 갔다면 내년에는 갈 수 있도록 부지런히 여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한해도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월간암(癌) 2017년 12월호
추천 컨텐츠
    - 월간암 광고문의 -
    EMAIL: sarang@cancerline.co.kr
    HP: 010-3476-1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