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 전문가회원accessibility 회원가입perm_identity 로그인
`우리 미역 후코이단 제대로 알려야죠` - 해림후코이단 이정식 사장

이 기사는 고정혁 기자가2017년07월04일 11시38분에 최종 입력하였습니다. 총 6051명이 방문하여 읽었습니다.



“남들이 저보고 미역광이라고 합니다. 40년간 미역에 미쳐서 살았으니 틀린 말도 아니지요. 그런데 제게 미역은 단순한 사업의 대상이 아닙니다. 한평생을 일굴 밑천이 되어주고, 말년에는 생명까지 구해준 최고의 인연이죠. 그러니 미역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너무나 즐겁게 미역 예찬론을 펼치는 해림후코이단 이정식 사장. 한평생이 미역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인생은 미역과의 끈끈한 인연으로 점철되어 있다. 40년전 해림상사를 창업해 미역 가공과 수출을 시작했고, 지금은 완도산 미역에서 바이오신물질인 후코이단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 미역양식이 처음 태동했던 1970년대에 미역 수출을 시작한 미역 1세대 사업가다. 전라남도 고흥 출신인 그는 고흥의 거금도 어민들에게 미역 양식법을 가르치고 직접 기자재까지 제공하며 미역 가공과 수출을 시작했다.

“제가 미역사업을 시작한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반까지는 미역 산업이 대 호황이었어요. 만드는 족족 일본에서 수입해 갔으니까요. 몸은 고되었지만 정말 신나는 시절이었죠. 미역가공을 위해 기계도 개발하고 미역의 종자도 개량하고 쉴 새 없이 일했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어요.”

이정식 사장이 우리 미역산업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그가 고안해 특허를 공개한 미역자숙장치와 미역 탈수장치는 지금도 미역 가공에 활용되는 필수 설비로 꼽힌다. 또 일본 산니구에서 미역 종자를 들여와 우리 미역의 품질을 개량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기여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일본이 중국으로 거래선을 한 번에 바꾸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시장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사라지는 대 충격이 온 거에요. 그러다보니 미역 공장들이 줄도산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저 역시 그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업을 지속하기는 어려운데 미역을 놓을 수는 없고 말이죠.”

이정식 사장이 그 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후코이단이다. 후코이단은 미역이나 다시마 등 갈조류에 함유된 물질로 암세포를 자살로 유도한다는 항암기능이 알려지며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더구나 일본 다카라주조를 통해 후코이단의 대량 생산기술까지 개발되며 일본은 물론 호주나 미국에서도 후코이단을 본격적으로 생산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미역을 놓을 수는 없으니 후코이단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항암물질로 이름이 높았거든요. 그래서 가톨릭대학교 연구실을 드나들며 교수님, 학생들과 같이 후코이단 만드는 기술을 차근차근 개발했죠.”

그러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2005년 해양수산부, 전라남도, 완도군 등 3개 정부기관 공동으로 ‘후코이단 산지 가공공장 건립 지원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완도에서 많이 생산되는 미역을 활용해 후코이단을 생산하기 위한 국책 프로젝트였다.

“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광고가 났어요. 국책사업으로 후코이단을 만들려고 하니, 할 줄 아는 사람은 신청을 하라는 거예요. 솔직히 자신이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미역에서 만큼은 저처럼 준비된 사람도 드물지 않겠어요?”

2005년 이정식 사장은 국책사업의 단독사업자로 지정되면서 해림후코이단을 설립했다. 완도 농공단지에 후코이단 전용공장을 짓고, 대량생산을 위해 다양한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차근차근 후코이단 출시를 준비한 것이다. 그러나 제품의 본격 출시를 앞 둔 2007년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다.

“당시에 너무 무리를 한 탓인지 항상 몸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병원진료를 받았는데 전립선암 3기라는 거예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죠. 수술을 하기는 했는데 경과도 좋지 않았어요. 스스로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때 이정식 사장을 일으킨 것은 후코이단 사업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런데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항암물질이라고 소문난 후코이단을 만드는 사람인데, 암 때문에 죽는 게 말이 되나? 그래서 제가 만든 후코이단을 저부터 먹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죽으면 거기서 끝이고, 만약 제가 계속 살아있으면 정말 최선을 다해서 후코이단을 보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후코이단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정식 사장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건강하게 해림후코이단을 경영하고 있다. 전립선암 역시 완치 판정을 받았을 정도로 호전됐다. 이제 그의 목표는 우리 미역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는 것, 또 제대로 만든 후코이단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미역으로 평생 먹고 살았고, 말년에는 미역으로 목숨까지 구했으니 제가 미역에 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미역과 우리 미역으로 만든 후코이단을 제대로 알릴 수 있다면 미역에게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