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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과 면역력
고동탄(bourree@kakao.com) 기자 입력 2017년 04월 18일 16:14분7,219 읽음
어머니의 몸속에 잉태되면서 기억력은 가동됩니다. 생명의 순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우리의 기억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데 그중 일부분이라도 사라지거나 기억상실에 걸리면 삶은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럭키라는 영화에서는 기억을 잃게 되면 어떤 끔찍한 일이 생기는지 보여줍니다. 기억은 단순히 무언가를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는 것처럼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뇌와 몸에 켜켜이 쌓이는 것이 바로 기억력입니다. 또 몸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세포 하나하나도 각각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런 기억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백신 주사를 맞게 합니다. 백신은 우리 몸에 기억을 심어주는 장치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병에 기억을 만들어 몸이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웁니다. 가령 홍역예방 주사는 우리의 몸이 홍역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게 만들어 홍역 균이 몸에 들어 왔을 때 우리 몸이 반응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게 만듭니다. 백신 때문에 우리는 홍역에 걸리지 않았지만 마치 과거에 홍역에 걸린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여러 식구들 중에 누구는 감기에 걸려서 콧물과 기침으로 고생하지만 누구는 아무 반응 없이 지나갑니다.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아서 건강한 듯하지만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과거에 같은 균에 감염되어서 몸이 그 균을 기억하고 있거나 아니면 면역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억력이나 면역력은 매우 비슷한 일을 합니다. 가령 사춘기 때 첫사랑과 이별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하늘이 무너질 듯 마음이 아픕니다. 식음을 전폐하면서 상사병에 시달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은 점차 회복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비슷한 이별을 겪으면 처음보다는 조금 덜 아프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별의 아픔이 기억 속에서 우리를 적응시키고 어떤 아픔이었는지 이미 알기 때문에 처음보다는 조금 더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면 담담하게 이별의 아픔을 받아들입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기억력이 곧 면역력입니다.

바이러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이 우리 몸을 침투해서 병을 만듭니다. 어떤 병은 쉽게 낫지만 어떤 병은 무서운 상처를 남기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도 합니다. 과거의 사망원인은 전염병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천연두, 마마, 흑사병 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병들은 모두 균에 전염이 되어 생깁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한 번 그 병을 앓은 사람은 평생에 걸쳐서 같은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다녀간 균을 정확하게 기억해서 그에 대한 항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면역력은 곧 기억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의 세포는 모든 사건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사용합니다. 그런데 처음 들어온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반응을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그 바이러스가 큰 병을 일으키지 않고 콧물 몇 방을 흘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가지만 이럴 때 매우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면역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뇌의 기억력으로는 이 바이러스가 내 몸에 왔던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면역세포만이 그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몸은 아무 증상이 없기 때문에 건강한 줄로만 알고 지냅니다. 남들 걸리는 감기를 나는 한 번도 안 걸렸다고 자랑하며 건강에 자만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때 큰 문제가 생깁니다. 외부의 바이러스가 아니라 스스로의 세포가 잘못된 번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암이 생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빨리 스스로의 면역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파악해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암은 외부의 바이러스가 아니고 몸속에서 자라난 것들이기 때문에 기억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치료로 암은 모두 사라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암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사로 암이 없으니 모두 나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고는 다른 곳에 자리 잡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전이하는데 이때는 더욱 월등한 기세로 몸을 점령해 갑니다. 암에 대해서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치료과정에서 느꼈던 심한 통증과 두려움으로 암의 치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기억만 남아서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차라리 홍역이나 천연두 같은 병이었다면 몸이 그러한 바이러스를 기억하고 있어서 같은 병에 걸리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면역력은 암에 대해서 조금 더 특수하게 작용합니다.

면역세포 중에 하나인 T세포나 NK세포 등이 암을 공격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포들이 종양을 이루는 세포를 만나면 공격하여 무력화시킨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하루에 수만 개의 암세포가 생기지만 이러한 면역세포가 활동하기 때문에 암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사라집니다. 결국 면역력은 기억에 의존하는 바이러스성 감염뿐만 아니라 내 몸에 생기는 모든 세포들을 관찰하여 악영향을 주는 세포들을 공격하여 건강을 지켜주는 지원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암이 자리 잡아 이미 병이 되었을 때는 외부적인 치료가 행해지는데 눈에 보이는 암을 없앤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좋은 약이 나와서 암만 공격하는 항암제가 나왔다고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사라진 암이 다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따라서 면역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서 실천하는 생활이 암을 물리치거나 또는 암이 몸에 있다고 해도 방어하여 몸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도 떨어집니다. 그에 맞게 면역력도 떨어집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금방 알아챌 수 있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은 발병해야 알게 됩니다. 건강이란 기억력과 면역력을 지키는 방법들을 찾아서 실천하는 생활입니다. 하루를 활기 있고 즐거운 기분으로 좋은 음식을 먹으며 생활한다면 기억력뿐만 아니라 면역력도 올라간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월간암(癌) 201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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