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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과 위암을 이겨낸 안병선 원장

이 기사는 김진하 기자가2012년11월29일 16시22분에 최종 입력하였습니다. 총 716345명이 방문하여 읽었습니다.

안병선 61세(여)

갑상선암 3기로 암 투병을 시작하다
나는 송파더푸른병원 병원장이며 암환자이다. 올해 61세로 1976년도에 전남대학교 의대를 졸업하였다. 의사로서의 직분과 함께 여성운동과 인권단체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해왔으며 특히 핵시대평화재단 한국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서 핵을 사용한다면 인류의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핵으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인류의 염원은 예로부터 평화였지만 역사는 평화롭지 못했고, 핵은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커다란 재앙 중에 하나다. 또한, 여성의 인권과 가정의 폭력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가정 폭력 방지법을 소개하여 가정으로부터 평화를 이끌어 내기위한 노력들을 해왔다. 의사로서, 여성운동가로서, 언제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충실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러던 중 2006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3기였다. 임파선까지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상태였지만 수술을 했으며 수술 후에는 관리를 위하여 여러 가지 식이요법과 자연요법 등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나는 의사였기 때문에 암과 관련된 자료를 습득하고 공부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갑상선암 수술 후에 담당의사로부터 방사선 치료를 권유받고 방사선 치료까지 무사히 끝냈다. 담당의사는 꾸준히 방사선 치료를 권유했지만 1년 정도 지난 시점부터는 방사선치료를 받지 않았다.

암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굳이 방사선 치료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암은 재발이나 전이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암과 관련된 국내외의 여러 논문과 자료들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의 발달은 여러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과학적인 테두리에서 분석하고 공부했다. 그 결과 자연의학과 대체요법으로도 지금 내가 걸린 암을 다스리며 이겨낼 수 있다는 결론과 확신을 얻게 되었다.

5년 뒤에 또다시 위암 3기
우선 음식을 바꾸고 무엇보다 밥을 현미밥으로 바꾸었다. 운동과 함께 규칙적인 생활을 하였고 큰 탈 없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11년 초에 다시 위암이 발병하였다. 진단은 3기말이었고 갑상선암과는 무관하게 새롭게 생긴 암으로 진단되었다. 위암 진단을 받고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갑상선 암이 걸렸던 2006년에 방사선 치료를 받아서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위암이 걸린 것이 아닐까, 아니면 현미밥을 잘 먹지도 못하는데 굳이 현미밥을 고집해서 그랬을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우리 집안의 내력이 위가 좋지 않고, 나 또한 젊어서부터 위 때문에 고생을 해왔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위암 수술을 하였다. 위의 75% 정도를 절제하였으며 34개의 임파선에 전이가 되어 있었다. 또, 위를 절제한 단면에도 암이 있었다. 따라서 암을 모두 제거하지는 못했으며 위를 절제한 단면에 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장과 연결하여 수술을 마무리하였다. 담당의사는 이러한 경우에는 1년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란 말을 하였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암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갑상선암을 투병하면서 알게 된 많은 지식들은 대부분 대체의학적인 지식들인데 병원의 담당 의사가 하는 말보다는 내가 공부한 것들에 더 큰 신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기죽지 않고 투병을 시작하였다.

병원에서는 임파선을 타고 암이 전이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대체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암이 약해져서 임파선을 타고 도망간다고 표현한다. 결국 나의 림프구 수가 많고 건강한 림프구를 갖고 있다면 암의 전이는 어쩌면 환영할 만한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면역력이 관건이었다. 나는 34개의 임파선에 전이되었음에도 그래서 나의 림프구들이 건강하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대로 맥없이 주저앉을 것이란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위암 수술이 끝나고 담당의사는 정해진 각본처럼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권유하였다. 2006년 갑상선암 때문에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이런 치료를 다시는 받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해외의 여러 자료들을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었고 더구나 나는 노인의료전문가이다. 항암이나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그에 대한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날지 예측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힘든 치료보다는 더 좋은 방법들을 시도해보겠다는 생각에 위암 수술 후에는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는 받지 않았다. 앞으로 몇 십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다면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과 같은 치료법들은 없어질 것이다.

새롭게 시작된 투병생활
나름대로 암과의 투병이 시작되었다.
나는 의사이기 때문에 수치상으로 나온 데이터를 통하여 관리해야 하는데, 검사를 위하여 매번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것이 "양자약자기장공진분석기"라는 기계였다. 1분 정도 나의 몸을 그 기계에 대면 내 몸의 모든 상태를 체크하여 수치화하여 프린트를 할 수 있는 기계이다. 혈액순환, 간 기능, 췌장 기능, 신장 기능, 뇌신경, 뼈의 상태, 혈당, 영양의 상태, 내분비계, 면역상태, 중금속 오염상태 등등 병원에서 하는 검사보다 더욱 상세하고 정확하게 나의 몸을 체크하여 잘못된 부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우리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들에게도 유용하게 사용하여 환자의 상태를 즉시 파악할 수 있다. 약간의 지식만으로도 누구나 이 기계에서 출력해주는 수치들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암환자라면 반드시 필요한 기계 중에 하나이다. 매일매일 이 기계를 통하여 나의 몸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위암 환자에게 중요한 종양표지자 수치가 있다. CEA와 TPA수치인데 이 수치를 통하여 몸 속 암의 상태를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이 수치가 상승하면 암이 활성화된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 이 표지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민간요법과 적절한 보조제의 활용
전라도 지방에서는 민간요법으로 암이 걸리면 졸복이란 것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위암이 발병하고 목포가 고향인 친정어머니께서 졸복을 구해오기 시작하셨다. 민간요법이지만 오랫동안 내려온 방법이기도 해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졸복을 먹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졸복을 먹으면서 CEA수치가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독이 있는데 장복하다 보니 어느새 졸복의 독에 중독이 되었다. 독에 중독되고는 약 3주 정도 복어를 안 먹었더니 CEA수치가 점차 상승하였다. 비록 복어독에 중독되었지만 복어 독에 중독된 시기에는 CEA수치가 1.4로 가장 낮았다. 졸복 먹기를 멈추자 점차 상승한 CEA수치는 3.66까지 올라갔고, 결국 다시 졸복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 때 졸복과 함께 엘가닉 사의 잎새버섯 진액과 알약을 같이 섭취하였다.

그러나 CEA수치는 계속 오르기만 하였고 4.86까지 올라 있었다. 그러나 암표지자 수치 중에 하나인 TPA수치는 70이하가 정상인데 정상 범위로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졸복의 섭취량을 조금 더 늘리고 엘가닉 사의 잎새버섯 제품을 계속해서 섭취하기로 결정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CEA수치는 조금 더 올라갔지만 TPA수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두 가지 식품을 먹으면서 내린 결론은 CEA수치는 반응이 느리고, TPA수치는 반응이 빠르다는 사실이다.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두 가지를 섭취하면서 내 몸의 종양표지자 수치를 관찰하였다.

더불어 젤옥시겐이라는 제품을 복용하였다. 이 제품의 이론은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산소를 이용하는 효소가 고장이 나 에너지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암에 걸린다는 이론이고, 이런 이론에 따라 효모를 배양해 효모의 미토콘드리아 자체를 여러 가지 영양소와 함께 공급해 줌으로써 암을 이기게 해준다는 것이다. 노벨의학상 후보로 두 번이나 추천된 독일 의사가 38년 동안 연구한 내용인데 설득력이 있어 보여 바로 구입해서 복용을 시작했다. 젤옥시겐 제품을 복용하면서 나타난 현상은 하지 통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밤에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자주 잠을 깨곤 했는데 그런 증상이 없어졌다. 세포에서 에너지 생성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통증이 일어나는데 젤옥시겐 제품이 세포내에서 에너지 생성을 해주니 그런 통증이 멈추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CEA수치는 상승세가 어느 정도 꺾였지만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졸복과 엘가닉 잎새버섯, 젤옥시겐 제품을 꾸준히 섭취하였다. 그리고 며칠전 위암 수술 후 두 번째 받은 여러 가지 검사에서 최종적으로 안심할 만한 수준의 수치를 확인하였고, 위내시경과 초음파 검사를 통하여 수술 부위 또한 깨끗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위암 수술로 위와 소장을 연결하는 문합부에서 재발이 잘된다는데 그 또한 깨끗하였고, 위 절제 단면에 있던 암도 깨끗하게 사라졌음을 확인하였다.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고, 나의 트위터에 그런 기분을 영어로 표현해 놓으니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의과대학을 비롯한 해외 여러 언론에서 나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다이어리와 영양요법이 나를 지키는 힘
암은 투병하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나는 항상 다이어리를 끼고 다니면서 먹는 것, 몸 상태, 마음 상태 등 모든 것을 꼼꼼히 기록한다.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차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기록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할 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이어리는 가장 중요한 정보이다. 감자 한 알을 먹어도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밤에 자다가 깼을 때도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다음으로 나의 투병방법은 영양요법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양자약자기장공진분석기"를 통하여 지금 현재의 영양 상태를 체크하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나간다. 갑상선 암에 걸렸을 때 암에 좋다는 현미밥이 나에게는 오히려 좋지 않게 작용한 듯하여 현미밥 대신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들을 조금씩 자주 먹는다. 위암에 걸리고 나서 좋아진 것들도 있다. 전에는 과체중이라 할 만큼 몸무게가 나갔지만 지금은 키에 비하여 가장 정상적인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느끼는 투병과정은 재미있고, 나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암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필요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내가 운영하는 송파더푸른병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자연치유하는 암환자들의 모임을 가지려고 한다. 언제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살아온 것처럼 암에 걸리고 나서 살아가는 삶은 더욱 새롭다. 의사로서 암환자의 삶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암과 투병하는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다. 암과 투병하면서 막막하거나 답답하다면 나는 언제든 암환자의 친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