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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에 걸린 아내 그리고 100일의 기적
임정예 기자 입력 2012년 08월 31일 12:55분769,802 읽음

전석봉 | 경북 영덕군

모두가 고맙고 감사하다.
이웃이, 형제가 너무나 따뜻하게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어 나의 아내에게 기적이 일어났나보다. 이웃들이 돌미나리가 좋다더라, 민들레가 좋다더라, 돌나물도 좋다고 하면서 조금씩 뜯어다 주신 덕분에 아내가 먹을 녹즙 재료는 언제나 풍족하게 쌓여 있다.

아내는 작년 12월 10일 동네의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거기서 큰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는 말에 놀라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구의 대학병원으로 소견서를 보내고 예약을 했다. 그리고 12월 13일 입원하여 CT 촬영을 하고 혈액 검사 등 각종 검사를 밤늦도록 했다고 한다.
다음날 오후 늦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혼자 보낸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이 아빠 빨리 와야겠어요 간에 혹이 있대요. 영덕에서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니 밤 11시. 아내는 검사로 지쳐있었고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나를 본 아내는 내일 아침에 색전술인지 뭔지를 한대요 한다. 응 그래. 색전술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하고나면 괜찮겠지. 무신경했던 나. 무지의 결정판이요, 바보 멍텅구리였다. 나는.

다음날 아침 아내의 병상침대를 밀고 방사선실로 가서 색전술을 하는 동안 그 앞에서 초조하게 긴 시간을 기다렸다. 시술을 마친 침대가 나오고 지혈을 위해 다시 차단실로 들어가 그때서야 담당의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시술은 잘 되었습니까 예 잘되었습니다 아 예 고맙습니다. 그리고 담당의가 머뭇머뭇하며 나를 본다. 저 아저씨, 아주머니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해서 항암제를 많이 투여했고 현재 간 뒤쪽에 2.5센티, 앞쪽에 비슷한 게 2개, 그 외에 작은 결정들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지금 간암 3기, 엄밀히 따지면 4기 정도이고요. 완치는 안 됩니다 수술도 불가능합니다 몇 번의 색전술을 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항암치료 및 다른 치료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나에게 던져놓고는 가버렸다.

완치불가. 수술불가 이 말들이 거대한 망치가 되어 멍하니 서있는 내 머리를 세게 후려쳤다. 멍청한 보호자인 나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막막하고 답답했다. 저 착한 사람을, 저 어여쁜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저 한숨과 멍청한 눈물만 흘러내리고 주위는 온통 암울한 회색빛이었다. 살아오면서 큰 잘못 없이 그저 평범하게 생활해왔건만. 이제 대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큰딸과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작은 딸아이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숨이 턱 막히면서 뱃속이 온통 뒤집히는 듯 했다. 한참 후에야 지혈을 마친 아내가 침대에 누워 나오고 입원실로 갔다.

아내는 그 후로 4시간을 넘게 꼼짝도 못했고 겨우 일어났지만 색전술 후유증인지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다. 그 사이 벌써 완연하게 병색이 드러나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돌아서면 긴 한숨만 나오고 담배만 찾게 되었다. 열이 올랐다가 내리기를 반복하기 시작했고 간수치가 널뛰기를 했다. 안정을 찾는데 수일이 걸렸고 19일 퇴원을 했다. 나는 그전에 주치의를 만나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어떤 약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약이 어디 있어요? 약 없어요. 폐부 깊숙이 찔러오는 냉랭하고 날카로운 칼.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이어 그래도 특이하게 B형 간염이 없어져버렸네요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엄청 다행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단서와 몇 가지 서류를 챙기느라 수납창구에서 볼일을 보고 아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오니 참 잘 울지 않는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혼자 울고 있었다. 내 뺨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여보 오늘만 울고 울지 마라 내가 고쳐줄께 당신 없으면 나 없고 나 없이는 당신 못살잖아 그래 이 순간만 실컷 울어.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해보자 암선고 받고 생존율 얼마, 그딴거 신경 쓰지 말자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살피면 1년이 2년 되는 거고 또 1년 지나고 2년 되고 그러면 낫는 거야. 나름대로 다짐했지만 그때는 옆에서 그림자처럼 함께 살아온 소중한 사람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자신에 대한 원망과 자괴감만 커져갈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의 얼굴은 병원에 가기 전보다 더 야위었고 병색이 짙어갔다. 누구라도 한눈에 완연한 병자였다. 샤워를 하고 몸무게를 재니 5킬로 정도가 빠져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암 소식은 금세 퍼져나갔다. 이웃사람들은 안쓰럽고 애처로워 보내는 시선이었지만 그런 눈빛을 받기가 더 아팠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큰애한테는 간암과 간장병에 대한 책을 몇 권사라고 했다. 책에서는 상식과 정보를, 인터넷으로는 대체 식품이나 약들을 알아보면서 내 나름대로 식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잡곡밥을 먹어야 한다 채식을 섭취해야 한다 다슬기 기름은 간에 웅담 같은 존재다 차가버섯은 면역 활성 및 간 기능 보호를 한다 등 여러 정보를 수집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현대의학으로는 암을 완전 소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내용이 여러 책 속에 있었고, 자가 치유와 면역요법, 대체의학 등 환자와 가족이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는 판단으로 12월 30일부터 나름대로 고심하여 주문한 대체식품을 아내가 섭취하도록 하였다. 차가버섯과 겨우살이 엑기스, 다슬기 기름 등이었다.
그 외에 공통된 부분으로 꼽은 것이 녹즙으로 비타민의 보고이고 효모는 단백질의 보고란다. 그래서 1월 18일부터는 녹즙과 효모를 추가하였다. 그렇게 그럭저럭 식단과 영양을 짜나갔다.

사실, 나도 2010년 11월 등산로에서 계곡으로 삼십 여 미터를 굴러서 척추 1번을 다쳐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었지만 아내를 위해 야산을 함께 오르고 걷기 운동을 열심히 했다. 허리의 통증이 심했지만 아내의 얼굴을 밤마다 살펴보면 차츰 혈색이 도는 게 너무 좋았다. 거기다 내 나름대로의 '자가 치유 식단'을 먹으니 아내는 무슨 방귀를 그렇게도 많이 뀌는지 주위 사람들은 냄새가 독하다 난리였는데 나는 도무지 구린내를 맡을 수 없으니 이것이 부부의 정인가 싶었다. 속에서 독가스가 저리도 많이 나오니 얼마나 시원할까 많이 붕붕 해대라 하곤 했다.

병은 한 가지면 약은 만 가지라고 무슨 잡화점도 아니고 점점 암 관련 자료와 책, 암에 무엇이 좋다는 광고와 팸플릿 등이 쌓여 갔다. 거기다 하나같이 왜 그렇게 가격은 비싼지 온열매트가 좋다하기에 가격을 알아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궁리 끝에 의료기 판매하는 가게를 찾아가 방석만한 맥반석 매트를 삼만 칠천 원에 구입하였다. 아내가 누워있을 때는 간암이 있는 오른쪽 배위에 올려놓고 지내게 했는데 땀이 얼마나 많이 흐르는지 하루에 두서너 번은 속옷을 갈아입었다. 몸을 따뜻하게 하니 좋구나 싶어 여기에 가끔씩 족욕을 추가했더니 효과가 훨씬 더 좋아졌다.
나는 매일 야채를 준비하고 녹즙을 만드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아내는 군소리 없이 무엇이든 잘 먹어줬다. 그런 아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나는 옆에서 약도 챙겨주고 운동도 같이 다녔다.

1월 25일. 혈액검사를 하고 2월 1일 결과가 나왔다. 초기 AFP(간암 종양 마커)가 3680에서 99로 떨어졌고 간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색전술을 한 번 더해야 될 것 같았는데 의사는 안 해도 된다며 대신 작은 결정들이 많아서 언제 연꽃처럼 피어날지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현재 많이 위축되어 있다고 기분 좋은 얼굴로 얘기했다. 아내는 뜬금없이 그 작은 결정들이 왜 있어요 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내 입가에는 미소가 어리고 만다. 아내 나이 이제 쉰하고 하나. 저 해맑고 순수하고 착한 사람에게 왜 이런 시련과 아픔을 주게 되었는지 이렇게 되도록 방치했는지 싶어 또 한 번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어찌됐든 결과가 좋아지고 있다니 그 말이 큰 힘이 되었다. CT판독지와 혈액검사지를 들고 예약해둔 서울의 BRM 연구소를 찾아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영덕을 거쳐 대구, 서울까지 오자니 예상보다 늦어졌다. 그래도 멀리서 온다고 기다려주신 실장님은 데이터를 보고 지금 잘하고 있어서 많이 좋아졌는데 함께 해보자고 하시면서 몇 가지 보조식품과 처방전을 주셨다. 그 처방전과 내 방식의 식단과 혼합하여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실천해나가고 있다.

2월 22일 혈액검사를 다시 하고 29일 결과를 전화상으로 문의하니 AFP 수치가 약간 상승하고 있고 조금 높다고 했다. 3월 28일 다시 검사를 예약했다. 계속 아내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그 영향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 야산을 오르고 윗몸일으키기를 다섯 번 하더니 명치 아래 왼쪽 부분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통증은 밀가루와 고추씨가루를 반죽해서 붙여 가라앉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계획대로 식이요법은 진행되어 갔다. 3월 28일 다시 혈액검사와 다음날 PET-CT 촬영을 하고 4월 4일 결과를 보기 위해 주치의실을 찾았다.

선생님은 모니터를 보면서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고개를 계속 갸우뚱하는 것이 심각해보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시 시선은 판독지와 혈액검사지를 향하고는 전에 배 아픈 것은 괜찮은지 질문을 하며 또다시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선은 모니터를 향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암이 보이지 않는다 암은 사라졌는데-아,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지 얼마나 달콤한 말이던지- AFP가 상승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처음 AFP가 3680에서 98로, 그 다음에는 135. 가장 최근이 600이 나왔다며 좀 더 지켜보자고 한다.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니 조심하자고.

모니터 속 화면을 내가 봐도 전에 하얗게 보이던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붕 하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 같았고 눈가에는 눈물이 핑그르르 맺혔다가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말에 갑자기 명치가 꽉 막히는 것이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도 암이 없다, 암이 사라졌다는 말이 가슴에 더 크게 와 닿았다.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마음으로 서울의 BRM 사무실을 찾아 실장님과 상담하고 나니 명치끝에 막힌 것이 확 풀렸다. AFP 수치가 상승하는 것은 암과 간경변으로 굳어진 것이 간 재생으로 인하여 각질이 분화되면서 나오는 분비물이 암 수치와 똑같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으니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이제 암이 보이지 않으니 암 공격요법에서 간 재생을 돕고 완치 목적의 처방전으로 바꿔주셨다.

나는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야채를 씻고 녹즙을 짜고 식단을 챙기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는 않고 있다. 내 나름대로는 100일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임에도 경제적으로 마음으로 발 벗고 도와준 형제들과 형수님 제수님. 감사합니다. 이제 기쁜 마음으로 만납시다.
그리고 아흔을 바라보는 나의 어머님. 마음 아프게 한 죄를 어찌하오리까.
한겨울에 진주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어디 산골까지 가서 뜯으셨는지 작디작은 돌나물, 돌미나리, 냉이를 봉지에 담아 녹즙 내는데 넣으라고 택배로 보내주신 어머님. 며느리의 암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밤이면 잠 못 이루고 너희 걱정을 했노라며 아들아 수고했다 며늘아 장하다 울먹이며 떨리던 전화기 너머 어머니의 그 음성.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우리 어머님은 지금처럼만 정정하고 건강하게 사시다가 주무시는 걸음에 가시옵기를….

그리고 암환우 여러분. 부디 힘내시고 이런 기적도 있습니다. 책속에서 길을 찾고 여러 전문 분야의 사람들과 의논을 하고 조언을 받으며 신뢰와 정성을 다하면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암환자에게 시간은 금보다 귀합니다. 걱정만 하며 귀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식단>
강남콩, 현미, 율무, 팥 등 5가지 이상 잡곡으로 밥을 하고 반찬은 채식 위주를 원칙으로 한다.

아침식사 한 시간 전 : 녹즙과 효모
30분 전 : 차가버섯 한잔
아침식사
식사 후 : 발효흑마늘 엑기스 한 스푼
식후 30분 : 병원약과 대추 달인 물
식후 1시간 : 보조식품과 달인 물
유산균과 기타 식품 산책 수준의 걷기
점심식사
블루베리 1봉과 과일
운동과 야산 오르기와 유산균과 간식
저녁식사
블루베리 1봉과 영양캔
취침 전 차가버섯 한잔

월간암(癌) 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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