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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최고의 명약이다.
김진하 기자 입력 2016년 05월 31일 14:56분10,151 읽음
글: 문창원 | 고려대학교 의학대학교 졸업 뉴욕의과대학 가정의학과 교수 역임

해마다 여름철이면 아프리카에서 의료 활동을 하곤 했다. 케냐, 탄자니아, 말라위, 가나 등 여러 나라에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된다. 그 중 어느 나라를 가던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다. 종종 현지 의과대학생들이 일을 돕기도 하고, 현지 의사와 함께 진료하기도 한다. 그들을 보면서 놀랄 때가 많다. 너무나 똑똑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아프리카가 아닌 선진국에서 태어났더라면 이 좋은 머리를 가지고 얼마나 훌륭한 일들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그러나 가진 것은 가난 밖에 없는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배우고 가르칠 수준과 여건이 되지 않으니 그들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우리는 좋은 나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운 나라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 나도 그곳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들과 똑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그들 마음과 내 마음의 차이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다. 나에게서는 그들과 같은 깨끗하고 해맑은 웃음이 안 나온다. 교양과 체면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하에 나오는 점잖은 웃음 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 세끼 어려움 없이 먹을 수 있는 나라는 1/3이 안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아프리카는 더 가난하다. 

처음에 진료 후 약을 처방해 주면서 식사 후 하루에 세 번 먹으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하루에 두끼 먹는 생활을 하고 있고, 그나마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그 가난 속에서도 그들은 맑게 웃고 작은 것에도 감사한다. 나에게 없는 그 순수함과 무소유에 대한 낙관이 나를 창피하게 만든다. 

며칠 전 신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당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하고 행복지수를 조사해 보니, 행복하게 느끼는 사람이 30%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보편적으로 선진국일수록 행복지수는 낮고, 못사는 후진국일수록 행복지수는 높다. 잘살고 못사는 것의 기준이 무엇일까? 필요한 물질이 많고 적음일까? 아무리 물질이 많아도 부족하다고 느끼면 가난한 것이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불행한 것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족하다 생각하면 풍족한 사람이고, 행복하다 느끼면 행복한 것이리라. 우리는 밥 먹기도 어려운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먹고 싶은 밥만 충분히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나도 그것에 감사함을 느끼거나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질 것과 더 높이 올라갈 것을 요구받으며 살아왔다.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지상 최대의 가치가 되었고, 그것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는 사회에서 살고 있고, 우리 사회는 또 그렇게 후손들을 교육하고 있다. 

그 결과 서로를 보듬고 위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고 다투는 삭막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스트레스는 홍수처럼 범람하고, 원치 않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많은 환자들도 생겨난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인걸 알면서도 마음을 다스리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이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갈 것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

헝가리 태생의 내분비학자인 한스 셀예(Hans Selye, 1907-1982)는 평생 스트레스 연구에 힘썼고 노벨의학상 후보에도 올랐었다. 건강에 필요한 스트레스를 Eustress라 명명하고, 건강을 해치는 스트레스를 Distress라 이름한 사람이다. 말년에 그가 하버드대학 졸업식에서 초청 연설을 한 후 질문을 받았다. “스트레스가 건강에 가장 큰 적이라고는 다들 아는데, 이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꼭 한 가지를 해야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의 대답은 단 한마디였다. “Appreciate!”, “감사하라!”였다. 스트레스 치료와 관리에 가장 중요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평생을 스트레스와 건강에 대해 연구한 세계적 대가의 말이다. 

영어에 감사를 표현하는 단어에는 ‘appreciate’와 ‘thank’가 있다. ‘Appreciate’에는 바르게 평가하다, 가치를 인정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단순한 감사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니 너무 감사하다는, 그 사람을 인정하고 가치 있게 평가하는 깊은 의미가 있는 단어이다. 백화점에서 지나는 사람에게 마음 없이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말하는 감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내 건강을 해치고 내 삶을 삭막하게 만드는 스트레스를 퇴치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란다. 그것도 마음 깊이 고마움을 헤아려 감사하는 것이란다. 

연전에 기회가 있어 남미 페루를 방문한 적이 있다. 잉카 문명의 고도 ‘꾸스꼬’에 가면 ‘마추피추’라는 고대 도시가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문화 유적이다. 그 오랜 옛적 15세기경 잉카인들이 산 위에 돌로 지은 이 고대 도시가 얼마나 정교하고 지혜롭게 지어졌는지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마추피추에 가려면 해발 약 3,400미터의 고산 지대에 위치한 꾸스꼬를 거쳐야 하는데, 이 꾸스꼬는 많은 관광객들이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여행 전 동료 의사들이 그곳에 가면 고산병에 고생하니 다이아목스라는 약을 가지고 가라고 충고해 주었지만, 귓등으로 듣고는 준비 없이 그곳에 도착했다. 

보통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곳으로 가면 산소 농도가 낮아지기 시작해서 고산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꾸스꼬의 희박한 산소 덕분에 내 호흡은 더 빨라졌고, 그 결과 내 몸의 산성도에 변화가 생겨서 두통, 구토, 어지러움, 호흡곤란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참을 토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내 육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숨 쉬는 공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감사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산소 몇 퍼센트가 공기 중에서 빠져나가니까 나는 숨도 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이아몬드나 금은 없어도 살지만, 물이나 공기는 없어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나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공기나 물에 대해 생전 한 번도 감사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 너무나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행복의 역설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고 사실이다. 물질세계에는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 세계가 놀랄 만큼 큰 경제적 성장을 했다. 하지만 우리들 마음에 있는 감사함이나 행복감은 그와 반비례해서 점점 더 줄고 있는 것이 참 슬프다. 돈이 많다고 감사하는 것도 아니고, 큰 권력을 지녔다고 감사하는 것도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낮은 마음과 지혜에서 나온다. 깊이 생각해 보면 감사하게 된다. 

오늘부터는 감사해보자. 마음 중심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고 헤아리는 감사를 해보자. 나 자신의 삶에도 감사하고, 내 아내에게도, 내 남편에게도 감사해 보자. 내 이웃, 내 동료, 직장 상사나 후배 모두에게 감사해 보자. 내가 살고 있는 이 고장, 이 나라에도 감사하면서 살아보자. 우리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세로토닌과 엔도르핀이 콸콸 나올 것이고, 면역을 담당하는 NK세포들은 좋아서 춤을 출 것이다. 감사는 최고의 명약이다.
월간암(癌)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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