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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옥구들방의 산책길 탐방 - 첫번째 이야기
김진하 기자 입력 2015년 10월 29일 15:28분13,822 읽음

암환자에게 산책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암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산책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건강을 위한 유산소 운동으로, 친구나 연인과의 교류를 위한 방법으로 산책은 우리의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정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책은 의지를 갖고 시작하는 행동이지만 아무런 목적지 없이 걷는다. 그리고 산책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장소와 시간이다. 어떤 곳을 언제 산책하는가에 따라서 산책의 질이 달라진다. 적절하게 꾸며진 산책로를 아침이나 저녁에 걷는다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황토옥구들방의 산책로는 주변의 산에 손수 길을 만들어 적당한 경사와 풍경이 운치 있고 산의 능선을 따라 걷는 길, 숲길, 비단길이라고 이름 지어진 매우 가파른 등산길 등 여러 형태로 즐길 수 있으며 한 시간짜리 코스, 30분짜리 코스 아니면 아침부터 시작해서 오후까지 걸을 수 있는 코스가 있는데 이곳에서 지내는 분들은 대부분 투병 중인 암환자 분들이기 때문에 체력에 맞게 시작하면 된다. 처음에는 짧게, 조금 익숙해지면 좀 더 길게, 그리고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었거나 아니면 더 힘센 체력을 만들기 위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트래킹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목적을 갖고 있다. 회복기의 환자에게 의사는 산책을 권하듯 대부분 건강에 대한 목적을 갖고 있다. 호흡을 할 때마다 몸속에서는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고,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건강에 대한 희망을 기원한다. 몸과 마음을 비우고 다시 새 힘을 불어넣는다. 어쩌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보행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촉과 무릎의 구부러짐, 어깨의 움직임, 험한 길을 걸을 때는 몸의 균형을 느낀다.

이곳 산책로의 종점은 비단길을 제외하면 모두 삼림욕장에서 마무리가 된다. 트래킹이 끝나고 나서 산림욕장에서 마무리 운동을 하고 산책을 끝내는데, 산림욕장의 나무들이 주는 기운을 몸속 깊숙이 들이마시면서 운동이 끝난다. 힘들 수도 있고,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코스이지만 걷기가 끝나고 나서 몸에서부터 베어 나온 땀을 정화시키고 심호흡을 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때때로 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 해먹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을 음미할 수도 있다. 건강을 위한 산책이었다면 나름 무리하게 걸었을 터인데 마무리 장소인 황토옥구들방의 산림욕장에서 긴 호흡과 명상으로 그날의 산책을 마무리한다.

위대한 철학자 루소가 했던 말이 절로 떠오른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루소는 산책을 고독한 것으로 정의했다. 그래서 산책을 통해서 몽상을 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달아나는 도구로 산책을 주로 했다. "인간의 얼굴에는 내가 보기에 증오심밖에 없지만 자연은 언제나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투병하는 일처럼 고독한 것이 있을까. 세상에서 병을 얻었다면 자연에서 치유를 얻는다. 숲을 걷는 것처럼 그에 합당한 일은 없다. 오래전부터 떨어진 나뭇잎들이 쌓여 있는 숲길에서는 고독과 비움을 통해서 힘이 생기고 그 힘은 치유를 선물한다. 이곳의 산책길은 인적이 드물다. 황토옥구들방에서 점심을 먹고 비단길을 두 시간 정도 걸었는데 그 시간동안은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사람과 세상은 풍경이 되었고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된다. 숲속에서 들리는 날짐승 소리에 놀라지만 그 날짐승도 나처럼 놀라서 도망가는 것이리라. 온전한 고독은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은 내가 된다. 나의 병이나 아픔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 혼자라는 사실, 두 시간 넘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북한산이나 청계산은 붐비는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때가 있다. 서울의 명동에 있는 것과 산에서 산책을 하는 것과 사람들에 치이는 일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연을 제대로 느끼기 전에 눈살을 찌푸리며 걷다가 찜찜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기 일쑤이다. 산으로 사람이 온 것인지, 산이 사람한테 온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혼자만의 고독과 기원과 마음속의 목적을 이루기 전에 다른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고, 여기저기 자리를 깔고 앉아서 한가득 싸온 음식들을 먹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집에 있을 걸 하는 후회가 생기기도 한다. 언제 혼자만의 산을 걸을 수 있을까. 언제 조용한 적막함에 나를 던져 놓고 자연과 교감하면서 산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해왔는데 바로 이곳에서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다. 아주 반가운 일이다.

황토옥구들방의 산책길은 비단길을 제외한 모든 길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직접 코스를 나누어 길을 만들었다. 야산에 길을 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을 이곳에서 투병하는 분들을 위하여 만들었는데 그 정성만큼 이곳의 길은 아름답고 자연적이다. 이제 황토옥구들방의 길을 직접 걸어보자.

월간암(癌)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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