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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은 시골밥상 - 따뜻한 겨울, 난로와 도시락
고정혁 기자 입력 2015년 01월 31일 19:06분78,763 읽음

김향진 | 음식연구가,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연구원, 채소소믈리에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날 태어난 탓인지 유난히도 추위를 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감기를 달고 살았다. 내복에 몇 겹의 겉옷을 껴입고도 달달 떠는 나를 보며 엄마는 뭐가 부실한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시곤 땔감을 더 밀어 넣으셨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솥단지에 물을 끓여 온수를 충당하던 때, 겨울맞이 최우선 과제는 땔감 마련이었다. 장작을 패거나 산 나무 아래 쌓인 솔가지들을 긁어모아 헛간에 쟁여놓고 필요한 만큼 부엌에 옮겨놓으며 사용하게 되는데 빨갛게 불이 올라가는 나뭇가지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솥뚜껑 위로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충분히 온돌이 데워졌을 즈음 마지막 불을 이용해 고구마나 감자를 굽기도 했다. 추우면 들어가라는 엄마의 타박에도 온기가 있는 아궁이 주위에 언니랑 둘러앉아서 쫑알쫑알 이야기를 늘어놓다보면 그 사이 저녁식사가 뚝딱 차려져 있고는 했다.

이렇게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따뜻하게 데워지는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김치를 얹어먹거나 동치미 국물을 떠먹어가면서 군고구마를 먹다보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 입이 댓 발은 나와 있다가도 익어가는 군고구마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면 형제들끼리 키득거리면서 곧 있을 행복한 시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양 연기도 했었다.

학교에서도 난방시설이라고는 교실 중간쯤 설치된 난로 하나가 전부인지라 온기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학생 수는 많지 않아서 난로를 빙 둘러 책상을 배치하고 둘러앉아 수업이 진행되었다. 가르치시는 선생님도, 배우는 학생들도 춥기는 매한가지라서 쉬는 시간이 되면 책상을 넘어 난로가로 모여들었고 수업시작 종소리가 나도 제자리로 돌아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보온도시락은 더더구나 없던 시절이니 학생들이 싸 온 밥이 든 양은도시락에 물을 부어 난로 위에 차곡차곡 올려놓고 데워서 먹었다. 주번은 아침 일찍부터 하루치의 땔감을 타오고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를 하거나 도시락이 타지 않도록 적당한 시간에 순서를 돌려주는 역할까지 할 일이 참 많았다.

비슷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도시락인데도 본인들의 도시락은 섞이지도 않고 어찌나 잘 찾아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김치나 나물, 장아찌 종류 일색에 그나마 신경 쓴 것이 퍽퍽한 소시지나 계란 프라이인 초라한 찬이지만 옹기종기 모여 먹다보면 어느새 바닥을 보이곤 했다. 누구네 반찬 할 것 없이 모아놓고 먹다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찬은 한 점으로 끝나기 일쑤이고 그조차 차지하지 못한 아이는 입맛만 다셔야했다.

학교 난로의 땔감으로는 주로 폐지가 사용되었는데 어쩌다 몇 년 지난 시험지에 아는 이름이라도 나오는 날에는 시끌벅적 난리가 났었다.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와 작대기가 그어지고 선명하게 점수가 표시된 시험지는 자랑거리가 되거나 놀림거리가 되었다.

지금보다 더 추웠고 눈도 자주 내리던 겨울에 뽀얗게 김이 서린 창문 속 풍경은 그렇게 추웠지만 따뜻했다. 나중에 연탄보일러를 거쳐 온수보일러가 들어오고 딸들을 위해 아빠가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목욕탕을 별도로 만들어주셨지만 수고스럽게 불을 떼고 물을 데운 후 부엌 나무문을 닫아걸고 빨간 고무통 한가득 따뜻한 목욕물 속에서 첨벙거리던 그 날들이 더 떠올려진다.

환경적으로 훨씬 더 편안하고 발전된 지금이지만, 난방도 훨씬 잘되고 질 좋은 옷을 입고 걷기보다는 자동차를 이용해 이동 중에도 따뜻하게 움직이지만 왜 마음은 그때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언 발을 동동거리며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연필에 힘주어 또박또박 글을 써 내려가던 그때가 어째서 더 온기가 느껴지는지 가만가만 고민해볼 일이다.

나와 가족들이, 주위 사람들이 다 같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장작을 패던 아버지의 마음을, 불을 때고 추운 부엌에서 가족들의 따뜻한 밥상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마음을, 불씨를 관리하고 도시락 순서를 바꿔가던 주번의 마음을 한번 떠올려 보았으면 좋겠다.

따뜻했던 겨울, 그날들을 떠올리면 달콤한 향과 맛을 더한 고구마밥과 구수한 배추된장찜, 간단하게 바로 해먹을 수 있는 김장아찌로 밥상을 한 번 차려보았다.

고구마밥

[재료 및 분량]
- 멥쌀 2C, 고구마 1⅔개, 밥물 2½C

[만드는 법]
1. 멥쌀은 깨끗하게 씻어 30분 정도 불린 다음 물기를 뺀다.
2. 고구마는 껍질을 벗기고 1cm 정도의 정육면체로 썰어서 물에 행군 후 물기를 뺀다.
3. 냄비에 멥쌀을 넣고 물을 부어 센불에 올려 끓으면 4분 정도 더 끓이다가 고구마를 넣고 중불로 낮춰 3분 정도 더 끓인다.
4. 약불에서 10분 정도 뜸을 들인다.

Tip : 고구마는 물에 행구어 전분을 뺀 다음 밥을 지어야 고구마 색이 좋다.

배추된장찜

[재료 및 분량]
- 배추 500g, 마른 표고버섯 3개, 청양고추 1개
- 양념장 : 된장 2T, 고춧가루 1t, 표고가루 1t, 채소물 1C

[만드는 법]
1. 배추는 속대만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2. 표고버섯은 물에 불려 기둥을 제거한 뒤 굵게 채 썰고 청양고추는 다진다.
3. 냄비에 배추와 채 썬 버섯을 켜켜이 놓고 양념장을 골고루 끼얹는다.
4. 약불에서 30분 정도 찐 후 다진 청양고추를 넣고 그릇에 담는다.

Tip : 찌는 중간에 배추가 고루 익도록 위아래로 뒤적여준다.

김장아찌

[재료 및 분량]
- 김 10장, 밤 3개, 생강 20g
- 양념장 : 통깨 1T, 고추장 1T, 매실액 1T, 간장 2T, 조청 2T, 채소물 ½C

[만드는 법]
1. 김은 5~6cm 정도의 직사각형으로 자르고 밤과 생강은 껍질을 벗겨 곱게 채 썬다.
2. 냄비에 통깨를 제외한 양념장 재료를 모두 넣고 한소끔 끓여 식힌 다음 통깨와 채 썬 밤, 생강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3. 김 5~6장 사이사이에 양념장을 바른다.

Tip : 바로 먹거나 냉장 보관한다.

월간암(癌)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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