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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같던 젊은 날의 초상
고정혁 기자 입력 2014년 10월 31일 17:02분197,627 읽음

글: 김향진 | 음식연구가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연구원, 채소소믈리에

유난히 덥고 길게 느껴지던 그 여름에 초등학생이던 나는 왼다리에 깁스를 한 채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난생 처음 입원이라는 것을 경험하며 친지나 지인들의 병문안 덕에 다양한 간식을 즐기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기쁨은 아주 잠깐,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무 지루하고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다.

대학시절 데자뷰처럼 이런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되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장벽에 막혀 허우적대지만 결국 제자리걸음인 것 마냥 갑갑증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아르바이트와 수업과 과제에 시달리면서 제 생각이 정립되지도 않은 채 시류에 쓸려 다니기도 여러 번, 아무것도 아닌 듯 너무 작게만 느껴지던 내 모습에 좌절하고 빠듯하게 꾸려가야 하는 환경에 분노하던 젊은 날의 나는 잘 웃던 겉모습과는 참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희망했던 것과는 다르게 잘 알지도 못하고 상황에 맞춰 선택한 전공과목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정권타도와 총장퇴진을 외치던 교내 분위기는 어두웠으며 모든 청춘들이 그렇듯 뜻대로 되지 않는 연애에 울고 웃고 했었다.

그 시절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 날들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감사할 일을 찾고 소소한 기쁨을 발견하는 현명함이 그때의 나에게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생각해보면 좋은 일이 참으로 많았는데 말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월이 나에게 준 선물은 바로 이런 여유로움이다. 여전히 내 미래는 알 수 없고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불안함을 안고 있지만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틈틈이 여행하고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는 여유가 지금의 나에게는 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고 내가 선택한 일을 하고 있고 꿈을 향해 가면서도 천천히 주변도 둘러봐야한다는 것을 아는 지금이 내 인생의 청춘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주어진 과제를 풀어내듯 다른 것은 생각할 새도 없이 당면한 문제들이 버겁던 그 시절에 무더위처럼 나를 지치게 만들던 일들도 지금은 다 추억이고 새록새록 꺼내보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순간 힘든 일이 생겨도 버틸 수 있다. 다 지나가는 것을 알고 나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을 아니까.

큰 것을 하려기보다는 매 순간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애쓰다보면 문득문득 고개를 드는 걱정도 잠잠해진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어니 젤리스키는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라는 저서에서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으며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22%는 사소한 것,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하였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4%를 제외한 나머지 96%의 걱정은 버리라는 것이다. 어차피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해봐야 해결되는 것은 없는데 부러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만 지금의 노력으로 미래가 바뀌는 것이니 열심히 살되 무엇이 우선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때에 누리지 못한 기쁨과 행복을 세상의 잣대에 비춰 어쩌면 뭔가 뒤쳐진 지금의 내가 더 크게 느끼는 것은 성공에 대한 기준과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를 시작하게 되면서 일이 자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이런 생각들이 더 자리 잡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때에 맞는 건강한 식재료에 관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나에게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자연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내가 가려는 길 정면 말고도 옆으로 난 길에 핀 꽃이나 앉아 쉬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래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꼭 목표했던 길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가는 길을 즐겁게 가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 이면에는 나를 성장시키는 힘도 존재한다는 것, 빠듯함 속에서도 잠시 잠깐의 여유는 낼 수 있다는 것, 무엇이 우선이고 중요한 것인지는 세상이 아니라 내가 정해야 한다는 것. 여름날 무더위처럼 숨 막히던 젊은 날에는 몰랐던, 성숙함이 주는 선물.

뜨거웠으나 많은 것이 부족했던 그날들을 떠올리며 건강하게 이겨낼 밥상으로 견과류강된장찌개와 가지찜, 뿌리채소조림을 준비했다. 든든한 한 끼 식사는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병든 몸을 다독이기도 한다. 가족을 위한 상차림에 정성을 다하듯 내 인생을 이루어내는 지금 이 순간에 온 마음을 담아보면 어떨까.

견과류강된장찌개

[재료 및 분량]
- 감자 2개, 애호박 ¼개, 마른 표고버섯 1장, 청고추 2개, 청양고추 1개
- 견과류(호박씨, 해바라기씨, 아몬드 등) ½C, 된장 2T, 표고가루 1T, 채소물 2C

[만드는 법]
1. 감자 1개는 껍질을 벗겨 작게 깍둑썰기하고 애호박도 비슷한 크기로 썬다.
2. 마른 표고버섯은 미지근한 물에 불려 감자와 같은 크기로 썬다.
3. 청고추와 청양고추는 꼭지를 제거하고 잘게 다지고 견과류도 잘게 다진다.
4. 감자 1개는 강판에 갈아둔다.
5. 냄비에 채소물을 넣고 썰어둔 감자와 표고버섯, 애호박을 넣고 끓인다.
6. 한소끔 끓으면 된장을 풀고 약한 불에서 은근하게 끓이다가 갈아둔 감자와 표고가루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7. 견과류와 다진 고추를 넣고 끓어오르면 그릇에 담는다.

가지찜

[재료 및 분량]
- 가지 1개
- 양념장 : 청양고추 1개, 홍고추 1개, 매실효소 2T, 된장 1T, 들기름 1T, 다진 생강 ½t

[만드는 법]
1. 가지는 반으로 길게 자르고 적당한 크기로 토막을 낸 후 안쪽에 가로, 세로, 사선으로 칼집을 낸다.
2. 청양고추와 홍고추는 꼭지를 제거하고 잘게 다진 뒤 분량의 재료를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가지 위에 올린다.
3. 김이 오른 찜통에 가지를 넣고 5분 정도 찐 다음 그릇에 담는다.

뿌리채소조림

[재료 및 분량]
- 연근 200g, 마 200g, 우엉 100g, 다시마 30g, 물 2C
- 마늘 5개, 청고추 1개, 홍고추 1개
- 조림장 : 간장 4T, 설탕 2T, 청주 1T, 꿀 1T, 참기름 1T, 통깨 ⅛t

[만드는 법]
1. 연근과 마는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고 반달썰기 한다.
2. 우엉은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고 어슷 썬다.
3. 다시마는 젖은 면보로 닦고 우엉과 같은 크기로 어슷하게 썬다.
4. 청·홍고추는 어슷 썰고 마늘은 편으로 썬다.
5. 냄비에 물을 붓고 연근, 마, 우엉, 다시마를 넣어 끓이다가 조림장을 넣고 졸인다.
6. 마늘과 넣고 청·홍고추를 넣은 다음 꿀을 넣어 센불에서 윤기 나게 졸인다.
7. 불을 끄고 참기름과 통깨를 뿌린다.

월간암(癌) 201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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