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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처럼 부서지는 태양 속, 여름 나기 - 콩국수, 오이소박이, 미역수박껍질무침
구효정(cancerline@daum.net) 기자 입력 2014년 09월 30일 21:12분220,427 읽음

김향진 | 음식연구가,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연구원, 채소소믈리에

뜨거운 태양빛을 두려워하지 않던 어린 시절의 나는 여름이면 늘 새까맣게 그을린 채였다. 도시와 달리 높은 건물이 없어 부서지는 태양을 그대로 받아야 했지만 온통 땀범벅이 되도록 뛰고 놀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큰 축복이다.

큰 길 가에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을 비롯해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진 초록과 작열하는 태양의 황금색은 여름의 상징처럼 기억된다. 섬이라고는 해도 내가 살던 곳이 바닷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안쪽에 위치한 탓에 쉬이 바닷가로 뛰어들 수 없는 대신 빨래터를 수시로 드나들곤 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어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을 앞쪽으로 길게 늘어진 시냇가 중간을 마을 위쪽에 한 곳, 아래쪽 한 곳에 공사를 해놓아 빨래하기 좋도록 만들어져 있었고 이곳이 바로 어른들에게는 맞춤한 빨래터이자 어린 우리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로 여겨졌다.

두 곳 중에서도 마을 위쪽에 위치한 빨래터는 집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수심이 적당하고 놀기가 편하여 더 선호하였는데 누가 빠져 죽었다는 둥의 이야기가 무성하여 겁이 날만 했음에도 놀고자하는 의지를 꺾지 못하였다. 어린 아이들이 믿음직하게 해낼 리 없으니 내키지 않음에도 그 목적을 알아 크게 말리지도 못하는 엄마에게 제가 빨래를 해오겠다며 졸라서 세숫대야에 주섬주섬 빨랫감을 챙기고는 여름 놀이터로 향했다. 우리들은 도착하는 즉시 뛰놀아 땀이 베인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물에 뛰어들고는 했다.

그렇게 거의 매일을 땀을 흘리고 물놀이하기를 반복하다 몸에 한기가 돌아 더 이상 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어느새 여름이 끝나 있었다. 몸이 커지고 물놀이 이후 수풀에 숨어 옷을 갈아입기 민망할 정도의 나이가 되고나서는 빨래터로 밖에 이용할 수 없었기에 여전히 물속에서 헤엄치는 동생들을 보며 살짝 장난을 치기도 하고 큰 바위에 걸터앉아 무릎까지 물에 담그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했다.

나름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즈음이면 하루가 일찍 마감되는 시골의 특성상 저녁상을 받게 되는데 여름철 특별할 것 없는 시골밥상에 가끔 색다르게 콩국수가 올라오곤 했다. 꽤 늦은 나이까지 콩을 먹지 않았던 나는 하얗고 뽀얀 그 콩물 역시 싫기만 했다. 자꾸 권하는 엄마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살짝 한 숟가락 입에 넣고 텁텁함에 고개를 젓는 나에게는 맹물에 설탕을 넣고 휘휘저어 삶은 국수를 말아주셨는데 밋밋한 국수를 다 먹고 난 후 달달하고 시원한 설탕물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었다.

숙제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슬슬 부른 배가 꺼질 때쯤이면 마당 혹은 집 앞 대로변 건너에 평상을 옮겨놓고 근처에 모깃불을 피워 준비를 마친 다음, 일어나 먹으라는 타박에도 꼭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수박을 먹었다. 부모님은 지나가던 누구라도 동석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 형제들은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고 끝내지 못한 숙제를 마저 하기도 했다.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으면 누운 채 별을 보다가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 손길에 살포시 잠이 들었다.

조근한 이야기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한 엄마의 부채질이 계속 되는 동안 깊숙한 잠에 빠져버리면 방으로 들어 옮기는 건 아빠의 몫이었다. 사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좋아서 설잠이 깼는데 그대로 누워있던 적도 있었다. 끝내 잠들지 않은 밤이면 방으로 돌아와 그만 떠들고 자라는 지청구를 듣고서야 마지못해 잠들던 여름날들이었다.

에어컨은 커녕 방마다 선풍기가 구비되지도 못한 시골의 여름, 낮에는 내리쬐는 태양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일을 하거나 야외활동 틈틈이 풍성한 나무그늘 사이에 쉬는 것이 고작이고 밤에는 조심스레 설치한 모기장 안에서 간간히 부는 자연 바람이 다였지만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것이 당연하다는 자연주의적 사고에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순응한 인내심이 있었다.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보내게 된 지금, 오히려 덥다고 짜증내고 춥다고 움츠러드는 불만투성이가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다.

어린 날 나의 여름은 이렇듯 첨벙첨벙 물장구 소리, 모깃불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 매운 연기와 코를 간질이던 그 냄새, 까만 하늘에 촘촘히 빛나던 별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 내 머리를 쓰다듬거나 부채질하던 엄마의 손길을 기억하며 지나왔다. 며칠 전 상에 올라온 콩국수가 이렇듯 지난 여름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는 내가 나서서 콩을 삶고 갈아 콩물을 내지만 아직 손맛을 따라가지 못했기에 중요 시점마다 손길을 내는 엄마가 있어야 했다. 비릿한 콩물의 냄새만으로도 고개를 젓던 내가 여름이면 콩국수를 떠올리게 된 변화만큼이나 엄마의 모습도 변해있었지만 여름은 여전히 덥다.

고소하고 시원한 콩국수는 알맞게 익은 오이소박이와 잘 어울린다. 수박을 먹고 난 뒤 버리게 되는 흰 부분을 미역과 함께 넣은 새콤한 무침도 입맛을 돋운다. 또 한 번의 여름을 맞이한 지금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여름나기를 해야 할까.

콩국수

[재료 및 분량]
- 흰콩 200g, 삶는 물 4C
- 가는 물 4½C
- 소금 1T
- 국수 350g, 삶는 물 10C
- 오이 ⅓개, 토마토 ½개

[만드는 법]
1. 흰콩은 깨끗이 씻어 일어서 8시간 정도 불린 후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2. 불린 콩을 삶아 체에 밭치고 물에 비벼 헹구면서 껍질을 벗긴 다음 믹서에 물과 함께 갈아서 다시 한 번 끓이고 소금을 넣어 콩국물을 만든다.
3. 국수 면을 삶아 찬물에 비벼 씻고 사리를 만들어 채반에서 물기를 뺀다.
4. 그릇에 국수를 담고 콩국물을 부운 후 채 썬 오이와 토마토를 얹는다.

오이소박이

[재료 및 분량]
- 오이 3개, 물 2C, 굵은 소금 1½T
- 부추 50g,
- 양념 : 새우젓 1T, 고춧가루 2T, 소금 1t, 다진 파 2T, 다진 마늘 1T, 다진 생강 1t, 물엿 1T
- 오이소박이 국물 : 물 3T, 소금 ¼t

[만드는 법]
1. 오이는 소금으로 비벼 깨끗이 씻고 길이 6cm 정도로 잘라 양끝을 남기고 4군데 칼집을 넣는다.
2. 오이를 소금물에 2시간 정도 절여 체에 밭치고 30분 정도 물기를 뺀다.
3. 새우젓 건더기는 곱게 다져 나머지 양념 재료와 함께 섞고 깨끗이 씻어 잘게 썬 부추와 버무려 소를 만든다.
4. 오이 칼집 속에 양념한 소를 채워 넣고 통에 담은 다음 버무린 그릇에 물과 소금을 넣어 국물을 만들고 항아리에 넣어 꼭꼭 눌러 놓는다.

미역수박껍질무침

[재료 및 분량]
- 수박 껍질 흰 부분 200g, 불린 미역 50g, 홍고추 1개, 소금 약간
- 양념장 : 감식초 2T, 설탕 2T, 매실효소 1T, 참깨가루 1T, 소금 1t

[만드는 법]
1. 수박은 겉껍질을 벗기고 흰 부분만 7cm 길이로 채 썰고 소금을 뿌려 10분 정도 재웠다 물기를 꼭 짠다.
2. 미역은 불렸다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찬물에 헹군 다음 물기를 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3. 홍고추는 씨를 발라내고 채 썬다.
4. 양념장을 만든다.
5. 수박과 불린 미역을 양념장에 골고루 버무리고 홍고추를 넣어 섞은 뒤 그릇에 담는다.

월간암(癌) 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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