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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한식 - 새 희망을 주는 달, 정월
장지혁 기자 입력 2014년 02월 28일 21:18분362,259 읽음

김향진 | 음식연구가,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연구원, 채소소믈리에

이야기가 있는 건강밥상, 한식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3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한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달로서 1년의 계획을 세움과 동시에 마음을 가다듬는 달인 것이다.

정월에는 새해의 새날이 시작되는 설날이 있고, 1년 중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이 있다. 설날은 여전히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로서 도시에 나가살던 자녀들이 부모형제와 함께 지내기 위해 대이동을 벌이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날이기도 하다. 정월대보름은 마을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한 날로 설날과 함께 큰 명절로 여겨졌던 날이다.

섣달그믐날 밤이면 눈을 비비고 고개를 휘휘 젓고 그래도 안 되면 매운 치약을 코 밑에 짜놓으며 잠들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곤 했다. 새해의 첫날에 동이 트는 것을 보지 않고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생긴 소동인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졸음은 어찌나 쏟아지는지. 잠깐 졸았을 뿐인데 눈을 뜨면 아침인 채로 후회하고 이번에는 반드시 뜬 눈으로 새해를 맞겠다고 다짐하는 몇 해가 반복되었었다.

설을 준비하는 엄마는 한참 전부터 분주했지만 나는 마냥 좋았었다. 설빔이 생긴다는 기쁨도 있지만 방앗간을 따라가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가래떡을 맛볼 수가 있었기 때문인데, 물에 불려 가져간 쌀이 떡이 되어 나오는 것도 신기했고 쑥쑥 뽑아져 나오는 긴 가래떡을 가위로 자르고 난 뒤 자투리를 잡아당겨 먹는 맛도 일품이었다. 희고 긴 떡들을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돌아와 줄줄이 줄을 세워 적당히 굳을 때까지 두었다가 비스듬히 칼질을 해서 떡국떡을 만드는데 탁탁탁 리듬 있는 엄마의 칼질 소리에 마냥 설레는 기분이 되는 것이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아이들은 설날보다 훨씬 바빠졌다. 해가 저물어 회합장소로 동네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언니 오빠들이 주축이 되어 팀을 짜고 구역을 나눈 다음 맡은 동선에 따라 집집마다 돌면서 오곡밥이며 묵은 나물이며 전 등을 얻어 준비해간 바가지에 한가득 담아 다시 돌아오는 풍습을 실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지 먹을 것만 얻어오는 것이 아니라 물이 담긴 대야며 동이며 보이는 데로 죄다 뒤집어 놓기, 댓돌에 놓인 신발 숨기기, 빨랫줄에 걸린 집게 훔쳐오기도 함께 해야 했기 때문에 네다섯 명이 함께 움직이면서도 꽤나 분주한 작업이 되는 것이다. 으레 그런 일들이 행해지는 것을 어른들도 다 알고 있었겠지만 우리들은 꽤나 심장을 졸였고 다시 회합장소로 돌아와서 무용담을 늘어놓고는 했었다.

얻어온 음식을 모아 비벼서 모닥불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추운 줄도 모르고 배를 채우고 나면 깡통에 구멍을 뚫어 미리 준비해 놓은 쥐불놀이를 시작하게 된다. 깡통을 처음 돌리는 아이가 있으면 경험이 많은 아이로부터 주의사항과 방법을 배우고 나서야 함께 할 수가 있었다. 힘차게 휘휘 돌리며 줄지어 논두렁을 뛰어다니고 노래도 부르며 한바탕 신나게 놀고 귀가하면 곧장 잠에 곯아떨어지는 날이었다.

쥐불놀이를 제외하고는 이런 풍습들이 어떤 의미로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고 지역적으로도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신성하게 여겼던 달 중에서도 새해 첫 가득 찬 보름달을 보며 액운을 막고 한해를 무사히 잘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는 과정에서 유쾌하게 하루를 보내기 위한 장난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침에 되면 아이들이 제각자 주머니에 담아온 빨래집게들은 엄마들 손에 의해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내졌는데 정작 가져온 우리들도 기억 못하는 주인집을 어떻게 알고 찾아가는 것인지 그저 신기한 일이었다. 뒤집어 놓은 물통들과 신발들도 제자리를 찾았는데 간밤의 난리통을 정리하는 어른들의 입가에도 웃음이 걸리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동의 내용들은 달라졌겠지만 그분들도 어린 날의 기억들을 떠올렸던 것일까?

어른이 되어 맞는 정월은 그때의 유쾌한 장난과 소란스러움과는 차이가 있지만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가짐은 나이를 보탤수록 더욱 각별해진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다시금 각오도 다지며 정월에 맞는 두 개의 큰 명절에 가족과 함께 나눌 음식을 준비한다. 지난날 우리의 엄마들이 그랬듯이 하나의 음식에도 마음을 담고 정성을 담아 먹는 사람을 배려한다. 마냥 들떴던 어린아이가 그때 엄마의 위치가 될 만큼 세월이 바뀌는 동안 함께 자라온 내 삶의 내공들이 언젠가 더욱 빛을 발하길 바라면서.

설날의 대표적 음식인 떡국 중에서도 독특한 생김새와 앙증맞은 크기로 먹는 사람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는 개성지방의 조랭이떡국과 함께 아삭한 연근전, 몸을 따뜻하게 하는 수정과를 준비해보았다.

조랭이떡국

[재료 및 분량]
- 멥쌀가루 5C, 소금 ½T, 물 150~180g
- 육수 : 사태 300g, 물 11C
- 향채 : 파 20g, 마늘 10g
- 양념장 : 청장 ½t, 다진 파 ¼t, 다진 마늘 ¼t, 후춧가루 ⅛t, 참기름 1t
- 청장 1t, 소금 1t
- 달걀 1개, 실고추 0.2g, 식용유 ½T
- 찌는 물 10C

[만드는 법]
1. 멥쌀가루에 소금을 넣고 체에 내린 다음 물을 붓고 고루 섞어 물을 올려 끓은 찜기에 젖은 면보를 깔고 멥쌀가루를 찐다. 찐 떡은 뜨거울 때 꺼내 볼에 담고 방망이로 쳐서 가래떡을 만든 후 대나무 칼로 누에고치 모양의 조랭이떡을 만든다.
2. 쇠고기는 핏물을 닦고 냄비에 물과 함께 올려 끓으면 중불로 낮추고 좀 더 끓이다가 향채를 넣어 더 끓인다. 쇠고기는 건져서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찢어서 양념하고 국물은 식혀 면보에 거른다.
3. 냄비에 육수를 붓고 센불에서 끓으면 조랭이떡을 넣고 더 끓여 떡이 떠오르면 청장과 소금으로 간하고 살짝 더 끓인다.
4. 달걀은 황백지단을 부친다.
5. 그릇에 담고 쇠고기와 황백지단, 실고추를 고명으로 올린다.


연근전
[재료 및 분량]
- 연근 1개, 물 5C, 소금 1t
- 식촛물 : 물 3C, 식초 1T
- 밀가루 4T, 달걀 2개, 소금 ¼t
- 식용유 2T
- 초간장 : 간장 1T, 식초 1T, 물 1T, 잣가루 1t

[만드는 법]
1. 연근은 손질하여 깨끗이 씻은 후 둥글게 썰어서 식촛물에 담갔다가 건지고 끓는 물에 소금과 연근을 넣고 삶아 물기를 뺀다.
2. 연근에 밀가루를 입히고 소금간한 달걀물을 입힌다.
3.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중불에서 앞뒤로 노릇하게 연근을 지진다.
4. 초간장과 함께 낸다.


수정과
[재료 및 분량]
- 생강 200g, 물 10C
- 통계피 120g, 물 10C
- 황설탕 1C, 설탕 1⅓C
- 곶감 5개, 호두 10개
- 잣 5g

[만드는 법]
1. 생강의 껍질을 벗기고 깨끗이 씻어 얇게 썰고 통계피는 2등분하여 깨끗이 씻는다.
2. 냄비에 생강과 통계피를 각각 물을 붓고 센불에 올려 끓으면 중불로 낮춰 1시간 정도 끓인 후 면보에 거른다.
3. 냄비에 생강물과 계피물을 붓고 황설탕과 설탕을 넣어 끓으면 중불에서 좀 더 끓여 식힌다.
4. 호두는 따뜻한 물에 불려 속껍질을 벗기고 곶감 가운데 넣어 돌돌 말아 곶감쌈을 만들고 적당한 두께로 자른다.
5. 잣은 고깔을 떼고 면보로 닦는다.
6. 곶감쌈과 잣을 띄워낸다.

월간암(癌)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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